수면제 대신 '햇빛'을 처방했습니다

운동 없이 8시간 40분 통잠을 자게 한 단 하나의 변수

by 고도

"오전 9시 40분."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기적 같은 숫자였다. 새벽 1시, 22개월인 둘째가 칭얼거려 아이 방으로 넘어가 잠을 청했다. 보통 잠자리가 바뀌거나 중간에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워 뒤척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그사이 단 한 번의 깸도 없었다.

가슴이 벅찼다. 이런 '통잠', 아니 완벽한 '꿀잠'이 도대체 얼마 만인가. 곰곰이 복기해 보았다. 어제 나는 격렬한 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몸을 녹초로 만들 육체노동을 한 것도 아니다. 수면 패턴을 바꿀 만한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나의 어제 하루에서 달라진 건 딱 하나였다. 평소라면 피해 다녔을 햇빛을, 작정하고 온몸으로 맞았다는 것. 그 사소한 변수 하나가 내 밤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얀 커튼이 쳐지는 밤

잠들기 직전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번아웃이 온 뒤로 나의 밤은 늘 검은 안개 같았다. 눈을 감아도 걱정과 잡념이 부유물처럼 떠다녔다. 하지만 어젯밤은 달랐다. 눈을 감았는데 머릿속이 환했다. 마치 환상적인 휴양지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호텔 침대에 털썩 누운 기분이랄까.

머릿속에 빛의 잔상이 은은하게 남아있는 가운데, 하얀색 '차르륵' 커튼이 뇌 위로 부드럽게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낮 동안 내 망막으로 쏟아져 들어온 그 강렬한 빛이, 밤이 되자 천연 수면제가 되어 나를 포근하게 덮어주는 것 같았다. 그 하얀 커튼 자락을 느끼며 나는 스르르, 말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한국인의 햇빛 기피증, 그리고 서양인의 돗자리

사실 우리는 햇빛을 너무 무서워한다. 피부 노화, 기미, 백내장... 의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그늘만 찾아다니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피부 방어'의 대가로 우리는 마음의 '생기'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날씨만 좋으면 헐레벌떡 공원으로 뛰어나가 돗자리를 펴고 드러눕는 서양인들을 볼 때마다 "왜 저러지.." 하고 이해가 안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들은 피부를 내어주는 대신, 삶의 활력과 우울하지 않을 권리를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덜 늙어 보이는 매끈한 얼굴보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건강한 뇌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어제의 딥슬립(Deep Sleep)은 내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0원의 행복, 최고의 육아 아이템

안식년을 맞이하며 거창한 여행 계획을 세우려다 멈췄다. 대신 목표를 수정했다.

'그저 선크림 하나 바르고 멍하니 햇빛 아래 앉아 있기.'

이것이야말로 돈 한 푼 들지 않으면서 가장 가치 있는, 최고의 사치다. 내가 햇살 아래 평온하게 앉아 있으니, 아이들이 쪼르르 내 옆으로 와서 붙어서 놀았다.

햇빛을 함께 받은 아이들은 웃음이 많아졌고, 떼를 덜 부렸다. 나 또한 뇌 속에 세로토닌이 가득 충전된 상태라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비싼 장난감이나 키즈카페가 아니었다. 햇빛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육아 아이템이었다.


실험의 재현성(Reproducibility)을 위하여

우연히 얻은 결과는 데이터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 번의 기적은 우연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시 선크림을 바르고 창가로 갔다.

실험 조건은 어제와 동일하다. 운동 없음. 특별한 활동 없음. 오직 일조량(Sunlight)이라는 변수 하나만 통제한다.

만약 오늘 밤에도 눈을 감았을 때 그 하얀 커튼이 내려오고, 깊은 잠에 들 수 있다면 나의 가설은 증명되는 셈이다. 나의 안식년은 어쩌면, 이 행복한 실험의 '재현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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