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고수는 못 돼도, '빌런'은 면하고 싶어서

후회하지 않는 대화법

by 고도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종종 혼잣말을 한다.

"아, 왜 그 말을 했지."

상대방이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끼어들어 내 경험을 얹어버리거나, 분위기를 잘못 읽고 지식을 뽐내려다가 흐름을 끊어버리거나. 그 순간에는 "도와주고 싶어서"였는데,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은 도움이라기보다 '침범'에 가까웠다.

대화에서 가장 필요한 스킬이 '경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은 천지차이다. 침묵을 지키며 듣기만 한다고 해서 좋은 대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근본적인 기질, 그리고 그로 인해 굳어진 나쁜 습관들에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게는 ADHD 경향이 좀 있는 것 같다. 요즘 성인 ADHD 진단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라 진료를 예약하고 기다리는 중이라 실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느끼는 성향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기질은 대화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참지 못한다. 불편한 자리에서는 긴장해서 말이 많아지고, 편한 사람 앞에서는 "내가 왜 그랬지?" 싶을 정도로 쓸데없는 말을 쏟아낸 뒤 집에 돌아와 후회한다.

평소엔 일에 지쳐 그 후회를 금방 잊어버리곤 했지만, 안식년인 지금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대화법 개발 구상안

이번 안식년 동안 나는 '나에게 맞는 대화법'을 정립해서 복귀하고 싶다. 하지만 유려한 화술이나 상대를 사로잡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익히려는 게 아니다. 나는 이번에도 문제를 '거꾸로 뒤집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목표는 탁월함이 아니라, '중간 이상'이다. 수능 등급으로 치면 3등급 정도가 목표다.

대화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바보 같은 행동'만 하지 않는 것. 그것만 꾸준히 지켜도 그 결과값이 복리로 쌓여 결국엔 탁월함에 이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리스트로 정리했다.


첫째, 대화의 '흐름'을 죽이지 않겠다.

대화에는 강물처럼 흐름이 있다. 내 안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 뽐내고 싶은 지식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그 욕구를 따르는 순간 대화는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가 된다.

앞으로는 입을 열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이 흐름을 살리는가, 죽이는가?"

만약 흐름을 놓쳤다면 다시 흐름을 잡을 때까지 입을 다물거나, 차라리 무슨 이야기인지 솔직하게 물어볼 것이다. 이것이 내 대화법의 황금률이다.


둘째, 웃겨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겠다.

누구나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재밌는 이야기 해줄게"라고 운을 떼는 순간, 실패 확률은 급상승한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견디며 골을 넣는 건 보통 내공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가장 타율이 높은 유머는 역설적이게도 나의 실패, 결점, 어려움 같은 것들이다. 욕망과 반대되는 현실, 그 괴리감 자체가 최고의 소재다. 무엇보다 이런 자학 개그는 유머의 제1덕목인 '웃기려 들지 않는다'를 자연스럽게 달성하게 해 준다


셋째, 어른답지 못한 언어습관을 덜어내겠다.

나이가 꽉 찬 성인이 10대의 유행어나 욕설을 섞어 쓰는 것만큼 불편한 것도 없다. 또한 '솔직히', '진짜', '사실', '기본적으로' 같은 무의미한 부사들을 남발하는 습관도 버려야 한다.

스스로는 인지조차 못하는 이 습관들을 고치기 위해, 낯부끄럽지만 아내나 가까운 친구에게 지적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말끝을 흐리지 않겠다. 분위기가 어색해도 주눅 들지 않고 문장을 끝까지 매듭짓는 것. 그것이 대화의 품격을 지키는 최소한의 태도다.


마지막으로, '가르치려는 태도'를 경계하겠다.

이전 글 <나는 왜 이웃에게 시가총액을 가르치려 했나>에서 뼈저리게 반성했듯이,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도 상대방의 지적 독립성을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 맞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 상대에게서 무언가 배울 게 있다는 호기심. 그것이 나를 지키고 대화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특히 내가 조금이라도 안다고 자부하는 분야일수록 입은 더 무거워야 한다.

안식년이 끝날 때쯤, 나는 대화의 천재가 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화를 망치는 '빌런'은 면해있기를 바란다.

바보 같은 짓만 최선을 다해 피하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화법이다.


실험 로그

- 오늘의 목표: 대화를 "잘"하기보다, 망치지 않기

- 오늘의 체크리스트: 흐름을 살리는가 / 웃기려 들지 않는가 / 말끝을 매듭짓는가 / 가르치려 들지 않는가

- 관찰 방법: 대화 중 끼어들고 싶어질 때, 3초만 멈추고 질문으로 바꾸기

- 실패의 정의: 집에 와서 "왜 그랬지"가 떠오르는 순간

- 다음 실험: 하루 1번, 대화 복기 메모 3줄(무엇을 말했나/왜 말했나/다음엔 어떻게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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