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도 피곤하다면, 에너지가 '새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것도 안 하기에 실패하고 찾아낸 새로운 휴식법

by 고도

안식년 실험 기록: 35일째


"안식년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아무것도 안 하기' 그런데 이게 엄청 어렵다"

몸은 분명 쉬었는데, 마음은 계속 ‘켜져’ 있었던 날. 휴대폰을 내려놓아도 손이 근질거리고, 해야 할 일은 없는데도 머릿속이 바쁘다. 에너지가 충전되기는커녕, 어디선가 계속 새고 있는 느낌.

나는 이 상태를 ‘에너지 누수’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이 늘 일정하다면, 더 많이 만들기보다 ‘덜 새게 하는 법’을 찾는 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늘 활성화되어 있는 사람보다, 평상시엔 푹 쉬다가 집중할 때 제대로 몰입하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간다. 그래서 나는 안식년 동안, 쉴 때 에너지를 모아두는 법부터 정립해보고 싶었다.


안식년을 맞아 특별한 목표는 없다. 오히려 목표는 단 하나, ‘아무것도 안 하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도 원래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앱 알림이 신경 쓰여서 휴대폰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주식은 또 어떤가. 가격이 오르면 기분은 좋지만, 그만큼 마음이 끌려가서 싫다. 오히려 가격이 내려가 있을 때는 별로 신경도 안 쓰였고, 안식년의 취지에도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담아 《주가가 오르는데 왜 불안은 더 커지는가》라는 글도 썼다.

결국 내가 안식년에 정말로 정립하고 싶은 것은 ‘안식하는 법’ 그 자체다.


디지털 디톡스가 답일까?

유대인의 안식일은 유별난 것으로 유명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 ‘일’로 여겨,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가 모든 층에 자동으로 선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그들이 지키려는 핵심은 단순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행동은 어떻게든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는 특히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휴대폰이나 유튜브 같은 디지털 자극에서 찾는다. 그래서 “디지털 디톡스만 하면 쉬게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방안에 가만히 있는 것 빼고 다 하는 사람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이 얼마나 ‘가만히 있기’ 어려운 존재인지 집요하게 적었다. 사람은 방 안에 가만히 있는 것만 빼고 다 한다. 가만히 앉아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비참함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주의를 환기시킬 오락을 찾는다. 지금은 휴대폰이 그 역할을 맡지만, 17세기에는 사냥과 구경이 그 일을 했다. 아들이 오늘 죽은 사람조차 금세 토끼 사냥에 몰입한다는 기록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기’에 얼마나 서툰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휴대폰이 아니다. 휴대폰을 치워도, 내 머릿속은 또 다른 무언가로 꽉 찬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으면, 당연히 무엇인가 떠오른다. 나는 그걸 진흙밭에서 물을 퍼내는 느낌에 비유하고 싶다. 잠시 퍼내면 비는 듯하지만, 금세 차오른다.


태양신경총을 이용한 휴식법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꿨다. ‘비우는 법’을 억지로 연습하기보다, 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채우는 법’을 연습해보기로 했다. 단, 자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감각으로.

예전부터 나는 명치 근처에 ‘기운의 구슬’ 같은 감각이 있다고 느껴왔다. 쉬는 게 잘 될 때는 그 감각이 정돈되어 있고 안정적이다. 반대로 정신이 없거나 쉬지 못할 때는 그 부분이 답답하거나, 무언가 얹힌 듯 불쾌하다.

조사해보니 그 부근에는 ‘태양신경총’이라는 신경 다발이 있고 스트레스에 민감하다고 한다. 해부학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상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먼저 예민해지는 지점이 그곳이라는 건 여러 번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감각을 휴식의 질을 가늠하는 ‘센서’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예민한 감각이라 집중의 대상이 되기도 좋다. 나는 이 구슬에 주의를 모아두면 잡념이 들어올 공간이 줄어들 것 같았다.

오늘, 시간이 비는 틈틈이 연습을 해봤다. 집중은 꽤 잘 됐고 잡념이 올라와도 전보다 쉽게 사라졌다. 특히 ‘얹힌 듯 답답한 느낌’이 잠깐씩 풀리며 시원해지는 경험이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의 불꽃

이 감각을 붙잡아두는 데는 철학적 은유도 도움이 됐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불처럼 생겨났다 사그라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칼 포퍼는 우리의 생을 복잡한 산화 과정에 비유하며, 모든 생은 하나의 불꽃과 같다고 했다.

내 명치의 ‘구슬’은 마치 작은 불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고 그 불꽃이 숨을 들이쉴 때 조금 더 밝게 타오르고, 내쉴 때 잦아드는 것을 상상한다. 그 리듬을 바라보고 있으면 ‘살아 있음’이 과장 없이, 그러나 또렷하게 느껴진다.

나는 명상법을 잘 모른다. 이와 비슷한 방식이 이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방법이 지금의 나에게는 효과가 있다는 걸 몸으로 확인했다.


안식년의 목표는 결국 하나다.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는 구멍을 줄이는 것.

이 휴식법 역시 하나의 가설로 두고, 앞으로도 반증을 시도하며 더 나은 방법으로 다듬어갈 생각이다.



실험 로그

- 문제: 쉬고 있어도 마음이 자꾸 분산되며 에너지가 새는 느낌이 든다.

- 폐기된 가설: 자극(휴대폰, 알림, 시세)만 멀리하면 ‘자동으로’ 쉬어질 것이다. 혹은 억지로 머리를 비우면 쉬어질 것이다.

- 새로운 가설: 휴식은 ‘비우기’보다 ‘단순한 감각으로 채우기’에 가깝다. 명치의 감각(내게는 ‘구슬’처럼 느껴지는 지점)과 호흡의 리듬을 앵커로 삼으면, 잡념이 줄고 답답함이 풀린다. 다음 판정은 “잡념이 올라와도 빨리 사라지는지”, “명치의 답답함이 풀리는지”를 체감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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