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션》을 읽고 있다. 오래전에 산 책인데, 일할 때는 잘 안 읽혔다. 안식년에 읽어보니 꽤 재밌다. 소설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여유가 없었을 뿐인가.
마크 와트니가 나와 겹쳐 보였다. 그는 화성에 홀로 남아 일지를 쓴다.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한다. 나도 혼자서 이것저것 한다. 읽다 보니 나도 일지 형태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에세이로 쓰려는 강박이 너무 강했나 싶다. 무엇보다 에세이를 쓰는 데 드는 시간이 너무 많다. 안식년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안식하며 떠오르는 생각과 고민을 일지로 기록하는 게 나도, 독자들도 원하는 게 아닐까.
아! 마침 나도 화성(시)에 산다.
오늘 저녁에는 첫째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인 아린이의 부모님을 우리 집에 초대하기로 했다. 이분들은 목사, 전도사 부부다. 우리 부부보다 띠동갑 이상 나이가 많으신데, 첫째 아이는 우리 첫째보다 한 살 더 많다. 저번에 한 번 초대를 받아서 이번엔 우리가 초대하기로 했다.
오늘의 목표: 즐거운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
즐거운 대화를 위해 무슨 주제가 있을지 고민해 봤지만 잘 모르겠다. 일단 두 분 다 성경에 관한 전문가이니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아니 이건 좀 너무 무겁다.
어느 정도는 나를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대화 상대가 너무 자기 이야기를 안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어려운 법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찾았다. 카네기의 조언:
"상대방이 대답하기 좋아하는 질문을 하라. 그들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말하도록 하라. 당신과 대화하는 상대방은 당신이나 당신의 문제보다 자신의 희망이나 자신의 문제에 백 배나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은 본래 100만 명을 희생시킨 중국의 기근보다 자신의 치통이 더 중요한 법이다."
상대방의 문제, 성취, 고통, 이익. 좋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좋아하는 질문이 뭘까? 도통 감이 안 온다.
일단 연습부터 해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당신의 최고의 자랑이 뭐야?"라고 물어봤다.
"첫째가 예쁘게 태어난 거."
왜냐고 물으니 자기가 어릴 때 부모님이 예쁘고 화려한 걸 거의 안 해줬다고 한다.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조금 커서는 그게 안 어울려서 못했고. 그래서 자기 딸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귀염뽀짝 한 외모를 갖고 태어나 원 없이 예쁘게 꾸며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음! 확실히 효과가 있다. 이 주제로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콘텐츠가 넘쳐난다.
물론 아내한테야 편하게 최고의 자랑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다른 사람한테 그게 가능할까? 어쨌든 포인트는 잡은 것 같다. 이 사람이 대답하기 좋아하는 질문.
하나 더 깨달았다. 왜냐고 묻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힌트를 흘린다. 그리고 그 힌트는 "왜냐고" 물어봐 주길 기다리고 있다.
실험 완료.
아린이네는 방금 집으로 돌아갔다. 아린이 아버님은 8시쯤 되자 갑자기 가고 싶다고 하셨고, 아린이 어머님은 대화가 재밌으셨는지 더 있겠다며 아버님을 먼저 보내버리셨다.
아린이와 첫째는 아무런 충돌 없이 너무 잘 놀았다. 목표한 대로 흐름을 끊지 않고, 최대한 상대가 하고 싶은 이야기—즉 상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근 교회에서 있었던 일, 남편 목사님이 청빙 되어 가게 된 교회 이야기, 이사를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 청빙 된 교회에 기존에 있었던 문제들과 여러 가지 고민들.
준비했던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
일할 때는 이런 실험을 할 여유가 없었다. 《마션》도 못 읽었고, 카네기도 못 읽었고, 대화 연습도 못 했을 것이다. 안식년이 아니었다면 오늘 같은 하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