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 딸들에게 쓰는 편지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오늘은 2026년 2월 14일 토요일, 설 연휴가 시작된 날이다. 날씨가 유달리 따뜻하구나. 영상 11도라 두꺼운 옷차림 없이 돌아다녀도 전혀 춥지 않았어. 다만 겨울철에 날이 따뜻해지면 으레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로 미세먼지가 많아지곤 한단다. 문득 30년 후,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이런 기후 경향이 계속되고 있을지, 아니면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되었을지 궁금해지는구나.
오늘 오전에는 슬이랑 학교놀이를 하며 놀다가, 갑자기 필통을 사달라고 해서 다이소에 다녀왔지. 돌아오는 길에 진이 낮잠도 재울 겸 드라이브를 하며 아빠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단다.
행복한 사람은 과연 스스로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아빠 생각엔 정말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행복한 줄도 모를 것 같아. 마치 정말 건강한 사람은 평소에 '나는 건강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므로 입버릇처럼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내 주변을 가득 감싼 것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루어진단다. 행복의 조건은 이미 충족되어 있어. 습관적으로 가진 것에 감사하면 그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야. 반대로 생존에 필요하지도 않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즉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추구한다면 그건 불행을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어. 그 시선이 '가진 것'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해 있으니까. 이 말이 공감되지 않는다면, 화성에 홀로 떨어져 죽을 고생을 하다 겨우 지구로 돌아온 사람을 상상해보렴. 그에게 마시는 공기와 햇빛, 따뜻한 밥 한 끼가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니?
드라이브를 계속하다 보니 최근 겪었던 불쾌한 기억들이 떠올라 순간 혈압이 오르고 행복한 기분이 사라지더구나. 살다 보면 너에게 무례하게 굴며 기꺼이 적이 되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지. 하지만 역사를 공부해보렴. 수많은 왕과 장군들이 엄청난 권세를 가졌어도 배신당하고 쫓겨났단다. 이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관대하렴. 적에게조차 관대함을 보이면 사람들은 너를 따를 가능성이 높단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것을 퍼주다시피 했어. 친구들이 "다 주면 자네에겐 뭐가 남나?" 하고 묻자, 그의 대답은 "희망이지"였단다. 그것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 지점이었지. (물론 그조차도 나중엔 부하들의 거부로 회군해야 했지만 말이다.)
배신을 당했거나 불쾌한 일을 당했거든, 오히려 그것을 너의 관대함을 증명할 기회로 여겨라. 아빠도 참 안 되는 일이지만 말이야. 사실 적을 제거하는 것이 원시 시대에는 생존에 더 좋은 전략이었을 거야. 그래서 우리 DNA 깊은 곳에는 그 본능이 남아 우리를 괴롭히는 거지. 하지만 인류가 거대한 사회를 이룬 지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관대한 전략'이 승리할 확률이 훨씬 높단다. 본능과는 정반대의 결과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이기적인 관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제 엄마랑 본 <이혼숙려캠프>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부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구나. 아내는 버려질 것에 대한 불안(유기불안)이 너무 커서 남편을 먼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쉽게 하는 사람이었어. 사람은 누구나 '취약점'이 있단다. 평소에 일상에서 자신의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들을 기록해두면 좋아. 그게 바로 너의 취약점이니까.
찰리 멍거 할아버지는 "천재가 되려 하지 말고, 바보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라"고 했어. 아무리 잘 살아왔어도 한 번의 바보 같은 행동으로 모든 걸 망칠 수 있거든. 대개 그런 행동은 자신의 취약점이 건드려져 이성을 잃을 때 나온단다. 그러니 내 취약점을 잘 알고 안전장치를 만들어두는 게 '바보 같은 짓'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이야.
아빠의 취약점은 지난 편지에서 말한 '천재의 가면'이란다. 스스로 그리 똑똑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남들이 그렇게 봐줬으면 하는 욕망. 그게 강하다 보니 '확증 편향'에 빠져 스스로도 속게 되더구나. 물론 20대에는 이런 착각이 도움이 될 때도 있어. 젊을 땐 내 한계를 모르니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경험도 중요하거든. 한계를 아는 것 또한 바보 같은 짓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되니까. 세상에 모든 상황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철학은 없단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지혜를 선택하면 돼.
아빠는 편지를 쓰면서도 늘 '내가 잘 모르면서 하는 말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아빠의 말을 율법처럼 여기지 말렴. 아빠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너희 스스로 생각한 의견이 있다면 그게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란다. 이 편지가 너희에게 새로운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이만 줄이도록 하마.
사랑을 담아서,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