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오늘은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우리가 함께 '하츄핑 뮤지컬'을 보러 간 날이란다. 아빠가 육아휴직 중이라고 해서 집에만 있기보다는, 너희에게 좋은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어 나선 길이었지.
오늘 아침, 우리 슬이는 무척이나 설레었나 보더구나.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깨어 안방으로 넘어와서는 내 곁에서 뒹굴뒹굴하며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지. 그러더니 비장하게 토끼 인형을 챙겨야겠다고 하더구나. 토끼에게도 뮤지컬을 보여주고 싶다나..
오전에는 슬이가 어린이집에서 타임캡슐을 만들고 왔다. 11시에 행사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바로 강동 아트센터로 향했다.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고 공연장에 들어갈 즈음, 엄마는 둘째 진이를 데리고 친구를 만나러 갔단다. 친구가 서울에 온 김에 겸사겸사 만나기로 했던 건데, 미리 설명해주지 못해서 우리 슬이가 눈물을 보였지. 엄마랑 꼭 같이 보고 싶었는데 아빠랑만 보게 되어 아쉬웠을 거야. 아빠가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다이애나핑 사진을 찍어서 꼭 엄마에게 보여주자"고 달래니, 다행히 금방 마음을 풀고 공연을 아주 즐겁게 즐겨주더구나.
돌아오는 길, 엄마와 합류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육아란 참 신기하게도 늘 새롭다는 것을 말이야. 너희는 매일 내 곁에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언제 이렇게 컸지?', '언제 이런 걸 할 수 있게 됐지?' 하며 아빠는 매일 놀라고 있어. 얼마 전 진이가 빈 통을 보며 "없어! 없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부터, 오늘 슬이가 그림 속 손가락을 디테일하게 그려낸 것까지. 사람들은 기적을 보지 못하고 산다지만, 너희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는 매일 기적을 목격하고 있단다.
사실 우리는 생명이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하지만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정말이지 신비롭고 거대한 기적이야. 생명은 참으로 연약하단다. 영상 100도가 넘거나 영하 100도 밑으로 내려가면 살 수 없지. 그런데 우주 전체를 보면 수천 도의 열기나 절대영도의 추위가 오히려 일반적이야. 지구가 가진 온화한 조건은 우주에서 극히 드물단다. 더 놀라운 건, 지구가 이 기적 같은 조건을 수십억 년간 유지해왔고 그 시간 끝에 '인간'이라는 고등 지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아마 우주 전체를 뒤져봐도 우리 같은 존재는 거의 없을 거라 아빠는 생각한단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늘 기적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야. 바다가 갈라지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단다.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요약한 구절이 있어 아빠가 적어두었어.
"만약 우리가 행복이나 안락함, 타인의 칭찬 등을 갈구하지 않는다면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 욕망을 줄일수록 고통도 줄어든다. 마음을 닦으면 필요한 것 이상은 원하지 않게 된다."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게 된다'는 말에 아빠는 한참을 생각했단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의 표현처럼 우리는 생존을 위한 기계일지 몰라. 무언가를 더 가지면 생존에 유리할 거라는 착각 때문에 끝없이 욕망하고 괴로워하지.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얼마 전 읽은 소설 <마션>의 주인공은 화성에 홀로 남겨져 생존 투쟁을 해. 그에게 절실했던 건 딱 네 가지였어. 물, 음식, 공기, 그리고 우주 방사선을 막아줄 장기장.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건 그 정도뿐이란다. 이미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갖춘 기적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니?
그러니 우리 딸들, 헛된것을 바라지 말고 이 놀라운 기적을 매 순간 누리며 살아가렴.
이만 줄이도록 하마.
사랑을 담아,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