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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Mar 13. 2022

대선의 의미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기어이 바꾸려는 용기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개인적으로 선택의 난이도가 가장 높았다. 어느 때보다 각 분야에 관한 후보자들의 공약을 열심히 비교해봤고, 그들의 언행을 곱씹어 보았으며,  '눈떠보니 대통령 테스트'도 실시해보았다. 뉴스레터 서비스 뉴닉에서 제공한 이 테스트는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여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이상적인 대한민국의 모습과 자신이 발휘하고 싶은 리더쉽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구체화하게 해주었다. 덕분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후보자들의 지향성을 쉽게 비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과, 내가 선택한다 하더라도 과연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란 무력감을 떨치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나름의 책임을 다한 이유는, 투표라는 행위가 어떤 지향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초엽의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세계가 멸망했다고 생각되는 때에 재건된 공동체와 그 속의 개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의 전 부분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다음과 같았는데,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라는 작가의 말이었다. 나는 어쩌면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기어이 바꾸려는 용기를 발휘해보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방향성도 필요하지만 세상을 힘써 사랑하기 위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어가고 싶다는 용기 자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무력감과 패배감을 자아내현실이지만, 잘못된 현실에 직면해 이를 바꾸어 내겠다는 용기가 결국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선의 가시적인 결과와 상관 없이, 나는 대선의 과정에서 많은 용기를 목격하였다. 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 조정되면서 선거권을 얻은 일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진지한 마음으로 투표에 참여하였으며, 산불 피해 이재민들도 자신들의 소중한 권리를 잊지 않았다. 집이 잿더미라 경황이 없는 가운데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러 왔다는 인터뷰를 들으며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면서도 뭔가 감동적이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기어이 바꾸려는 용기 있는 개인들이 이토록 많은 것이다. 물론 투표에 참여한 사람마다 지지하는 후보자가, 또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나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본인이 마주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든 바꾸고자 하는 그 마음이, 투표장에 찾아와서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나 미약하게 보이는 한 표를 행사하게 만든 그 발로가 실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는 바로 그 개인들이 희망이기도 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표는 산술적으로 계산되고 정치적으로 해석되며 다양한 가치를 함의할 것이다. 누가 당선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개인들이 보여준 각각의 선택과 용기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러한 용기가 좌절되지 않는, 국민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정치가 펼쳐지면 정말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 이 글을 쓰는 데에, 내가 어떤 후보자를 지지했는지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은 들지만서도 내가 지지한 후보는 당선 확률이 낮았으며 당선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다면 적어도 내가 지지한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어 기쁜 나머지 대선의 의미를 낙관하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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