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든, 자신의 회사 책상이든,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둘러보았을 때 쓸모없는 물건이 하나쯤 있다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쓸모없는 시간이 있다면? 쓸모없는 물건을 쓰레기통에 재빨리 버리고, 쓸모없는 시간을 의미 있는 무언가로 채우려고 노력하기 전에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적극적으로 사유해보았으면 좋겠다.
대학 동기 중 나와 비슷한 환경과 성향을 지닌 친구가 한 명(이하 ‘박’) 있다. 박과 나는 우리의 삶을 ‘볶음밥 라이프’라고 명명하였는데, 볶음밥 라이프라 함은 노력하면 안 될 것 없다는 성공 신화를 강렬히 신봉한 나머지 스스로를 들들 볶아 어떻게 해서든 쓸모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정체성과 그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이론에 따르면 중학생 때 우연히 공부를 잘한 나머지 칭찬을 듣게 되고, 잘하는 것을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계속 스스로를 들들 볶아가며 고등학교 생활을 분투한 바,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였으며 여전히 스스로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밀고 의미와 쓸모를 따져가며 피곤하게 살아가는 볶음밥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쓸모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는 듯이 스스로를 못살게 굴며 들들 볶아대는 삶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약간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갖추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 볶음밥 위로 부드럽고 포슬포슬한 계란 옷을 입힌 오므라이스와 같은 행색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볶음밥으로, 그것도 아주 맵고 뜨거운 김치 볶음밥으로 살아가는 박은 때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은 불패의 성공 신화를 살아온 대단한 친구다. 노력해서 성취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노력과 성실의 의인화 그 자체이다. 한 번의 실패 없이 명문대 진학, 휴학 없이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입사 성공, 어려움과 아쉬움 없이 또다시 대기업으로 이직 성공한 30년 치의 삶은 누가 봐도 부러워 할만한, 엄친딸의 그것이다. 심지어 박은 아주 예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잘 찾아 꾸미는 재주 또한 지니고 있는데다가 경제 분야를 끊임없이 공부하여 공격적인 재태크로 재산을 불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 사전에 실패란 없다’라는 식의 볶음밥 시나리오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었으니, 실용성의 철옹성이다.
쓸모없는 것이 정말로 쓸모없을까? 퇴근 후 깨끗이 샤워를 마친 채로 침대에 기대 앉아 잠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웹 세계를 서핑하는 일, 강아지를 끌어안고 털뭉치 사이로 새어 나오는 꼬순 살내음을 하염없이 들이마시는 일, 점심시간이 끝난 뒤 책상 앞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멍 때리는 일, 책상 한켠에 놓인 애인에게서 받은 말린 꽃을 쳐다보며 미소 짓는 일, 남들이 시간 낭비라고 말하고 나 역시 사용할 일은 없어 보이지만 내가 배우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 공부하는 일.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들은 그야말로 ‘must(해야 한다)’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지 않나. 휴식이란 하는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 없는 상태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박은 실용성의 철옹성 속에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강박에,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쪼개 운동, 독서, 경제 공부, 피부과 방문, 친구와의 약속으로 채우고 이 모든 것을 해내고야 맒으로써 쓸모없는 시간이 0에 수렴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발이 다쳐 운동이 어려워지자 가만히 누워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실을 사서 가방을 무려 12개나 만들었고(그것도 다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손목에 치명적인 근육통을 얻고 말았다. 머스트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박의 모습을 지켜보며, 정확히는 매운 맛 김치 볶음밥에서 마라 맛 김치 볶음밥으로 점점 진화하는 박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박이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을 느끼고 쉬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모없는 것을 사랑하기가 어려운가? 사랑까지는 어렵더라도 쓸모없는 것도 쓸모 있을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은 쓸모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 역시 쓸모 있을 때도 있지만 쓸모와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로 충분히 환대받을 수 있는 자가 아닌가. 때로는 쓸모없고 하찮은 나일지라도 누군가에겐 그저 바라만 봐도 기분 좋고 더 알고 싶어지는 한 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쓸모가 없어도 괜찮다.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는 쓸모없는 것들이, 쓸모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들이 휴식 같은 시간과 여유로움을 선사함을, 때로는 멍하니 생각을 비우고 때로는 마음 깊은 틈까지 내려가 사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됨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