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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Apr 16. 2022

욕망의 제동장치

세상 사람이 술을 탐하여 번번히 실수를 범하니
마땅히 잔의 표면을 따라 채우고 비워짐이 보이게 만들었네.
가득 차면 이내 비워질 것이니
잔의 중간을 넘어 바닥까지 탐하지 말게나.  -「하재일기」, 1904년 12월 10일-

   친구의 제안으로 찾아간 공예 박물관에서 나는 운명적인 만남을 경험한다. 해치 모양의 계영배 받침이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이 더욱 일찍 이루어져야 했던건 아닐까 한탄했다.


  나의 모교는 막걸리 찬가가 울려 퍼지고 (적어도 나의 재학 시절에는) 날 좋은 날이면 잔디밭에서 다들 낮술을 해대는 통에 비어 있는 잔디밭을 찾기가 어려웠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가장 간이 튼튼하고 체력이 좋은 시절을 보냈으니, 평생 마실 술을 대학 생활 동안 다 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어린 나이의 객기를 십분 발휘하여 술의 멋과 맛을 모른 채 그저 취하여 놀기 위해서 술을 마셔댄 통에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매우 많다. 문제는 내가 기억하는 에피소드는 거의 없다(?)


  내가 술에 취해 벌였던 사건 사고들을 떠올리자면-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 어떤 기억도 떠올릴 수 없으며 전적으로 목격자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짠함과 취한 나를 처리하며 각종 고충을 겪어야만 했던 지인들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나 크기에 간략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겠다. 나는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바래다주던 직장 동료의 바지에 토한 적이 있고,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날 맨발로 술집을 뛰쳐 나가 공사장을 누빈 적이 있으며, 뒷풀이에서 사라져 혼자 학교 광장에서 쓸쓸히 춤-TMI로, 나는 대학생 때 탈춤을 연마했는데 나는 소고를 들고 한 맺힌 독무를 추는 문둥이 역할이었다.-을 추는 모습으로 발견된 적이 있으며, 지금 어디냐는 아빠의 질문에 ‘동묘앞’을 ‘쫑묘앞’이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으며, 술에 취해 응원을 하며 연대생을 도발하다가 제풀에 나뒹굴어 다리에 깁스를 한 적이 있으며, 술에 취해 길을 잃고 경찰차를 타고 귀가한 적이 있으며…‥. 나열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두 발로 들어가서 두 발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는 술집-두번째 TMI로, 이곳은 안암의 춘자다. 그 당시 춘자는 지하에 위치했는데 검색해보니 지금은 지상으로 이전했으며 대대적인 인테리어를 감행하였다. 아마도 지상으로 기어올라간 사람이 나 말고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이 있고, 술에 취한 채로 사귄 사람도 있고, 술에 취한 채로 헤어진 사람도 있으며, 술에 취한 나를 기어이 업겠다는 썸남이 본인도 취한 나머지 나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생긴 기다란 흉터도 등에 여전히 남아 있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수록 내가 진상이었다는 사실만 드러나기에 미제 사건으로 종결시켜버리고 싶은 일들이 가득한 곳, 바로 술집이다.” 김혜경의 책, <아무튼, 술집>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읽은 후에 민간인 불법 사찰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을 정도로 나는 한번 술을 마셨다 하면 필름이 끊긴 채로 온갖 기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술을 자주 마셨으며 그때마다 번번이 취했기 때문에,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못 견뎌했고 여기저기 사과를 하고 다녔다. ‘내가 다시 취하면 인간도 아니야’라는 말을 1000번쯤 넘게 했으며, 결론적으로 나는 인간이 아니다.


  술을 마시고 싶고, 또 마시면 마실수록 더 취하고 싶은 나의 욕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이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술을 마셨다 하면 취해서 집에 찾아가지 못할 정도인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술 마시는 것을 만류하는 남자친구들과는 어김없이 헤어졌고, 부모님께는 엠티를 가는 척 위장하여 외박을 일삼았으며, 교회에 나가 열심히 회개 기도를 해보고 지인들에게 사과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술이 새어나간다. 욕망에 걸리는 일종의 제동 장치인 것이다. 술독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던 나에게 누군가 계영배를 선물해줬더라면, 아마 나의 흑역사는 조금 나아졌으려나? 사실 내가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게 된 계기는 뚜렷하지 않다. 그 무렵에 좋아하던 남자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과 나 역시 교회에 열심히 나가던 시기라는 점이 짚이기는 하지만 나는 주(酒)님의 은혜에 흠뻑 젖고 또다시 주님께 회개했던 시절이 길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술 먹고 실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다짐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점차 부끄럽기도 했고, 술을 마시고 난 후의 건조한 피부 상태를 견디기 어려울 만큼 노화가 시작되었다. 또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를 체감하였으며 코시국이 장기화되며 모임 자체가 어려웠기에 술을 마실 만한 자리도 없어졌다. 이런 저런 상황이 겹치면서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다. 비로소 나의 비뚤어진 욕망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생이 참으로 기이한 것이, 그 당시에는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던 어떤 사소한 것들이 계기가 되어 변화를 일으키고 또 다른 삶의 국면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만약 계영배와 같은 선물이 20대 초반의 내게 주어졌다면, 오히려 나는 계영배를 핑계로 술을 마셔야 한다며 술자리를 더 만들어 더 많은 흑역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계영배가 아닌, 내 삶의 순간들에 발생한 작은 일들이 나의 욕망에 제동을 걸고 나를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켜왔다. 지금의 나는 집-회사-체육관을 반복하며 10시면 눈이 감기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금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 이곳에 내가 어떻게 왔는지, 내가 어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 패닉에 빠지는 일은 더 이상 없다.-소름끼치게도 이 장면은 내 단골 악몽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직도 간혹 경험하곤 한다.- 더 이상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 없으며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 때문에 사과해야 할 일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나는 계영배와의 만남이 반가웠다. 계영배가 있어도 쓸모 없다고 느낄 뻔한 과거가 아니라 계영배가 없어도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지금, 계영배를 알게 되어서 반가웠다. 심지어 이 계영배는 해치 모양이다. 정말 깜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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