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유령이 있다는 걸 깜빡했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쳐다보니, 싱크대 언저리에 할머니의 뒷모습이 있었다. 끓인 물을 느릿느릿 찻주전자에 붓고 있었다. 실제로 물이 끓고 있거나 주전자가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반투명한 모습의 할머니가 흐늘흐늘 그런 몸짓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조금씩. 평소의 움직임, 평소의 흐름으로 정성스럽게. 그것은 할머니의 어머니와 또 그 어머니로부터 오래도록 계속되어 온 푸근하고 마음 놓이는 방식이리라. (...)
그리고 건넛방에서는 할아버지가 체조를 하고 있었다. 헐렁한 속바지 차림으로 굽은 허리와 다리를 천천히 펴면서, 한 동작 한 동작을 꼼꼼하게. 이렇게 하면 몸이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이라고 그는 믿는 것이리라. (...)
하나도 안 무섭네 뭐,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다.
저 사람들, 자기들이 죽었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거겠지. 그냥 평소대로 살아가는 거겠지, 영원히.
-요시모토 바나나, <막다른 골목의 추억>-
어린 시절 나는 꽤 오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나, 동생으로 이루어진 대가족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나와 내 동생은 연년생인 터라 어린 나의 주 양육자는 할머니였다. 그녀는 나에게 숨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나는 이토록이나 견고하게 서 있다. 때때로 나는 나 혼자 알아서 잘 컸다고, 나 스스로 잘해왔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서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랑이 필요했는지 떠올리면 마음이 벅차다. 나에게 숨을 불어 넣은 그녀는 더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내게 할머니라는 기호는 지시 대상을 잃었다. 내 할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할머니가 죽었다. 일본어 동요를 불러주었던 나의 할머니. 일본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녀는 친구들을 따라 한국으로 가자고 졸랐고, 그렇게 돌아온 조국에서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둘러 혼인을 했다. 매 맞는 여자였던 나의 할머니. 당신을 끔찍히 사랑하는 남편에게 때로는 손찌검을 당했다. 아름다웠던 나의 할머니. 그녀는 세상에서 정윤희가 제일 예쁘다고 말했지만, 나는 사진 속 젊은 그녀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풍만한 가슴을 보고 내게 없는 것을 간절히 소망했다. 손녀라서 내게 실망했던 외할머니와 달리 나를 끔찍히도 사랑했던 할머니. 교회에서 권사님들과 좋은 곳을 다닐 때마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꼭 나를 안고 업고 다녔다. 우리 엄마가 천사라고 말하는 나의 할머니. 집안일을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막내 며느리를 데리고 살았던 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화 한 번 내는 법 없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양념 갈비를 유난히도 좋아하셨던 나의 할머니. 자주 갔던 식당의 갈비 맛이 변했지만 어른 중 아무도 선뜻 이야기하지 못할 때 맛이 없다며 밥 먹기를 거부하던 어린 손녀 이야기를 맨날 했다. 해외 여행 때 비행기 담요를 챙겨왔던 나의 할머니. 그 담요는 나 어릴적 배냇이불이 되어주었고 지금까지도 나의 애착 이불이다. 내가 자랑이었던 나의 할머니. 점잖고 말이 없어 자랑하거나 뽐내는 일이 없는 그녀는 당신의 손녀에 대해서는 여기 저기 서투른 자랑을 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나의 할머니. 그녀는 끝내 총기를 잃었으나 손녀의 이름은 절대로 잊지 않았다.
나를 살린 할머니. 그리고 더이상 살지 못하는 할머니. 그러나 소설 속 유령의 모습처럼 얼마든지 떠올려볼 수 있는 할머니의 기억들이 남은 나를 여전히 살릴 것이다.
*이번 글의 배경 사진은 박혜원의 <유츠프라카치아>를 촬영한 것이다. 작품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생몰 일자와 이름이 기록된 납골당의 황동 이름표를 재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자주 찾아와 돌보는 고인의 이름표는 반질반질한 처음 모습 그대로, 더 찾는 이가 없어 잊힌 이름표는 부식되고 변색된 채로 남아있다. 삶 속에서 이어진 사람과의 관계가 죽어서까지도 이어지는 관계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이야기할 때 비유되곤 하는 아프리카 열대식물 유츠프라카치아는 '사람의 영혼을 가진 식물'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