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인 백패커는 백종원과 연예인들(이하 팀 백종원)이 가방 가득 재료를 싣고 의뢰지를 찾아가 기깔나는 한 상을 대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최근에 인상 깊게 보았던 에피소드는 할머니들을 찾아가 MZ(세대에게 핫한) 음식을 대접하는 거였다. 할머니들은 직접 마을 벽화에 그림을 그리시거나, 미술 교실에 찾아와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 분들이셨다. 미술 교실을 운영하는 선생님께서, 혼자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은 보통 식사를 대충 때우시기 때문에 미술 교실의 핵심이 다름 아닌 한 끼 대접이라고 말했다. 의뢰를 받은 팀 백종원은 호박 크림 수프, 빠네 파스타, 치즈를 듬뿍 올린 함박 스테이크, 멜론을 동동 띄운 멜론 빙수를 할머니들께 대접했다. 식사를 하시는 동안 할머니들은 살다 살다 이런 거 처음 먹어본다, 유명하신 분인데 너무 감사하다, 90 평생 처음이다, 백종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등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셨다. 심지어 백종원이 메뉴 설명을 할 때마다 박수를 계속 치시며 아이 같이 좋아하셨다. 특히 몇몇 할머니들은 집에서 기다리는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남은 빵도 챙겨가시고 집에 가다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빙수도 기어이 챙겨가셨다. 진짜로 귀하고 좋은 걸 드셨구나, 싶어서 괜스레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났다.
사실 할머니들이 평소에 드시던 음식은 쌀밥과 김치, 밭에서 나는 채소, 장류를 곁들인 국이나 찌개, 전이나 국수 등이다. 할머니들은 파스타도 제대로 드셔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메뉴를 설명하던 백종원은 '빠네 파스타는 빵에 파스타를 넣어서 빵에 파스타, 빵에 파스타, 빠에 파스타, 빠네 파스타'라고 할머니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었다. 달궈진 라클렛 치즈를 바로 함박 스테이크 위로 붓는 광경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평소에 고추장과 된장을 주로 드셨다고 해서 그것만 좋아하시는 것도 아니었고, 할머니들이 치즈를 느끼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했던 것도 기우였다. 우리들 입맛에 맛있는 음식이라면 할머니들 입맛에도 맛있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스크림 중에 비비빅을 제일 좋아하는데 팥이나 흑임자 따위의 곡물 맛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입맛을 소위 '할미 입맛'이라고 하지 않나! 단지 할머니들은 그런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없어서, 그래서 좋아할 수가 없었던 거다.
얼마 전 가족끼리 외식을 했다. 평소라면 커피나 테이크 아웃해서 집으로 바로 돌아갔을 텐데 날도 좋고 모처럼 가족 모두가 쉬는 날이고 해서 예쁜 카페에 가서 맛있게 커피를 먹자고 제안했다. 차를 타고 행궁동에 가면서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행리단길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동생과 같이 부모님을 데리고 행리단길 곳곳을 걸으면서 구경도 하고 포토부스에 끌고 가 가족사진도 찍었다. 뭔가 제대로 꾸미고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그냥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게 나에게도 또 부모님에게도 너무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나 보다. 엄마는 다음에 또 사진 찍으러 오자고 말했고 아빠는 카톡 프로필 사진을 가족사진으로 바꾸었다. 시원한 카페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면서 엄마는 산미가 강한 커피를, 아빠는 고소하고 바디감이 묵직한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을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사실 내가 권하지 않았다면 엄마, 아빠가 스스로 할 수는 없었을 무언가들이 모두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별로 한 것은 없었지만 선물 같은 하루였다.
엄마, 아빠, 나아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는 새로움이라 할만한 것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요즘 뭐가 유행인지 잘 모르실뿐더러 나서서 뭔가에 도전하기에는 몸이 협조적이지 않다. 그래서 자녀가 그리고 손주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지 않는 이상 경험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그런데 잊지 말고 기억하자. 우리가 즐거운 것은 그들도 즐겁고 우리가 맛있는 것은 그들도 맛있다. 단지 그들이 그것을 좋아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좋아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그래서 가끔은 열렬한 영업 사원이 되어 나의 부모에게 뭔가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설사 영업에 실패하더라도 나의 부모라면 나와 뭔가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꺼워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영업에 실패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고객은 그들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