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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Mar 05. 2022

 SNS와 착시 현상

  SNS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수도 있다. (코시국에 사람들 만나기도 어려운데 SNS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저에게 비법을 알려주세요.) 나로 말하자면, 페이스북은 탈퇴한 지 오래요, 트위터는 작동 원리조차 모르며, 인스타그램은 남의 별천지다. 내가 유일하게 하는 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카오톡 뿐인데, 다행히도 나는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편이므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감사히 보고 있으며 덕분에 최신 소식과 경향 따위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뒤쳐지지는 않았다. SNS를 거의 하지 않는 내가 SNS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SNS 이용에 소극적인 나조차도 무시 못할 만큼 어떤 착시 현상이 목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SNS의 세계에서 이용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때로는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을 적극적으로 게시한다. SNS의 접근성과 표현의 편리성, 전파력에 힘입어 일반인들도 다양한 내용을 공유하며 SNS 스타로서 인기를 끌 정도다. 어떤 이용자들은 누군가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페이스북- 리트윗-트위터-하는 방식으로 재생산한다. 일부 기자들은 유명 인사의 SNS를 그대로 옮겨와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제발 놔두세요, 좀, 이라고 내가 다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누군가의 일상을 기사로 옮기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의 게시글이 화제가 된다면, 좌표를 찍고 SNS에 몰려가서 일종의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SNS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다양한 표현을 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SNS의 내용 그 자체가 여러 차원의 소통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활발성은 마치 SNS가 각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거창하게는, 다성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 같다는 착시를 유발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엘레-노이만은 매스미디어의 특성에 기반하여 '침묵의 나선 이론'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주장하였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고립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끊임 없이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여 자신의 생각과 지배적인 의견-주류-이 일치할 경우에는 자유롭게 발언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의견을 감추고 조용해진다고 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의 SNS 이용자들은 시시각각 타인의 게시글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순식간에 게시글이 생산되고 공유되며 심지어는 기사화된다.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다른 사람들의 지배적인 의견이 무엇인지 쉽게 공유되며 이는 곧 확대된다. 순식간에 주류-의 시선 혹은 입장-가 형성되고 침묵의 나선은 가속화된다.  

  게시글의 수로 표현의 자유를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숫자의 착시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는 다성에 기반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는 바탕이 필요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가 아니면 자유가 아니라고 하였다. SNS가 주류와 조금 다른 생각들도 부담 없이 마음껏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시선을 통해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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