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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루 Feb 28. 2023

아들 시집살이

영원한 짝사랑


“엄마,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표정이 어둡네요”

“아니, 그냥 무표정인데...”


아들은 내 표정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아들 앞에서는 표정관리를 좀 잘해야 한다.


난 성격이 무뚝뚝하다. 마음속 상태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편이다. 거짓말을 잘 못 한다. 게다가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 상냥한 천성 여자인 사람을 보면 같은 여자이면서도 참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을 쉬이 바꾸기 쉽지 않아서 때때로 아들 녀석에게 들키곤 한다. 다행히 옆지기는 무덤덤한 성격에 적응이 되었는지 별 말이 없다.


"난 너무 애교 있는 여자를 보면 더 부담스러워~ 무슨 꿍꿍이가 있는 사람 같아."

"그래? 내게 적응이 되어서 더 그런 거 아닐까."


“우리 아들은 애교 있는 여자를 좋아해서 나중에 그런 여자 친구 사귀게 될 거 같아”

“녀석이 아직 어려서 그래, 겉으로 애교 부리는 여자보다 마음이 고은 사람을 찾아야지. 예쁜 여자는 조심해야 하는데(중국 무협소설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기는 말이다 후후)”


옆지기가 하는 말을 듣고 보니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 말은 함께 사는 사람이 무뚝뚝하긴 하지만 마음이 고은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까.


친정 엄마에게 내 표정을 지적하는 아들 녀석 불평을 늘어놓으면 엄마는 ‘그게 다 아들 시집살이 하는 게다. 아들은 나와 性(성)이 달라서 키우기 힘들거든...’ 말하곤 하셨다. 정말 시어머님도 안 시키는 시집살이를 이렇게 아들 때문에 하게 될 줄이야...


아들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무사히 잘 보내고 일찌감치 정신을 차렸다. 예민한 사춘기 시기엔 정말 아들 대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말을 해도 뾰족하게 날을 세운 태도가 낯설었다. 무엇보다 힘든 시기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아들이 더 힘들었다.


시어머님과 팔당에 있는 통일정사에 가려고 온 식구가 한 차를 탔다. 손주를 직접 길러주신 어머님은  아들 옆에 앉아서 손을 잡고 이리저리 보시다가 왼손이 좀 이상하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왼손이 오른손에 비해 유난히 가늘어 보였다. 동네 병원에 가봤지만 병명을 몰라 근처 대학 병원으로 갔다. MRI를 찍고 근육 검사도 했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했다. 올케 언니를 통해 아산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다. 큰 병원이라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아들의 증상을 말하며 물어보았다. 루게릭병인가 무서운 상상도 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유명한 신경외과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MRI 영상을 살펴보신 의사 선생님은 병명을 바로 말해 주셨다.


“여기 보세요, 척추 5번과 6번 사이가 약간 찌그러져 있지요. 이건 한쪽 손의 근육이 점차 줄어드는 병이에요. 보통 15세~20세에 발병하고 그 상태가 계속되는 병이죠. 더 악화되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어쩌면 이걸로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요.”


아들은 농구를 아주 잘했다. 너무도 지나치게 농구에 빠져 지내는 날이 많았다. 대회도 나가 상도 탔다. 농구는 아들에게 자신감을 선사해 주었다. 농구를 하다 아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척추 어딘가에 손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왼손 근육이 줄어드는 병에 걸린 거다. 농구를 못하게 하니 아들은 미칠 듯 반항을 했다. 차차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다리가 아니라 팔이라 다행이야, 오른손이 아니라 다행이야.’ 난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아들은 이걸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첫 번째 신체검사에서는 담당의가 없어서 판정을 못 받았다. 대구에 있는 본원까지 가서 두 번째로 검사를 받은 후 5급 면제를 받았다.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군대를 아들은 가고 싶어 했다. 자의가 아니 타의로 군대를 못 가게 된 것이 싫은 모양이다.


아들은 기숙사에서 대학 1년을 보냈다. 집을 떠나 마음껏 청춘을 발산했다. 그 후유증으로 내상을 입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발병률이 높다는 염증성 대장염이다. 바깥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그 병도 알아내기까지 한 달 여를 방치했다. 학교와 안양 집 근처 병원에 갔지만 병명을 알아채지 못했다.


시어머님이 시댁 근처 용하다는 내과를 예약해 주셔서 진료를 받았다. 거기서 대장내시경을 하고 강북삼성병원으로 연결해 주었다. 일주일 입원하면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병명은 예상대로 염증성 대장염이었다. 축구를 하다 다친 다리가 잘 낫지 않은 이유도 그 병 때문이었다. 대장염을 치료하자 다리도 씻은 듯 나았다. 이 병은 일종의 류머티즘 관절염과 같은 부류였다. 세상에는 정말 난치성 희귀병이 많았다. 평생 식단 조절을 하며 조심해야 하는 병이다. 완치가 없는 관해 유지가 관건이 병이란다. '관해'란 나빠지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감이 과했던 아들은 병치레를 하면서 조금씩 세상과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 그걸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부모는 애가 탄다. 지금은 직장과 가까운 시댁에서 생활하고 있어 아주 가끔씩 아들 얼굴 본다. 아들을 만날 때는 밝은 표정을 짓도록 노력한다. 내 얼굴 표정에 민감한 아들에게 불안한 내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제는 나도 아들의 상황이 안타깝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예민한 장을 가진 내 유전자를 물려받아 그렇게 된 건가 자책도 많이 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새롭게 유행하는 현대병이라며 위로해 본다. 부디 먹는 것 잘 가려 먹고 조심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란다.


중년의 얼굴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때부터는 타고난 얼굴이 아니라 스스로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얼굴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제부터라도 아들 녀석 말대로 웃는 얼굴을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남들이 고치라고 해도 고칠 생각을 못했던 얼굴 표정을 아들 녀석 때문에 고쳐보련다. 나아가 앞으로의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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