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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루 Oct 22. 2022

요리 본능

요리하는 남자의 뒷모습은 섹시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의 집에 있는 냉장고를 그대로 가져와서 셰프 두 명이 15분 안에 요리를 만들어내는 방송이다. 잘해 먹는 사람은 재료가 풍부했지만 매식을 주로 하는 사람은 냉장고가 텅 비었다. 빈약한 식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뚝딱 해 내는 마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가 더 극적인 효과를 내게 된다. 기대치가 낮은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방송으로 유명세를 얻은 셰프도 여럿 생겼다. 그중 한 웹툰 작가가 있다. 요리를 전문으로 하지는 않지만 좋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그게 신선했다. 완성한 요리 때깔은 평범하지만 맛을 보면 엄지 척을 하게 된다. 그에게 요리는 본능이었을까?     


옆지기가 손수 해준 다양한 요리


친정엄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지 않았다. 푸짐한 요리를 하기보다는 정갈한 음식을 해주셨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생선과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다. 아버지께서 한 말씀하셔야 다음날 고기가 식탁에 올라왔다. 청소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정작 중요한 상차림은 소홀히 하는 것 같았다.

‘난 나중에 청소보다 음식에 더 신경 쓸 거야.’ 혼자서 다짐하곤 했다. 청소는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반면 요리는 하면 효과는 배가 된다.


결혼하고 직장 생활을 하느라 주로 시어머님 밥을 얻어먹었다. 어머님은 고기를 좋아하셨다. 고기 요리가 자주 상에 올라왔다. 솔직히 채소보다 고기가 손질하기도 편하고 요리하기도 쉽다. 나물은 다듬고 씻고 데치고 하는 여러 과정을 거치지만 고기는 양념장에 재 놓기만 하면 된다. 고기가 메인이면 밑반찬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한식은 손이 많이 가지만 중식은 그에 비하면 금방 할 수 있어서 좋아!”


옆지기가 중국 요리를 만들면서 늘 하는 얘기다. 중식은 주로 기름에 튀기거나 볶는 요리가 많다. 다이어트에 적이라 생각해서 잘 안 해 먹었다. 지방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옆지기는 하나둘 중국 요리를 만들었다. ‘고단백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체중조절에 성공한 다음이다. 요리프로를 챙겨서 시청하고 요리책도 사 왔다.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유튜브로 찾아서 꼼꼼히 본다. 그리곤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든다. 대충 하는 거 같은데 맛이 있었다. 옆지기는 한번 꽂히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잦은 중국 출장으로 요리 본고장에서 먹어본 요리도 다양했다. 많이 먹어봐야 맛도 잘 내는 모양이다.


“우와! 정말 맛있다. 당신, 잠재된 요리 본능이 깨어난 모양이야”


짬뽕이나 자장면은 기본이고 깐풍기, 라조기, 동파육, 마라상궈, 훠궈, 어향가지, 유산슬, 누룽지탕, 전가복 등등 먹어본 요리가 아주 많다. 옆지기는 중국 요리를 아주 잘 만든다. 동영상으로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는데 일류 중국집 못지않다. 아마도 시아버님의 요리 유전자를 그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최근 불어온 먹방과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로망이 한몫한 듯하다.     


내 생일날 해준 랍스터 요리


인생을 먹고사는 이야기다. 그만큼 먹는 게 중요하다. 뭘 먹을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요리하는 멋진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초년에 옆지기 건강 때문에 맘고생을 좀 했다. 그 보상심리인지 모르지만 중년 이후는 편하게 살 거란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내 얼굴의 하관이 안정적이라 인상학에서 그리 말하기도 한다. 함께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행복한 하루하루. 이만하면 내 예상이 맞은 것이리라.  


실력이 늘자 손님도 대접하게 되었다. 연애시절 신세를 많이 진 둘째 언니와 조카 내외를 초대했다. 조카가 아기를 가져서 축하할 겸 점심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마요네즈 새우튀김, 어향가지, 전가복, 동파육, 쏸라탕. 고급 중식점에서 나오는 코스요리 같았다. 마요네즈는 계란으로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그 정성에 감동했다.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점심을 먹고 보이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둘째 형부가 조카 결혼 전에 돌아가셔서 친정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졌는데 옆지기가 그 역할을 그날 훌륭하게 해 주었다. 고마웠다. 옆지기도 마음을 빚을 갚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여러 가지 디저트


요리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섹시하다. 무언가 집중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들에게 맛있는  끼를 선사해 주기에  아름답다. 잠자고 있던 옆지기의 요리 본능이 되살아나서  요즘 호강한다. 중식을 넘어 양식과 후식까지 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다. 옆지기의 요리 본능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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