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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루 Nov 24. 2022

백년손님

아들의 여자 친구


초등학생도 커플반지를 한다는 요즘 아이들. 감정에 솔직해진 사회분위기 탓일까? 이성교제가 빨라졌다.

아들은 초중학교 시절엔 별다른 연애사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아이를 사귀었다. 그 아이 엄마와는 2학년 때 안면이 있었다. 성가대 지휘를 할 정도로 활발하게 생활하는 분이었다. 갑자기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병원에 갔단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한다고 했다. 성당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연말 행사까지 다 마치고 병원 입원했다 들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3학년 학부모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반가웠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단다. 수술 때문에 머리도 깎았는데 많이 자랐다고... 그 엄마의 딸이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가 뇌수술을 받는다고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들, 그 애 엄마가 뇌수술을 받으셨대.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줘라.”


아마도 아들내미의 따뜻한 마음에 그 애가 먼저 아들을 좋아하게 된 듯하다. 고3이라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공부해나가길 바랐다. 고3 담임이 학부모 모임 때 지나치게 아들과 그 애를 엮는 발언에 마음이 불편했다. 다행히 각자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학 1학년 때까지 사귀는 것 같았다. 여자 애가 먼저 헤어지자 했는지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한동안 아들은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을 안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연애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거라 귀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연애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아들은 대학교 2학년 가을에 북경대학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갔다. 학점이 인정되는 한 학기 동안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거기서 고려대 형과 같은 기숙사에 머물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만난 고대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다. 고대와 연대는 함께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데 한 방을 쓰는 고대형 덕분에 지금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된 것 같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단다. 요즘 아이들은 오늘부터 1일 해야 사귀는 거란다.


아들 여자 친구는 대학과 후배이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아들이 술을 먹고 힘들어할 때 죽을 사서 안양까지 와주곤 했다. 그 마음이 예뻤다. 같은 학교를 다녀서 공감대도 넓었다. 여자 친구에게 아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었다.


“같은 방 쓰는 과 선배가 꽤 까다로운 사람이었어요. 좀처럼 남을 칭찬하지 않는 선배인데 룸메이트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아들이 회계사 시험 준비를 하고 여자 친구도 취업을 준비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안 좋은 시기에 취업 준비생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기특하게도 인턴생활을 잘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했다. 아들도 회계사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어려울 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길 바랐는데 그 바람대로 잘 되 었다.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좋고 손 편지도 솔직하게 잘 쓴다. 인연이 잘 이루어진다면 우리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싶다. 





          

스승의 날이자 아들 생일날. 아들 여자 친구 생일도 며칠 전이라 함께 축하해주려고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매번 옆지기가 중국요리를 해서 대접했다. 이번에는 양식이다. 스테이크를 굽고 양파수프를 만들고 샐러드와 이탈리아식 만두 라비올리를 만들어주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타임과 바질이 필요하다고 옆지기는 아침에 마트까지 다녀왔다. 양파수프는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양파가 거의 캐러멜화 될 정도까지 볶은 다음 마늘과 버터를 넣었다. 치킨 톡스를 녹인 물을 붓고 끓여주니 달달한 향이 나는 맛난 수프가 완성되었다. 바게트 빵을 얻고 치즈 가루를 듬뿍 넣은 후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웠다. 스테이크는 전날 코스트코에서 사 온 고기를 미리 시즌닝 해 두었다. 두툼한 고기를 올리브 오일에 튀기듯이 구운 후 타임과 마늘 버터를 넣어 한 번 더 구워준다. 바질을 다진 후 버터와 마늘을 넣은 토핑을 곁들이니 그럴듯해 보인다. 여기에 양송이버섯, 아스파라거스와 마늘도 볶아서 놓았다. 중간 정도로 구우려 했는데 완전히 익혀버렸다. 고기 맛은 좋았다. 두툼한 스테이크 두 덩이를 와인을 곁들여서 맛나게 먹었다. 후식으로는 크림브렐레와 수제 아이스크림을 내놓았다. 옆지기가 며칠 전 직접 만들어 두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후식까지 먹은 후 옆지기는 융드립 커피를 내려주었다. 깔끔한 커피 맛이 일품이다. 옆지기 주연 나 조연. 아들 생일파티가 무사히 끝났다. 양식은 몇 번 해 먹지 않아서 잘할 수 있을까 염려되었는데 기우였다.


혼자 자취하며 직장 생활하는 여자 친구가 안쓰러워서 내가 담근 오이피클과 양파장아찌 그리고 코스트코에서 사 온 버섯 카레와 새우 완자를 싸주었다. 여자 친구는 회사에서 나오는 질 좋은 마스크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아들과 여자 친구는 강아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자 친구는 유독 강아지를 좋아한다. 강아지들이 냄새를 잊어버렸을까 싶어 예전에 쓰던 향수를 뿌리고 왔다 한다. 루이 메이 루나도 친근하게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부린다. 헤어질 때 아쉬워하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사위를 백년손님이라 부른다. 어려워서 손님이라 부르는 걸까. 이제는 며느리도 백년손님이라 불러야 할 듯싶다. 아들을 사랑하는 귀한 백년손님, 며. 느. 리. 아들도 오랜만에 보니 손님 같다. 두 사람이 앞으로 예쁘게 연애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고 청실홍실까지 맺었으면 좋겠다. 아들이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평생을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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