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희와 진성의 연애_ 부모님
순희와 진성은 중매결혼을 했다. 가족 어르신들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그때 진성은 대학생이어서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의 말을 거스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몹시 궁금했다. 순희의 아버지는 진주의 유명한 한의사였다. 6.25 전란 때 다친 사람이면 누구나 치료해 주셨다 한다. 인품이 훌륭해서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진성은 친구의 꾀병을 빌미로 진찰을 받으러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담 너머로 언뜻 순희가 보였다. 수줍게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느낌이 괜찮았다. 진성은 순희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떼 보았다. 공부도 잘하고 반듯한 여학생이었다.
“아부지 예, 꼭 이 처자와 결혼해야 합니꺼? 아직 지는 대학도 졸업 안 했는데...”
“좋은 인연은 수시로 오는 게 아니다. 좋은 가문의 규수니까 결혼 하그라!”
진성은 순희와 첫날밤을 보냈다. 옷깃을 살짝 스쳤을 뿐인데 전기가 찌르르했다. 순희는 연분이 있구나 생각했다. 순희는 부지런한 여자였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정갈하게 살림을 했다. 수시로 손님이 드나드는 대청마루가 언제나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였다. 한문학자이신 시아버지는 아주 흡족해하셨다.
순희는 세 자매 가운데 둘째였다. 언니는 초등학교만 나와서 결혼을 했고 동생은 아직 어렸다. 나이 차가 많이 났다. 순희는 진주여고를 다녔다. 기차 시간까지 계산하며 엄격하게 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늘 동동거리며 학교에 다녀야 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버젓이 첩을 보았다. 그리고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 첩의 유세는 대단했다. 눈뜨고 못 볼 정도였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엄마는 후에 식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지 않으셨다. 순희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설움을 적나라하게 지켜보았다.
첫딸이 태어났다. 옥같이 예쁜 딸이었다. 살림을 열심히 하느라 어린 딸에게 커다란 돼지뼈를 주고 청소를 했다. 다음날 아이 몸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났다.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통통하게 보기 좋았던 딸아이는 뼈만 남았다. 순희는 상심이 컸다. 뱃속에 둘째가 있었다. 이러다가 첫딸을 잃게 될까 덜컥 겁이 나서 친정에 갔다. 친정엄마는 흰 죽을 달게 쑤어 손녀에게 먹였다. 딸은 점점 살이 차 올랐다. 겨우 살아났다. 그렇게 첫딸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순희는 딸 넷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 애지중지 아들을 귀하게 키웠다.
잘생긴 남편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세무 공무원이 되었다. 살림은 풍족했다. 시아버지는 당신 아들이 세무서에 근무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 그래서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랐다. 청렴한 진성은 세무서 생활이 녹록지 않음을 깨닫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순희는 사대문 안에 살아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사직 공원 옆 자그마한 한옥으로 이사를 했다. 대궐 같은 부산 집에 비해 규모가 작은 한옥이었다.
순희는 다섯 남매를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남편의 직장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세무서를 그만둔 후 여러 회사를 전전해야 했다. 부업도 열심히 하고 내 집 장만에도 신경을 썼다. 옥인동, 방배동, 신대방동, 수유동을 거쳐 분당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분당은 시범단지만 삐죽 서있던 허허벌판이었다.
“나중에 이곳이 강남처럼 될끼다. 두고 봐라”
순희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 후 분당은 신도시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발전 가능성도 엄청난 도시가 되었다. 순희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웠다. 엄격하게 자란 자신에 대한 보상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잘 자라주었다. 공부도 다 잘했다. 성격도 원만해서 말썽을 일으키는 법이 없었다. 이만하면 자식농사 잘 지었다 자부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