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성인이 된 나는 나의 모든 힘듦의 시작이 내가 자라온 환경, 특히 출생순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했었다.
각 시대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보편적인 이야기인데 개개인에게는 한 맺힌 서사인 경우가 많다. 80년대에는 직전 세대에서 가난, 교육의 기회 박탈을 빼도 여전히 남아있던 남아선호, 남녀차별이 아니었을까?
남자 형제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딸들이 엄마가 되어 또다시 아들을 편애했고, 운 좋게 그런 구조가 아니었어도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의 잔재로 정서보다는 밥벌이가 중했던 시절이다.
82년생 김지영처럼 나도 둘째 딸로 태어났다. 남동생은 4대 독자고, 아버지는 유복자로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엄마는 아들을 못 낳는다고 구박을 받던 흔한 며느리였다. 조금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다소 한량인 아빠를 대신해 열심히 일하던 경제적 가장이라는 점?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또한 은근히 식상한 서사이더라만...
난 태어나자마자 외갓집에 보내져서 1년을 지내다 돌아왔다. 당시 엄마는 출산휴가가 한 달이었고, 할머니는 언니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나까지 볼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요즘 이론에 따르면 애착형성에 매우 중요한 시기에 주양육자가 완전히 다른 양육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바뀌었고, 7년 만에 어렵게 가진 귀한 언니와 어린 폐하로 바로 등극한 남동생 사이에서 생긴 줄도 몰랐다는(어쩌면 그래서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은) 연년생 둘째인 내가 살아남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생존전략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손이 안 가는 아이로, 키우기 쉬운 아이로 조용히 있고 혼날 일을 만들지 않기.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말은 요구를 들어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이들조차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하지 않는가. 주양육자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이내 포기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 나에게 주양육자나 애착 대상이 있었는지부터 의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확실히 아이의 육아 난이도 여부와 상관없이 부모의 성향과 더 잘 맞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조상의 지혜라는 점을 누누이 지켜보며 깨달아도 감히 울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아마 떡이 나에게도 올 거라는 확신을 못 가진 것이 아닐까.
나의 어렴풋한 영유아기를 돌아보며 아이들 생일과 모든 나들이의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기억의 일부를 사진으로 박제해 미래에 아이들이 볼맨 소리를 하면 들이밀 생각이다. 사진의 질과 양이 예전과는 비교도 못하게 방대해졌다는 사실은 인류의 과거 회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쨌건 기억이라는 것은 의외로 왜곡이 심하니까. 그렇다면 좋았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도 내가 노력과 훈련을 통해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사진과 같은 증거도 중요하지만, 역시나 과거는 정서로 기억이 되는 것 같다. 사랑받았다는 느낌도, 편안한 기억도 없었던 유년기. 그것이 어쩌면 나의 일상적이고 좋았던 기억들마저 다 삼켜버린 걸 수도 있겠지.
아이에게 늘 좋은 정서만 느끼게 해 줄 수는 없겠지만 힘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던 시간들을 더 많이 끌어내어 덮어줘야겠다. 그것이 요즘 말하는 회복 탄력성이겠지.
그래도 유년기까지는 좀 속상한 일도, 억울한 일도 많았지만 해맑고 상냥한(엄마 피셜) 아이였다고 한다. 나의 환경이 그냥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으니 무언가 부당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잘해보려고, 말 잘 들으려고, 상냥하고 친절하려고, 그리고 내가 느끼는 불행감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날들이었지 싶다.
요즘이야 착하다는 말을 마냥 칭찬으로만 듣기 힘든 시대이나 이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들여다보고 처리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마냥 우리 부모님이 너무했다고 탓을 하기에는 당시 육아서에는 '부모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문제아가 될 수 있으니 아이가 비뚤어지지 않도록 호되게 야단을 치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다'와 같은 말이 적혀 있었을 것만 같았던 시대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의 불안은 밖의 세상에 돌려져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뒤집어지지는 않을까, 전봇대를 보면 전봇대가 연쇄적으로 쓰러져서 덮치지 않을까, 정말 하늘이 무너질까 혼자 끙끙 걱정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나와 기질이 비슷한 첫째가 폭탄이 터질까, 화산이 폭발할까, 다리가 무너질까 걱정을 그렇게 한다. 여기에서부터 나의 불안과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원인이 가족이 아니라 나의 기질이 아닐까 의문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