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터널 속에서

중학생 시절

by 밍밍

나의 십 대를 돌이켜보자니, 어디까지 더 우울해져야 하는가!! 현타가 와서 잠시 쉬어가고 싶었지만 요즘은 '직면'이란 단어가 좋다. 회피가 편한 나였는데 이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가 된 것이라 믿고 싶다.

다만, 해학과 풍자를 사랑하는, 회피만큼이나 유머를 방어기제로 자주 쓰는 사람인데... 도통 스무 살 이전의 삶엔 유머를 끼워 넣을 구멍이 없어 나에게도 읽는 분에게도 죄송 ㅎㅎ

중학생 시절 나의 키워드는 엄마의 말 한마디로 요약해보고자 한다.

"너 딸이래서 지우랬는데 낳아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당시 나는 이 말에 화도 안 났다. 그냥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저런 느낌의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왔으니까. 그대로 저 말은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20대에 처음 상담을 받게 되기까지 꺼내볼 용기조차 안 나게 새겨진......

우리 엄마는 나의 십 대 시절 내내 어느 사립 여중 학생주임이셨다. 응팔의 덕선이 만큼(그래도 얜 부모님도 너무 좋았고......) 우리 집엔 아빠가 없고 학주만 있다는 도롱뇽의 말이 공감 갔던 ㅎㅎ

게다가 나는 서울의 부촌 옆 (당시엔 서민) 동네로 부유한 집 아이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고, 엄마는 경기도 중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동네에서 평생 일하셨다. 그래서 옷차림이나 행색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는데도 엄마는 거울 한 번만 봐도 겉멋이 들었네, 급식비도 못 내는 애들이 널렸는데 배 부른 줄 모르고 옷 타령이네... 이런 반응이셨다. 그저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달랐을 뿐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나의 고민들을 억압당하며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안정적인 직업이었으나 아빠가 IMF 때 직장을 그만두고 취미활동만 하셨고, 돈 관리는 6.25 전쟁 세대인 할머니가 하셨다. 엄마도 한 달에 용돈을 7만 원쯤 타서 생활하셨다고 하니 우리에게 옷 한 벌, 학원 하나 보내줄 여유가 없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를 둘러싼 환경은 진짜 점심시간에 수돗물로 배 채우는 애들이 있다는 다른 세상이었는데... 내가 겪고 있는 따돌림과 고민이 이해가 가지 않으셨던 것 같다.

정말 도시락 반찬을 도저히 친구들 앞에서 열수가 없을 정도의 검소한(?) 분위기에서도, 과일 또한 사과 하나 깎으면 6 식구가 나눠먹는데 내가 하나먹고 더 먹으려고 하면 욕심 많다고 욕을 먹고 남동생은 많이 먹고 쑥쑥 자라라고 더 먹으라는 말을 듣고.... 참고로, 나는 고등학생까지 40킬로가 안 되어....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하면 안 친한 애들도 "넌 죽만 먹고 사니?"라고 한 마디씩 했었고 남동생은 백 킬로가 넘어서 공익을 갔었다........

뭐 일화는 이 정도만 소개해도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가족 간에 오가던 험한 일들은 가장 큰 주역인 할머니가 점점 힘이 빠지시다 돌아가시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간이 약이라고 차차 잊힌 거 같은데 십 대 시절 사회적 상황에서의 이런 상처들은 묻어두어서 더 깊숙하게 남은 듯도 싶다.

그래도 완전 왕따는 아니고 어찌어찌 꾸역꾸역 친구 몇과 붙어 무사히 지내긴 했는데... 이즘 죽고 싶은 날들도 많았다. 그중 대다수는 내가 죽어야 가족이 나에게 미안해할까? 였고 나머지는 집도 학교도 다 지옥이어서 벗어날 희망이 안 보여서?

초등학생 땐 친구네 집이라도 놀러 갔다 오면 저 가족이 내 가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누워서 상상하는 정도였다면 중고등학생 땐 약간 이번 생은 망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가족에게 복수하고 싶다. 내가 죽으면 후회하고 미안해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으로 간 것 같은데 웃기게도 내가 죽어도 미안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 관뒀다. 막상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섭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ㅎㅎ 살아남기를 잘했다 싶으니 당시엔 너무 싫어하던 말, '시간이 약'인 게 맞을 수도.

중2 때 특별한 잘못도 없이(근데 쓰다 보니 저 시절엔 내 몰골이 잘못이긴 하다... 놀아준 친구들아 고맙다 ㅠㅠ) 절친에게 절교당하고 짝을 지어야 하는 활동이나 점심시간, 수련회 같은 행사들이 정말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이었는데 죽으란 법은 없는 건지 그다음 해 위축되어 있던 나와도 계속 친하게 지내준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어 오락실에 다니며 펌프를 열심히 하고, 만화책을 즐기며 학창 시절의 즐거움을 맛보기는 했다.

그 덕에 엄마에게..... 일반적인 순정만화책 보다 걸려서 같이 죽자고 찻길로 손목 잡혀 끌려가긴 했지만........ 그리고 친구와 나는 소위 말하는 살기라는 걸 이때 오락실에서 펌프를 하다 느껴봤다. 당시 방황을 하던 남동생을 찾으러 피시방을 돌아다니시던 엄마가 무심코 옆 오락실을 들여다봤는데 내가 해맑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숙연하게 바로 끌려가서 먼지 나게 맞았던 기억 ㅎㅎ 우리에겐 너무나도 건전한 펌프의 공간이었는데 학주에겐 그야말로 악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때의 이러한 일탈이 생각도 못한 그나마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집 안에 내 편이라고는 없었는데 친구도 없었으면 나는 정말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한창 뛰어내리고 싶고, 뛰어들고 싶은 시간들을 잘 헤쳐나갔다고 생각했을 즈음 그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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