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퍼주다가 다 털린 이야기

숫자에 사로잡힌 나의 일상에서 다시 문장으로

by 밍밍

나는 2억을 사기당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어느덧 이렇게 지났다.


오늘 나는 3시까지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어서 3시에 햄버거를 먹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주니어 사이즈 밖에 사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상의 소소한 결정들에서 나는 2억에 절여지고 있다.

그 사람은 거의 지웠다. 원래부터 내 삶에 없었건 것처럼. 이런 건 연애 과정에서 한 번씩 해 본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2억이라는 숫자는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주변의 크고 작은 일을 선별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 듯. 2억은 어느 정도의 금액일까?


감정에 빠져들 여유가 없었다.

매일 일을 하고 애들 밥을 차리고... 남는 시간에 억지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정리된 입금 날짜, 입금을 요구받은 카톡 캡처들,

하지만 이것뿐만이 아니라 카톡창을 열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화 전체가...
한 줄 한 줄이 ‘믿었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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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믿었다.
같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고, 아이들도 친했고,
마음이 통한다고 느꼈고,
심지어 그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아빠, 엄마가 갑자기 사고가 나면 어떡하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안전한, 믿을 만한 사람이라며 그녀를 이야기했던 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그녀를 전적으로 믿었다.


사기, 그런 거 왜 당해? 만큼

가스라이팅도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스라이팅 당하는 이유는 그 과정이 정말 밖에서 볼 때는 말이 안 될지언정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세밀하고 지속적이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를 ‘시간과 마음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자 행운인 줄 알았다.

'귀인', 돈거래가 있기 전부터 그녀는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듣는 데 성공했다. 돈 한 푼 쓰지 않고도.

처음으로 혼자 브랜딩을 해보겠네, 내 수업을 해보겠네 고군분투하던 나를 애정을 갖고 응원해 주고, 피드백을 주는 그 마음이, 정말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그랬는데, 그게 결국
인생에서 가장 크게 털린 ‘블랙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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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남을 100% 믿지는 않았다.

분명히 어느 정도는 의심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계속 상환이 밀리자 통화를 녹음했다.

일부러 금액을 한 번씩 체크하며 카톡에 명확하게 남기기도 했다.


어쨌거나 잘못되면 본인과 아이의 신원도 명확히 알고 있고, 증거도 확실하니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시나리오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기꾼이 나를 노리고, 작정하고 턴다는 것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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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내가 써나갈 글은
사기를 고발하는 글이 아니라,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자만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 내는지를

그리하여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뒤늦게 정신을 차려도 다시 내 삶을 잘 굴릴 수 있음을 증명해 내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믿었던 건 사람이고,

내가 지키려는 건 내 삶이다.

이 글은, 그 둘 사이에서 내가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숫자가 아닌 문장으로
다시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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