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인정해야만 했던 악몽 같던 순간들
그 사실은 내가 스스로 맞춘 퍼즐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그날 저녁, 단체에서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밴드 글 봤어요? 혹시… 돈 보낸 적 있어요?”
그 순간도 또렷하다.
아이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발걸음, 깜빡이 소리와 신호음이 뒤섞인 거리, 그리고 휴대폰 속 글자들.
밴드에는 그녀가 사기꾼으로 지목되었고, ‘여행 가자’는 제안으로 돈을 보낸 사람들의 제보를 받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녀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고 바로 계좌 가압류부터 걸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돈을 찾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처음 그 연락을 받고도 나는 100%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며칠간의 감정은 혼란과 혼돈 그 자체였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억울하다고 했고, 예전과 똑같은 핑계를 꺼내며 “일정이 지연되고 있지만 내일까지”를 되풀이했다.
나는 ‘이 모든 게 오해라면…’이라는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채, 그렇다고 그녀를 온전히 믿지도 못한 채 그 사이를 서성였다.
그래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든, 이제는 받아간 돈을 돌려주어야 이 오해가 풀릴 수 있다.”
하지만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민사든 형사든 다 받아들이겠다며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책임지는 거예요?”
그렇게 기한을 두 번 더 미뤄줬지만, 돈은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최소한의 서류나 증거를 보여달라는 나에게, 그녀는 “지금은 보여줄 수 없다”며 나중을 말했다.
그녀의 ‘나중’과 ‘내일’은, 분명 내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마지막 기회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경찰서에 가겠다고 한 다음 날, 카톡이 왔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기 친 게 맞아요. 하지만 저는 돈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제 가족과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선처 부탁드려요.”
허무하게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경제를 무너뜨린 채 진행형이다.
나는 혼자 고군분투 중인데, 그녀는 변호인을 대동하고 여전히 뭔가를 ‘작업’하고 있다.
글쎄, 이게 사기가 아닐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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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수요일, ‘전국민마음투자사업’의 지원을 받아 심리상담이 시작됐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내 힘듦과 억울함, 분노와 배신감, 슬픔과 자책을 억압하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상담사는 내 상태가 심각하다며 정신과 검진과 약물 복용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지금 감정에 접속이 잘 안 되는 게 마음 쓰여요. 약물은 감정을 더 누르잖아요. 저는 이 상황과 감정을 회피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출근을 해야 하는 만큼(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돈을 벌어야 한다!) 웃으며 수업을 하고, 아이들의 일상을 지키는 입장 자체가 이미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상담을 통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일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모른다.
하지만 10년 뒤, 2025년 여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그 일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됐지…”가 아니라,
“그때 그 일이 있어 내가 이렇게 해낼 수 있었지.”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이 글이 나를 위한 기록이자,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경각심과 공감으로 닿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