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

by 밍밍

미국에서 잠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 가장 적응이 안 됐던 건 “How are you?”였다.

대답을 듣지도 않고 스쳐 지나가는 인사.

대답마저 정해져 있는 말.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I'm fine, and you?” 가 아니더라도 “Good”, “I'm ok.” 정도는 해야 했다.

안 괜찮다고 말하면 모두가 당황할 게 뻔한데, 왜 묻는 걸까.

그 시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는 '묻지 말든가, 대답을 듣든가' 중얼거리곤 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적당한 관계의 사람들이 안부를 물으면 “그냥 뭐, 똑같지.”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 동료에게도, 아이 친구 엄마에게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에게도.
대부분의 일상은 안부를 묻는 형식만 오가고, 속마음을 나눌 여력은 없었다.

괜찮지 않아도, 그냥 괜찮다고 웃고 지나가는 것, 그것이 사회생활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지나가는 안부에도 “괜찮지 않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 찾아왔다.


평범한 연애들을 지나, 적당한 시기에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드라마처럼 불타오르는 사랑도 아니었다.

남편의 성격과 배경이 괜찮을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는데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닐지... 어른들의 걱정은 철저히 현실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서둘러 내달렸다.

돌이켜보면 세상물정 모르는 젊음의 무모함이었을지도.


결혼 생활은 소소했지만 치열했다.

힘듦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

더 이상 힘들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구간도 있었고, 이 정도면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위로하던 구간도 있었다.

혹시 어디서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까 막막하던 시절도 물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모든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엄마로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삶의 중심은 아이들에게로 옮겨가 있었다.
새벽같이 울음소리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젖을 물리던 시절, 출근길에 아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써 웃으며 신발을 신기던 순간들이 겹겹이 쌓였다.
나의 안위보다 아이들의 행복이 더 중요해졌다.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오만하게 결론짓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좋아했고, 크게 아픈 일도 드물었다.

영유아 시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어린이집, 만세!"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웃으며 들어가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의 하루는 숨 가쁘게 시작되었다.


퇴근길엔 아이들 뱃속에 넣을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허겁지겁 밥을 차려주고, 잠시 몸을 눕히면 하루가 까무룩 지나가곤 했다.

맛집을 찾아다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냉장고 잔반과의 끝없는 전쟁터 장군이 되어 있었다.

아이에게 남기지 말라고 잔소리는 했지만 정작 내가 다 먹고 치우는 게 더 많았다.

환경 교육의 일환으로 위장한 내 위장이 쓰레기통 역할을 떠맡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갔다.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을 몰아서 하고,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를 돌았다.

오늘치 운동은 이걸로 채운 것 같다고 자위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왔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단순했다.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내일은 꼭 거실 청소를 해야지!'

인생도, 청소도 끝이 없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늘 제자리인...


곱게 자라지도 않았고, 나름 방황하는 20대를 거쳐, 그다지 다정하지는 않은 경상도 남자와 결혼까지 반대를 무릅쓰고 했지만

썩 괜찮다고 할 수 없는,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중년에 접어든 줄 알았다.


나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 믿었다.

아니,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래서 언제나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말이란 게 무섭다. 자꾸 내뱉다 보니 내가 정말 괜찮은 줄 착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믿었던 사람에게 큰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그 순간, 목구멍까지 차올라와 늘 자동으로 튀어나오던 “괜찮다”는 말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I'm not fine."


나는 정말 괜찮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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