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어를 잘 까먹는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건 20살 초반에 다 까먹었다.
20대 후반에 새로운 마음으로 영어회화학원을 등록했다.
잉글리시가 아닌 콩글리쉬를 구사했지만 같은 반 사람 모두 다 비슷한 수준이어서 창피하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30대 초반에 '결혼, 퇴사, 육아' 패키지를 떠나며 잉글리시와도 이별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가 아닌 내 아이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화상영어라서 집 책상에 앉아 수업을 진행했는데 덕분에 내가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10년이라는 사이 내 머릿속 영어가 몽땅 사라졌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재미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덜컹 나를 위한 화상영어를 시작했다.
프리토킹 과정을 신청하고 레벨테스트로 했다.
레벨테스트라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고개만 끄덕이다 끝이 났다.
원어민 선생님은 나의 실력을 눈치채고 정말 또오박또오박 처언처언히~ 말해주셨다.
1년 넘게 수업을 진행한 어느 날이다.
동대문 DDP 앞을 갈 일이 있었는데 '여긴 거의 해외인가?' 싶을 정도로 외국인이 많았다.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가 살짝 부딪혔고 상대는 바로 "암 쏘 쒀뤼."라고 말했다.
나도 뭔 말을 해야 하는데........... 하며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 사이 상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난 입도 뻥긋 못했다.
웃기고 슬프고 당황스러웠다.
이 일을 계기로 오프라인 수업의 필요성을 느꼈고 내 동선과 가까운 회화 수업을 찾아냈다.
그냥 초급반을 등록할 수도 있지만 혹시나 상급반에 갈 수도 있다는 기대에 당당히! 레벨테스트를 신청했다.
담당 원어민 선생님과 몇 마디를 나누었고 선생님은 나에게 초급반을 권했다.
하하하
난 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결과를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지롱~
초반에는 열심히 해서 상급반 가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어제 배운 게 오늘 기억 안 나는 나에게는 쫌 무리겠구나 싶다.
그냥 여기가 내 자리임을 인정하는 중이다.
공부도 다이어트와 비슷하구나.
금방 결과가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정체기가 오고, 우울하다가, 혼자 으쌰으쌰 용기를 내고, 좌절하기를 무한반복하니까 말이다.
NONO 급하게 생각하지 마~ step by step 해.
선생님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T의 마음으로는 백번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절반이 F다.
알아요. 알겠는데~ 도대체 언제 까지냐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