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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Dec 16. 2023

산에서 아찔한 순간, 나타난 은인

등산해서 머할라꼬

겨울 속 봄날 같았던 지난 일요일이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라면 먹고 싶어"

아들은 내가 예상한 대답을  빗겨 나가지 않았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육개장 사발면과 간단한 간식을 가방에 넣었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가 수락산에 간 사진과 함께 산 정상을 찍고 내려왔으며 어려움 없이 다녀왔다는 후기를 읽고 우리도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후기에 적힌 경로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장암역으로 갔다.


나는 수락산이 처음이다. 사실 이렇게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처음이다.

아이어릴 때부터 용마산(348.5m) 가끔씩 오르다 보니 아이도 나도 산에 대한 부담감이나 걱정은 없는 편이다.  

지난봄에 "이번에는 조금 더 높은 산을 가볼까?" 하는 대화를 나누다가 준비도 없이 불암산(509.6m)에 간 적이 있었다. 정상에 거의 도착할 무렵, 돌 위를 기어오곳을 제외하면 즐거운 산행이었다. 고생한 만큼 뭔가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고 아이에게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니

"힘든데 뭔가 개운해"라는 의젓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도장 깨기처럼 다음 라운드는 수락산(640.5m)이라고 생각했다.

   

장암역에서 내려 등산복 입으신 분들을 따라가니 길을 헤맬 틈도 없이 등산로 입구로 이동되었다.

따뜻한 날씨와 산에 오르면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더해져  장갑점퍼도 벗어 가방 끈에 걸고 산에 계속 올랐다.

계곡 징검다리건너고 물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도 들으니 무척이나 힐링되었다.

4/5 정도 올랐을 때는 급경사로 인해 손발 구분 없이 네 발로 기어오르며 지금 내 모습은 용맹한 한 마리의 표범 같다는 상상을 했다.


정상 표지석 앞에는 많은 분들이 줄 서있었고 우리도 맨 뒤 부터 줄을 서 있다가 증사진을 찍고 오른 길의 반대 계단으로 내려왔다.


수락산역으로 가는 두 개의 방향 표시가 있었는데 3시 방향으로 가라는 곳은 남은 거리가 4.3km였고 8시 방향으로 가라는 표지판은 남은 거리가 3.0km였다. 난 망설이지 않고 거리가 짧은 8시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옆에서 우리와 나란히 걷고 있던 분이 우리를 자꾸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의식한 나도 그분을 힐끗 보았다.

그분은 우리에게 물었다.

"혹시 장갑 없어요?"

"아. 장갑요? 가지고 왔는데 덥고 미끄러워서 뺏어요. 털장갑이거든요"

"다음부터는 이런 장갑을 끼고 와야 해요" 하며 장갑 낀 손을 내밀며 손바닥에 빨간 코팅이 된 목장갑을 보여주셨다.

"네 알겠습니다. 이런 게 필요한지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그분은 우리 둘을 쭉 훑어보시더니 일반 운동화를 신은 발에서 시선이 잠시 멈추었다.

"이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많이 험해요"하셨다

"아 진짜요? 저희가 반대쪽으로 올라와서 몰랐어요. 그럼 저희 장암역 쪽으로 다시 가야겠네요"

"아니 여기서 거기 가려면 너무 멀어요"

"표지판에 수락산역 쪽으로 내려가는 다른 길이 있던데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을까요?"

"아.. 그쪽도 너무 멀어서 안될 거 같아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 이쪽 같이 내려가요"하며 장갑을 벗으셨다

오른쪽 장갑은 내 손에 끼워주시고 다른 왼쪽 장갑은 아이에게 끼워주셨다.


"내가 앞장설 테니 따라오세요"

라는 말과 함께 앞장서 걸으셨고 우리는 그분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조금 걸어가니 가파른 돌길이 나왔고 위험 구간의 시작이었다. 그 곳은 줄 하나에 나의 안전을 맡겨야 했다. 어떤 곳은 줄 너머가 바로  낭떠러지 같은 곳이었다. 이쪽은 이승, 저쪽은 저승인 느낌이었다. 하하.


"엄마는 줄을 잡고 내려와요. 줄만 꽉 잡아도 떨어지지 않으니까 꽉 잡아요"

아이에게 "여기서는 옆으로 걸어. 경사가 더 심해지면  뒤로 걸으며 발 사이로 걸어가는 방향을 보는 거야."

"바닥에 있는 은색에 발을 고정시키고, 다른 발을 옮겨서 또 은색에 고정시키면서 미끄러지지 않게 해야 해." 

너무 높아서 아이 발이 닿지 않는 곳이 나오니 "아저씨 무릎을 밟고 내려와"하며 다리를 [ㄱ] 자로 구부려주셨다.


반대편 산이 훤히 보이는 평지 구간을 되었다. 겁먹고 발아래만 보며 정신없이 내려오느라 옆을 볼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야 이쁜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둥근 바위 보이지? 거기서 길게 뻗은 부분이 코끼리 같아서 저 바위 이름이 코끼리 바위야"

아이에게 설명도 해주시고 여기서 사진 찍으면 이쁘다며 아이와 내 사진도 중간중간 찍어주셨다.

너~~ 무 이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산 좋아하시는 사진작가님으로 생각했다.

(내 핸드폰 화질과 성능이 이렇게 좋은지 오늘 알았다! 이제는 사진이 못 나와도 양심상 카메라 탓은 못할 것 같다.)


가파르고 위험한 비탈길은 끝날 듯 끝나지 않았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분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었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수락산역이에요. 나는 이쪽으로 가야 하니까. 조심해서 내려가요" 

갈림길 앞에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가방에서 과자도 한 봉지 꺼내어 아이에게 주셨다.

"너무 감사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연락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119 대장님이라고 저장해요" 웃으시며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집에 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카톡 선물을 보내드릴 때 대장님의 프로필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검색창에 대장님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깜짝 놀랐다!


소방서 서장님이셨다.


지금도 현직에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용산소방서, 광진구소방서, 양천구소방서에서 서장님의 하신 분이었다.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은인이신 분이구나! 

대장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되뇌며 다음 산행 때는 단디 준비하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려면 내가 많이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다.


권료원 대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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