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에 들어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비누로 손만 씻고 급하게 싱크대 앞에 섰다. 그렇게 평소보다 늦게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이 급했다. 조금 있으면 남편이 퇴근할 예정이고 아이들은 간식도 안 먹은 터라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이었다. 사실 나도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판이었다. -> 이런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하하
뭐를 만들려고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눈에 보이는 채소를 조리대 위에 올렸다.
양파를 집어 들고 껍질을 벗겼다. 이 와중에 양파를 이쁘게 썰고 싶었는지 칼을 도마에 직선으로 내리지 않고 칼을 사선으로 밀어 넣었다.
한번
두번
세.... 악!
양파를 잡고 있던 손에서 붉은색이 스며 나왔다.
흐르는 물줄기 한가운데에 피가 나는 손가락을 넣었다. 물에 피가 같이 흘러내려 아픔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물에서 빼낸 손가락에서는 다시 피가 흘렀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칼에 손을 베었을 때]를 검색창에 써 내려갔다.
'칼에 손가락을 베었을 때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란 글을 클릭하여 스크롤을 올렸다.
- 손가락 베인 부분을 입에 넣으면 안 된다.
어머! 를 외치며 입에서 손가락을 당장 빼내었다.
정신 차리고 전화기에 119와 통화 버튼을 눌렀다.
"119입니다. "
"안녕하세요. 상담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요."
"네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내 기억에는 오래전 의료 상담전화 1339번이 있었다. 그러다 10년 전쯤? 갑자기 1339번 상담전화가 119로 통합되었다. 처음에는 119로 상담전화를 거는 게 뭔가 어려웠다. 일분일초가 급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거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아이가 아프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볼 곳이 없으니 생각나는 건 119뿐이었다. 그렇게 119 의료 상담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다쳐서 119에 상담전화를 하게 될 줄이야~참 헛웃음이 났지만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었다.
"칼에 손을 베었는데요 피가 안 멈춰요."
"집에 거즈 있으시죠?"
"아.. 거즈거즈 잠시만요."
어깨와 귀 사이에 전화기를 끼우고 약 보관통을 열었다.
"네네 있어요. 거즈!"
"그걸로 상처부위를 20분 이상 누르세요. 근처에 지금 갈 수 있는 정형외과를 문자로 보내드릴 테니 병원으로 방문하세요. 00동 맞으시죠?"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생명줄처럼 손가락 위에 거즈를 꾸욱 눌렀다. 그러는 동안 내 근처에 있는 병원 이름과 위치, 전화번호가 문자로 날아왔다. 일반 병원들은 진료가 끝났을 저녁 시간이라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 2곳이 안내되었다.
그중 한 곳에 가서 이쁘게 봉합테이프를 붙였다. 손가락에 작은 고정대로 받치고 갈색 붕대로 칭칭 말아 놓아 일주일 넘게 개구리 손가락으로 살고 있다.
절대 물에 닿으면 안 된다는 말에 씻을 때도, 설거지할 때도 비닐장갑을 끼고 손목에 노란 고무줄을 묶었다.
머리 감을 때 양손으로 박박 두피를 문지르는 시원함을 빨리 맛보고 싶고, 키보드 칠 때 여러 개가 눌리는 부작용 빼곤 모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