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의 모호함 [재밌는 생각]
왜? 우리는 묻는다. 원인을 알기 위해, 이유를 알기 위해.
뛰어난 사람들은 이 ‘왜’라는 질문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간의 지성을 끝없이 끌어내는 이 한 단어를 통해, 인류는 수많은 전략을 세우고 발전을 이뤄왔을 것이다.
나 역시 광고홍보학 전공으로서, 기획자로서, 또 폼 나게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수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왜?”라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왜’라는 질문이 이상하게도 모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를 다시 묻게 되었고, 그렇게 왜라는 질문이 왜 모호한지를 고민하던 나는, 나름의 사용법을 조금 터득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요즘 하는 고민이 하나 있다.
체중 관리를 하고 싶은데, 저녁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는 달콤한 휴식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이 고민을 해결해보기 위해, 나는 평범한 질문을 던졌다.
“왜 음식을 못 참지?”
“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지?”
잠시 생각한 끝에 떠오른 이유들을 적어봤다.
배가 고파서,
보상이 필요해서,
허전해서.
첫째, 식단을 관리하다 보니 배가 조금 고팠다.
풍족히 먹어도 입이 심심한 게 또 밤이다.
둘째, “이제 내 시간이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온 나에게 달콤한 보상과 휴식을 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취미가 없고 쉴 때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서 휴식 시간이 은근히 괴롭다.
그 허전한 마음을 순간의 즐거움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이 정도가 내가 떠올린 이유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왜’라는 질문의 모호함이 드러난다고 느꼈다.
‘왜’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너무 넓은 그물이다. 우리는 어떤 일의 이유와 원인을 추적할 때, 서로 다른 수준의 답을 한데 섞어 놓곤 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렇다.
배는 고팠지만, 딱히 식사를 간절히 원한 것은 아니었다.
배고픔은 있지만, 그게 문제의 핵심은 아니었다.
보상은 여러 종류가 있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샤워를 길게 할 수도 있고, 산책을 할 수도 있다.
왜 꼭 맛있는 음식이어야 했을까? 이것 역시 핵심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에 가장 중심에 있는 이유는 허전함, 공허함이었다.
일과 다이어트로 지친 나는, 집이라는 휴식 공간에서마저 할 것이 마땅치 않아 소모되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음식 + 영상”이 대신해온 것이다.
정리하자면,
배고픔은 여러 부차적 이유 중 하나였고,
“보상이 필요하다”는 건 나의 하나의 생각이었고,
허전함은 그 생각이 떠오르게 만드는 배경 감정이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을 수 있었고,
허전한 마음에 그 보상을 ‘음식’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더 물을 수 있다.
“왜 하필 음식으로 보상해야 했을까?”
그건 단순하다. 내 오랜 패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애니메이션 한두 편과 함께 맛있는 배달 음식을 먹는 것을 거의 유일한 즐거움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을 굳이 말하자면, 나의 취미이다.)
십 년도 넘게 이어진 이 패턴은 강력하다. 그냥 애니메이션만 즐기지 못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여야 만족한다.
한 번은 볼 것을 고르지 못해 배달 온 음식이 다 식어버렸고, 결국 아주 불만족스러운 한 끼를 맞이한 적도 있다. 그만큼 이 조합은 내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배가 고픈 것, 허전한 마음에 보상을 하고 싶었던 것, 그 보상이 음식이어야 했던 이유.
이 모두가 “왜 나는 저녁에 음식을 못 참지?”라는 질문의 답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이 중에서 어디까지를 내가 진짜 알고 싶은 “왜”라고 불러야 할까?
‘왜’라는 질문 하나를 던져 놓고,
그 안에 배고픔, 보상 심리, 허전함, 습관, 과거의 패턴까지 전부 쓸어 담아버리면,
답은 풍성해 보이지만 정작 핵심이 흐려진다.
그래서 이제는, 이유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질 때
그냥 “왜?”라고만 묻지 않으려 한다.
‘왜’라는 질문을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고,
내가 진짜 알고 싶은 층위가 어디인지 구분해서 묻는 것.
요즘 세상이 말하는 “질문 잘하는 법”은,
결국 이 지점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모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나만의 ‘왜’ 사용법을,
다음 편에서 이어서 소개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