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참회록

을사년을 보내며 병오년 적토마를 기다리다

by 윤석구


[한강변 참회록]
* 을사년을 보내며, 병오년 적토마를 기다리다


어젯밤 꿈을 꾸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야산을 오르다 정상의 9부 능선에 닿았다. 여기까지는 꾸역꾸역 잘 왔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 정상을 향한 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발길이 멎었다. 결실의 문턱에서 멈춰 선 뒷모습이었다.


면접을 향해 문을 나서며 가족에게 "합격 힘들 것 같다"라고 슬쩍 털어놓았다. 회생법원의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 면접이었다. 지하철을 탄 한 시간, 준비한 자료를 보았으나 마음은 이미 꿈속 그 문턱 앞에 굳건히 멈춰 서 있었다.


면접장의 공기는 차분했다. 대기 중 SNS에서 자주 만나는 절친한 후배 P부장을 만났다. 반가우면서도 후배 기회 탐내는 것 같아 미안했다. 먼저 면접을 본 P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나오는 것을 뒤로하고 내가 앉은자리, 판사와 위원의 질문은 송곳 같았다.


마케팅만 전문적으로 임한 구조조정의 경험도, 법리적 지식도 질문에 대한 답변은 궁색했다. 공익채권과 사익채권에 대해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결과를 직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 쓰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면접장을 나와 법원 뒷산 언덕길을 오르며 자책했다. 준비 없는 정직은 방심이었고, 공부 없는 자신감은 자만이었다. 준비된 후배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나는 한강으로 향했다.



잠수교를 건너 행주대교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 길, 강물 위 은빛 윤슬은 반짝였으나 형체는 흐릿했다. 내 마음의 투영이었다. 아픈 이유는 낙방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졌던 헛된 기대와 오만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답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직은 무기 없는 용사나 다름없었다. 이제 명상록의 또 다른 문장을 마음의 중심에 둔다.


"장애물이 길이 된다. 길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길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지나간 낙방이지만, 다시 준비하는 이 순간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을사년을 이렇게 보낸다. 다 이루지는 못했으나 나를 속이지는 않았다.
병오년의 적토마(赤兎馬)를 맞이하며 마음의 고삐를 고쳐 잡는다.


이제 말은 다시 달릴 것이다.
다만 이전보다 낮은 자세로, 그러나 어제보다 먼 곳을 바라보며....


2025년 12월 29일, 동작대교 마포대교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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