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의 지혜로 연 성균인문아카데미의 새해
[不亦說乎아, 不亦樂乎아, 不亦君子乎아] 2,500년의 지혜로 연 성균인문아카데미의 새해<좌충우돌 인생2막 80호. 2026.1.15>
적토마의 병오년 정월 초여드레 저녁, 신라호텔 영빈관 토파즈홀.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 원탁마다 와인잔이 찬란하게 반짝이고, 은은한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성균인문아카데미 신년회’의 막이 올랐다.
이날의 감동을 되새기며 돌아오는 길, 문득 지난 화요일 아침 7시의 Zoom 강의가 떠올랐다. 고재석 교수님으로부터 8주 동안 논어의 정수를 배우는 시간. 그날 마주했던 논어의 첫 장은 마치 예언처럼, 이날의 신년회 풍경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께서 제시하신 세 가지 기쁨.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 붕우(朋友)가 먼 곳에서 찾아오는 즐거움, 그리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군자의 품격이다. 이날의 자리는 이 세 가지 기쁨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인문학적 축제의 장이었다.
■ 學而時習之 – 배움의 깊이, 존재의 좌표를 찾다
이날 참석한 원우들은 모두 성균관의 정신을 잇는 유생들이었다. 필자에게 성균관의 뜰은 그 누구보다 정겹고 각별하다. 1519년 은행나무를 심으신 평와(平窩) 윤탁 선생과 대사성을 역임하신 반호(盤湖) 윤광안 선생이 직계 선조이신 까닭이다. 5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명륜당 은행나무와 7대 조상의 숨결이 깃든 그곳은, 내게 단순한 교정이 아닌 뿌리의 공간이다.
이러한 혈연의 인연에 더하여, 개인적으로는 성균관대학교와 학연으로도 깊이 맺어져 있다.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에 이어 우리은행 재직 중 6개월간 Pre-CEO 과정에 파견되어 수학했고,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성균인문아카데미 9기로 다시 성균의 문을 두드렸다. 선조의 발자취를 따라 후손이 세 번 배움의 자리에 선 것이다.
고재석 성균인문아카데미 주임교수는 14기를 맞이하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미 458명의 원우가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번 14기에서 42명만 더 모시면 드디어 500명을 돌파하게 됩니다.”
고 교수는 이어 인문학의 본질을 역설했다.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의 존재론적 위치를 끊임없이 되새겨 교육과정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인문학이란 결국 ‘나의 좌표’를 찾는 일이다. 배움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습(時習)’, 즉 때때로 익히고 반복할 때 비로소 내면의 기쁨으로 승화된다. 이를 위해 성균인문아카데미는 정규 과정 이후에도 ‘화요 조강(朝講)’과 ‘GB(Great Books) 세미나’를 통해 묵묵히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500년 전 은행나무가 해마다 새 잎을 틔우듯 말이다.
■ 有朋自遠方來 – 붕우를 만나는 환희, 뜻을 같이하는 즐거움
먼 곳에서 붕우들이 찾아왔다. 강북과 강남, 경기도와 충청도, 호남까지. 물리적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붕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장내는 이미 온기로 가득했다.
이날은 특별한 이·취임식도 함께 거행되었다. 2년간 헌신한 김태환 전 농협경제지주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이영진 전 헌법재판관은 제4대 총원우회장으로 취임했다. 전임 회장의 노고에 보내는 뜨거운 박수와 신임 회장을 향한 기대 섞인 환호가 교차하며 원우애는 더욱 단단해졌다.
특히 경영학 박사이자 두 프로그램을 모두 수강 중인 이창길 박사는 “올해도 많은 원우님이 함께 공부하며 성장하길 바란다”며 참여를 당부했다. 붕우가 모여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유붕자원방래’의 진정한 실천이 아닐까. 이어지는 만찬과 병오년(丙午年) 새해를 축하하는 건배사 속에서, 붉은말의 기상처럼 힘찬 도약을 다짐하는 원우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 人不知而不慍 – 군자의 향기, 화이부동의 정신
축사에 나선 윤증현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구절로 좌중의 귀를 세웠다.
“군자는 서로 다른 생각과 철학을 존중하며 원만하게 지내지만, 소인은 철학 없이 그저 싸우기만 합니다.”
윤 전 장관은 어른이 부재하고 소리만 큰 이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개인의 존엄을 중시하는 서양 인문학에 관계와 포용을 중시하는 동양 인문학을 조화시킨 것이 바로 우리 아카데미의 정신임을 강조했다.
이어 김준영 전 성균관대학교 이사장은 괴테의 시 「자연(Die Natur)」을 인용하며 인문의 본질을 짚어주었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늘 제자리를 지키며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묵묵한 책임감, 그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문의 정신입니다.”
두 분의 말씀은 결국 하나로 수렴되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루는 군자의 경지, 변화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자연의 마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불역군자(不亦君子)'의 길이었다.
다시, 인문학의 길 위에서
행사를 마치며 우리 손에 쥐어진 선물은 '365일 논어 다이어리'였다. 사무사(思無邪), 삼성오신(三省吾身)... 매일 한 구절씩 성인의 가르침을 새기며 살아가라는 귀한 뜻이 담겨 있었다.
공자가 2,500년 전에 설파한 세 가지 기쁨은 2026년의 서울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생동하고 있었다. 배우고(學), 붕우와 교유하며(朋), 군자의 길을 걷는(君子) 것.
성균인문아카데미 14기가 시작되는 이 새해, 우리는 다시 묻고 답할 것이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소리만 크고 군자가 귀한 시대에, 우리는 500년 은행나무처럼 묵묵히 화이부동의 정신을 지켜갈 것이다.
學而時習之, 有朋自遠方來, 不亦君子乎.
이토록 충만한 배움과 붕우가 있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새해가 또 어디 있으랴.
2026. 1. 8. 호텔신라 영빈관에서
성균인문아카데미 9기, K Car Capital 사외이사 윤석구 (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