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육면 대신 내어준 고수의 선물, '사방채(私房菜)'를

대만 지륭의 골목 식당 '천향'에서 마주한 즐거운 오역과 땅의 맛

by 윤석구

대만여행 세번째 이야기, [우육면 대신 내어준 고수의 선물, '사방채(私房菜)'를 만나다]


* 대만 지륭의 골목 식당 '천향'에서 마주한 즐거운 오역과 땅의 맛


야류지질공원(野柳地質公園) 관람을 마치고 바닷길을 따라 내려왔다. 바람과 파도에 깎인 기암괴석들은 자연이 오랜 세월 남긴 흔적 같았다. 돌과 바다 사이를 걷고 나오니 이제는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워졌다.


금강산도 식후경,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시골집처럼 소박한 음식점을 향하며 문득 대만이라는 큰 섬을 떠올렸다. 먼저 '타이완'이라는 이름의 유래다. 아주 오래전, 이 섬 남쪽 바닷가에 살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타이우안(Tayouan)'이라 불렀다. 그 발음이 네덜란드인의 지도 위에 'Taiwan'으로 옮겨 적혔고, 작은 마을의 이름은 시간이 흐르며 섬 전체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타이완이라는 두 글자에는 중국 대륙보다 먼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 있다. 어찌 보면 제주도의 옛 이름 '탐라'와도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 섬이 문득 가까워졌다. 제주는 감귤 향으로, 대만은 파인애플과 차 내음으로 구분된다.
그때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天香. 私房菜.
"天香 私房菜!(티엔샹 쓰팡차이!)"


하늘이 낸 향기라는 뜻이다. 순간 제주 감귤 품종 '천일향'이 떠올랐고, 아직 문턱도 넘기 전인데 입안에는 달콤한 밀감 향이 먼저 번졌다. 간판 아래에는 작은 글씨 세 자가 더 적혀 있었다.
私房菜, 처음에는 사방(四方)에서 난 재료를 모았다는 의미로 내 마음대로 해석하며 그 풍성함을 상상했다. 여행자의 설레는 마음 살짝 꽈 빚어낸 즐거운 발음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며 그것이 '사방채(私房菜)', 즉 주인장이 귀한 손님에게만 몰래 내어주는 비밀스러운 방의 요리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우육면을 주문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서툰 중국어 발음 속에서 주문은 어딘가 엇갈린 듯했다. 우육면은 없다는 손짓 뒤에 저팔계처럼 훤칠한 이마에 미소 가득한 주방장은 잠깐 우리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불 앞에 섰다. 운전기사가 거들어 몇 마디 나눈 후, 주방장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 솜씨를 믿어보시라'는 표정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 식당에서는 사람이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주방장의 비밀스러운 손맛에 오늘의 맛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을, 사방(四方)의 재료를 모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주방장만의 비밀스러운 방(私房)에서 탄생한 고수의 한 상이었다. 글자 한 자를 잘못 읽었지만, 그 덕분에 이 식당이 품은 깊이를 두 번 음미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음식은 하나둘 상 위에 올랐다. 살짝 데친 부추가 아삭아삭 씹히면서 참기름 향이 코끝을 감쌌다. 우리 부추전처럼 기름에 지진 것이 아니라 나물처럼 무쳐낸 것이라 담백했다.


이어 얇게 썬 돼지고기를 간장 베이스에 볶은 요리가 등장했다. 고춧가루의 매운맛보다 설탕의 단맛이 먼저 혀끝에 닿았다. 아마도 오향가루가 들어간 듯, 은은한 향신료 향이 고기의 맛을 더한 것 아닐까, 싱싱한 야채가 듬뿍 들어간 이 요리는 낯선 타국에서 고향의 정을 만난 듯 반가웠다.


한 솥을 오래 끓인 듯 깊은 닭국물도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 요리로 바다 물고기 조림이 나와 대미를 장식했다. 짭짤한 양념이 먼저 닿았지만 거칠지 않았고, 속살은 젓가락을 대자 조용히 풀어졌다.


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일어설 즈음, 주방장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상 위에 올라온 것은 영락없는 표고버섯이었다. 하지만 젓가락을 대니 겉은 폭신한 빵이요, 속에는 달콤한 앙금이 가득 찬 찐빵이 아닌가. 모두가 진짜 버섯인 줄 알고 속아 넘어가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이미 배가 너무 불렀던 탓에 그 귀여운 녀석을 다 비우지 못하고 남겨두고 온 것이, 지금도 눈가에 아른거려 입맛을 다시게 된다.


그날 상에 오른 음식은 모두 여덟 가지였다. 여덟 가지가 하나로 섞인 음식이 아니라, 각자 제자리를 지키며 자기만의 맛으로 상에 올랐다. 섞이려 들지 않고 각자 자기 맛으로 상에 오른 그날의 점심은, '잘 만든 음식'이 아니라 이 동네의 소중한 삶이 담긴 밥상으로 남았다.


허영만의 《식객》에서나 나올 법한 시골 고수의 음식, 야류 인근 지륭의 한 골목에서 만난 이 '사방채'는 여행이 건네준 가장 귀한 행운이었다.



식당을 나서며 주방장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很好吃! 非常好吃! 謝謝! 再見!(헌 하오츠! 페이창 하오츠! 시에시에! 짜이지엔!) 정말 맛있었어요! 매우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또 만나요!"


주방장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명함 한 장을 챙기고 간판 앞에서 사진을 남기며, 주인장의 비밀스러운 방에서 흘러나온 그 깊은 향기를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이런 숨은 맛집을 알려준 밀리언 씨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這家餐廳很特別!(저 쟈 찬팅 헌 터비에!) 이 식당 정말 특별해요!" 어젯밤 그가 건넨 말이 떠오른다. 추천에 앞서 식사비까지 손에 쥐여 주었으니, 그 고마움은 천향의 향기처럼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2026.1.21

타이완 야류 인근 天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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