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曜朝講 — 새벽을 노크한 논어

성균관대학교 고재석 교수님과

by 윤석구


[火曜朝講 — 새벽을 노크한 논어] <좌충우돌 인생2막 87호. 2026.3.5>

자왈,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인문아카데미 인연이 벌써 수년이 됐다. 분기별 세미나, 학교 특강, 원우회 운동 모임 등 크고 작은 교류가 이어지면서 그 끈은 오늘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 강좌의 주임교수는 늘 사려가 깊고 인품이 참으로 훌륭하신 고재석 교수다. 어릴 적 서당을 다니고, 성균관 명륜당 동재(東齋)·서재(西齋)에서 기숙하며 학문을 닦았으며, 북경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당연히 한학에 조예가 깊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진짜배기 동양 유학자다.


지난해 연말,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1월 초부터 8주 동안 매주 화요일 아침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 논어를 함께 공부하자는 제안이었다. 줌(Zoom) 강의인만큼 수강료는 최소로 하되, 강의 목적은 논어 공부도 있지만 참가자들의 등록금 전액을 대학생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이 더 앞선 느낌이었다.


앞뒤 계산하지 않았다. 논어탐방 공부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학비를 장학금으로 내어놓으며 교수 본인도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그 뜻이 마음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교수님 방학 중 이른 새벽, 고요한 아침을 깨우며 시작하는 그 시간이 남달리 마음에 들었다.


교수님께서 처음 몇 명을 수강생으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행히 여섯 명이 모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두 분의 여성 학우를 포함해 낯선 노신사들이 얼굴도 모를 학생의 등록금 절반이라도 보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참여의 이유는 충분했다. 미래의 동량(棟樑)에게 극히 일부라도 조그만 손길이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겼다.


두 달 전 화요일 새벽, Zoom 화면에 모인 여섯 명은 저마다 사연이 달랐다. 전국 각지에서, 논어·맹자·중용·대학을 이미 두루 섭렵한 분도 있었고 처음 입문생도 있었다.
사실 나도 논어와의 인연이 처음은 아니었다. 2년 전 직장 동우회 논어 공부반에 5개월간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책 든 가방만 들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也, 矣 같은 어조사 앞에서 번번이 막히다 결국 중도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정통 중국어를 전공한 철학박사의 심오한 전수가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세월의 시간이 되어 비로소 받아들일 그릇이 만들어진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이 강의에 얼마나 애착이 생겼던지, 한 번은 대만 여행길 인천공항에서 탑승 직전까지 이어폰을 끼고 강의를 들었다. 동료 수강생인 이창길 박사님의 공도 컸다. 매주 강의가 끝나면 심도 깊게 정리·복습한 학습노트를 카카오톡으로 공유해 주었고, 교수님 또한 미리 학습 내용을 보내주어 사전 공부도 가능했다. 공부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새벽 모임이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매주 서너 챕터씩 깊이 읽어가며,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을 노크해 왔다.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문을 열고, 증자의 삼성오신(三省吾身)으로 하루를 돌아보았다. 김종필 전 총리께서 특별히 좋아하는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위정편(爲政篇)에서 만났다.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는 대신 흐름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머무는 자리가 맑고 곧도록 다듬는 것이 곧 그 실천이었다.
팔일편(八佾篇)에서는 예(禮)의 본질을 다시 세웠다. 禮는 실천이다. 형식이 없으면 무례(無禮), 형식만 있고 바탕이 빠지면 허례(虛禮), 상황에 맞지 않으면 비례(非禮)다.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물으시자 어떤 이가 비웃었다.
공자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예이다(是禮也)." 아는 자도 물어야 한다. 묻는 것 자체가 예다.


이인편(里仁篇)에서 가장 오래 머문 구절은 이것이었다. 君子는 懷德하고 小人은 懷土하며, 君子는 懷刑하고 小人은 懷惠니라. 군자는 덕과 법도를 생각하고, 소인은 안락과 이익을 탐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품고 있는가?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삼인행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선한 것은 따르고, 선하지 않은 것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는다. 누구나 나에게 스승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비판보다 배움을 먼저 떠올리는 마음이 나를 지키는 힘이 되어준다.



요즘 백팩 속에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들어있다. 예전보다 술술 읽힌다. 궁형이라는 극한의 치욕을 감내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사마천, 오직 역사서 완성이라는 소명(召命) 하나로 버텨낸 그 삶이 8주간 논어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은 굴욕도 딛고 일어선다.
그리고 오늘, 8주 차 마지막 강의는 이인편의 한 구절이 끝을 장식했다.


子曰 德不孤라 必有隣이니라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隣은 친함이요, '不'과 '必有'는 반드시 그러하다는 결연한 뜻을 드러낸다.
덕을 쌓는 일은 고독한 길처럼 보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세상은 다른 곳을 향해 바삐 움직인다. 그러나 공자는 말한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장학금이 된 수강료, 재능을 기부한 고재석 교수님, 새벽마다 학습노트를 나눠준 이창길 박사님, 그리고 이른 새벽 화면 앞에 모인 여섯 명, 이 작은 모임 자체가 덕불고 필유린의 조용한 증거였는지 모른다.


새벽 두 시간의 논어가 오늘로 마무리됐다.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으로 이어지길 바라지만, 신학기가 시작되니 학부생들에 매진하겠다는 교수님의 의지에 아마도 여름방학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 글자씩 가슴에 새긴 이 말들을 삶 속에서 하나씩 실천하는 것, 그것이 진짜 시작임을 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2026년 3월 3일, 화요조강을 마무리하며 성균관 교정을 그리며...

윤석구 (경영학박사)


Ps. 맹자님 글귀도 한 장 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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