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분단선 넘은 은행원의 '기록' (1)
윤석구 우리은행 차장(당시)은 개성공단 입점 은행으로 선정(2004년 9월 9일)된 우리은행의 행원으로 같은 해 10월 28일 휴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3년 1개월, 1188일간 '북한 사람'으로 살았다. 6.25 전쟁 75주년에도 휴전선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우리은행 대전충청본부장과 우리종합금융 전무(경영학 박사)를 지낸 윤석구 한국열린사이버대 교수의 애국애족하는 기록을 연재한다.(편집자 주)
[20년전 3년 3개월간 북한 땅 개성공단에 근무하면서 틈틈히 기록했던 당시 소감 등을 2005년 6월부터 12월까지 계룡일보에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주제로 하루 한편씩 171편을 게제한 바 있습니다. 오늘부터 브론치스토리에 재 게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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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꾸는 개성공단과 남북의 미래!
꽃우물역 광장에 유난히 많은 국가유공자분들을 바라보니 6.25 전쟁 75주년이 실감 난다.
수많은 이산가족의 한이 언제쯤 풀릴지, 상봉의 날은 언제 올지, 동병상련의 마음뿐이다. 내 가슴 한쪽을 뻥 뚫어놓은 것은 3년 1개월, 1188일간 은행 영업점 한 공간에서 함께 일했던 이산가족 은행원의 사연이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 뭇 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 가니 /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이 노랫말처럼 임진강은 그저 흐르는 물줄기가 아니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징이다. 새들은 자유로이 임진강 DMZ를 넘나드는데, 어언 분단 80년이다.
3.8선과 6.25 전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은 왜 새처럼 마음껏 넘나들 수 없는 것인가. 이산가족의 가슴 한편에 뻥 뚫린 그리움처럼, 나 또한 이산가족 출신 은행원으로서 가슴 아픈 그리움을 안고 있다.
분단 60년 만에 남북 근로자들이 함께 통일 냄비를 생산했던 곳, 김태희 모델 피복전시회(패션쇼)가 개최되었던 곳, 바로 북한 땅 개성공단이다.
그 시작은 현대 정주영 회장님의 담대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부친의 쌀 한 가마니 판 돈을 들고 서울로 가출했던 정주영 회장님은 훗날 동해 바다에 크루즈를 띄워 금강산을 개방했다. 서산목장에서 직접 키운 소 1000마리에 쌀 한 가마니 값인 소 한 마리를 더해 총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자유로를 거쳐 통일대교를 건너 북에 전달했다.
DMZ 군사분계선을 살짝 넘은 대성리 인근, 서경덕과 황진이의 얼이 살아있는 송악산 아래 개성시 봉동리. 이곳에 대한민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으로 세계 최고의 국제적 공단을 개발하자는 협약이 맺어지며 현대아산과 토지공사는 2004년 6월 100만 평 개발 발파식 팡파르를 울렸다.
분단 59년 만에 북한군 입장에서는 최전선을 20여 km 후퇴시키고 산을 깎고 논을 메워 공단을 만드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아산방조제 건설 시 폐유조선으로 바닷물을 막고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철갑선을 보여주며 "500년 전 배를 만든 경험이 있다"며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에서 외자를 유치한 정주영 회장님만의 획기적인 구상이자 용기였고,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해 가을,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공단 개발의 핵심 기관인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시범 단지 1만 5천 평에 신원에벤에셀, 로만손 등 15개 기업에 우선 투자 인가를 승인하며 본격적인 공장 설치를 시작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했던 것은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 지역에서 기업들의 금융 서비스를 위해 은행도 선행적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공개 선정 공모를 통해 7개 은행이 경합을 벌였다.
분단 전 60여 개 지점을 북한에 보유했던 우리은행은 민족 은행이자 통일 대비 적금 이자 일부를 통일 기금 조성 등에 앞장서 기여한 점 등으로 최종 선정되었다. 당시 우리은행 이종휘 수석부행장님의 오랜 기간 남북경제협력시대에 대한 헌신적인 준비가 큰 결실을 얻은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북한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 우리은행은 개성공단 입점 진출 은행이 되었다. 언론과 방송은 그해 여름부터 현대아산 주도의 개성공단 개발 보도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우리은행 또한 현대의 남북경제협력사업 진출에 동승하게 되어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접경지 지역 방송 송출을 멈추는 등 남북 관계가 평화 공존과 화해 무드로 조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년 전 개성공단에 입점하여 1188일간 근무했던 한 은행원으로서, 제2의 개성공단과 같이 남과 북의 근로자들이 함께 손잡고 초코파이도 나눠 먹으며 다시 웃음꽃 피는, 정주영 회장님도 하늘에서 기뻐하실 그런 날을 희망한다.
근무했던 그 시절의 경험 등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를 회상해본다. 7개 은행 경합 끝에 너무도 어렵게 개성공단 입점 은행으로 선정되어 북한 땅 현지에서 근무할 우리은행 첫 발령 직원이 된 것이다.
인생 최고의 모험, 정주영 회장님처럼 도전해볼까. 용기를 내볼까. 다음 편에서는 개성공단 처음 방문 날의 생생한 경험담이 이어진다.
前 우리은행 본부장, 우리종합금융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