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냄비 1천 세트 롯데백화점에서 완판 (8)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통일냄비 1천 세트 롯데백화점에서 완판 (8)


'Made in Gaesong' 리빙아트 제품 첫 생산 축하 행사 성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400여 남측 인사 참석"
"대한민국과 이곳의 환경이 20~30년 차이가 나고 있다"는 느낌"


필자가 2004년 개성공단을 이끌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년이 지나서 다시 통일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연말이 다가오며 북쪽으로부터 몰아치는 찬 바람, 우리말로 '칼바람'이라 부르는 삭풍이 더욱 매섭게 불어온다.


다행히 송악산이 늠름하게 가로막아 주어 개성공단은 그나마 덜 춥다고 하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따뜻한 온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언감생심 꿈같은 이야기다. 개성공단의 성과라 할 수 있는 입주기업 준공식이 두 곳에서 열렸다.


지난 7일 우리은행 개점식에 이어, 주방기구를 생산하는 리빙아트(현지 법인명 소노코 쿠진웨어)가 역사적인 첫 생산을 시작했다.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개성공단 2,000만 평 개발을 합의한 지 4년여 만이다. 드디어 'made in Gaesong' 제품이 최초로 생산되어, 12월 15일 생산 출하를 축하하는 준공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하여 4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개성공단 실질적 운영 책임자인 주동찬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특히 초대받은 주부 10명에게 직접 생산한 제품을 전달하는 장면에서 참석자 모두 깊은 감회에 젖었다.

저녁 뉴스에서는 개성공단 첫 출시 '통일냄비' 1,000세트가 오전 11시 개성공단에서 8톤 트럭에 실려 오후 6시 롯데백화점에서 모두 판매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어느 날 공장 내부를 둘러보니 매연과 어두운 작업환경 등 개선할 점이 많아 보였다. 우리나라 첨단 기술력이라고 홍보했던 것과 달리, 북한 근로자들에게는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은행 개점식 후 개성 시내를 경유해 선죽교를 관람했듯, 리빙아트 방문 축하객 모두 개성공단 개발 1호 준공 기념 테이프커팅 후 같은 시내 관광이 북한 측의 협조로 승인되어 안내원의 정성 어린 설명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선죽교

이방원의 지시로 조영규의 철퇴에 절명한 포은 정몽주 선생의 핏자국이 아직도 선죽교 돌 틈으로 붉게 남아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붉은 줄이 선명히 보였다. 물론 우연히 생긴 돌무늬겠지만, 모두들 박장대소하면서도 충신의 혼이 600여 년 세월을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 같아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28일 오전 10시, 개성공단에서 또 다른 역사적 순간이 펼쳐졌다.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제21대 대통령 후보였던 김문수 의원, 통일부 조명균 개성공단지원단장 등 각계 인사 250여 명이 참석한 SJ테크 준공식이 열렸다. 이 회사는 토지 1,626평에 건평 1,245평 규모의 지상 3층 최신식 건물을 자랑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북측 배치 인력 70명 중 북한 최고 명문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연구원 8명을 배치받았다는 것이다. 김책공과대학과 고려성균관종합대학 출신 22명도 확보하여 회사의 밝은 전망을 예고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선죽교앞 비석


SJ테크는 포클레인 등 각종 건설장비 부품으로 쓰이는 공압·유압·수압용 패킹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 도전과 열정으로 일관해온 유창근 회장의 각오가 새삼 인상 깊었다. 용기와 도전, 그리고 남북금융협력의 밀알이 되겠다는 각오로 북한 땅 개성공단 은행원으로 생활하며, 어느덧 2004년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사무실이건 공장이건 발전기를 가동해 돌아간다. 새벽녘 밥을 짓고 8~10km를 걸어 출근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옷 색깔 또한 컴컴한 흑색 계통이 주류이다. 하지만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개성공단은 성(城)이 개(開)방된 국제적 공단으로 변모될 것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이곳도, 정주영 회장께서 금강산 관광 크루즈를 동해에 출항시킨 후 금강산 도로가 뚫렸듯이, 조명등이 환하게 밝혀질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한 해를 보낸다.


지난 주말 지점장과 동료 안 차장이 서울로 출경하고 혼자 지점 금고를 지키며, 산책 겸 공단 북쪽 펜스 너머 소로를 북한 주민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엄마와 초등학교 다니는 소년인 듯, 엄마는 머리에 짐을 이고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골에서 어렸을 적 내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대한민국과 이곳의 환경이 20~30년 차이가 나고 있다고 할까. 그럼에도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개성의 북녘땅에 나도 모르게 점점 동화되어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 서너 시간이 지나면 새해가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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