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귀향길5일차 1.남한강 물길을 거슬러

by 윤석구

남한강 물길을 거슬러, 사람을 만나다
— 퇴계 귀향길 5일차


귀향길 닷새째 아침이다.
어젯밤 세종대왕이 잠들어 계신 영릉 인근, 남한강 물결이 넘실대는 콜마 연수원에 묵었다. 푹신한 2인실 침대방에서 너무도 편안히 한밤을 보내니 한결 가뿐해졌다.


사실 나는 3년 전, 인간개발연구원 한영섭 원장님과 함께 세종대왕 영릉을 관람하고 이곳 연수관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윤동한 회장님 특강을 들은 인연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아침이었다.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님의 나라사랑과 그 꽃인 무궁화 사랑은 가히 독보적이다. 연수원 입구에는 회장님께서 별도로 조성하신 무궁화 기념관이 있다. 무궁화와 관련된 대한민국의 역사적 자취가 모두 담긴 곳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꼭 들러볼 만한데, 아쉽게도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아침 식사로 나온 김치국이 진짜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 한 그릇이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준 것 같았다.


퇴계 귀향길 250명에게 멋진 숙소를 제공해 주신 윤동한 회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오늘 아침 첫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오늘의 여정은 국수역(菊秀驛) 한여울을 출발하여 양근성지와 양근나루를 지나 구미리 고개를 넘고, 이포를 거쳐 배개나루에 이르는 23킬로미터의 길이다.


국수역, 먹는 국수와는 무관하다. 국화 국(菊), 빼어날 수(秀), 이름만큼이나 맑고 고운 출발지다. 남한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물길과 나루가 이어지는, 그야말로 '강의 길'이다. 강바람을 맞으며 퇴계 선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헤아리며 걷는다.


어제 30여 킬로미터, 43,000보를 걸었다. 마라톤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핸드폰 속 최고 걸음 수에 비하면 두 번째 기록이었다. 그 걸음 수만큼 발목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압박붕대를 감고 오늘도 출발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10킬로미터가 짧고, 강물 곁 호젓한 자전거도로 좌우로 노란 개나리와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벚꽃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풍경을 놓치기가 싫었다.


1569년 음력 3월 8일, 퇴계 선생은 이 구간에 이르러 배를 대고 남한강 물길을 거슬러 올랐다.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속의 흐름을 거슬러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결심이었을 것이다.


대탄(大灘), 곧 한여울에서 제자 김취려(金就礪)를 비롯한 문인들이 스승을 배웅하며 그곳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읍하고 돌아섰다. 그 작별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며 선생은 문득 오래전 한 만남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1533년 가을, 성균관 수학을 마치고 귀향하던 길이었다. 서른셋의 퇴계는 여주 이호촌에 은거하던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을 찾아뵈었다. 김안국은 김굉필의 문인이며 기묘사림의 일원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선생은 그를 만나고 난 뒤 말년에 이렇게 회고했다.


"비로소 정인군자(正人君子)의 말씀을 처음 들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때로 한 시대를 만나는 일과도 같다. 그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평생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퇴계에게 모재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남한강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길은 여전히 이어진다.


2026.4.3. 21:19 콜마 연수원 21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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