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6일차 4편 입암(笠巖) 앞에 서다
귀향길 6일차 점심직전, 여주읍 이포나루에 닿기 직전이었다.
길가에 입암(笠巖) 안내판이 서 있다. 한자를 보는 순간 반가움이 먼저 왔다. 笠巖 — 삿갓 모양의 바위. 동국대 일산캠퍼스 성장인문학 최고경영자과정의 박영희 주임교수님이 떠올랐다.
매주 토요일 이른 새벽, 어느덧 1055호를 넘긴 주옥같은 편지가 도착한다. 오늘 1055호는 한식(寒食)을 앞두고 고향 선산에서 자줏빛 할미꽃 앞에 선 이야기였다. "어떤 사랑은 떠난 뒤에도 제 철이 되면 다시 피어난다" 그 한 줄이 걷는 내내 발걸음 옆에 머물렀다.
박 교수님의 고향 정읍 집에서 남쪽으로 7.7킬로미터쯤 가면 지리산에 버금간다는 입암산(笠巖山)이 황소처럼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지난여름 김홍신 대작가님과 함께 그 입암산 아래에서 드라이버샷이 팔팔하게 날아오르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입암산의 삿갓과, 지금 눈앞에 선 여주 입암의 삿갓이 같은 형상으로 마주 선다. 재현단의 발걸음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박 교수님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선우혜경 여사님이 함께 떠오른다. 매주 금요일이면 박 교수님과 함께 정읍 시골 마을로 내려가, 입암(笠巖)과 발음이 닮은 '이밤애' 음악클럽을 마련해 주민들에게 무료로 가요를 가르치는 봉사를 이어가고 계신다.
노래는 감정이 먼저 열어젖히지만, 그 감정 위에 나눔의 이성이 올라타 조율한다. 율곡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이요,
동시에 봉사를 먼저 결심하고 실천이 따라오는 퇴계의 이발기수(理發氣隨)이기도 하다. '이밤애' 클럽은 그 두 봉우리가 매주 금요일 정읍에서 만나는 자리다.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의 재능으로 기쁨을 나누어 주는 것 이 또한 퇴계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전 내내 해박하신 조선유교 선비정신의 토양, 이발기수 기발이승 이론이 이론을 낳으니 슬슬 다리보다 머리가 먼저 지쳐간다.
마침 입암(笠巖) 앞에서 딱 한 가지만 건졌다. 갓 쓴 사람이 삿갓바위 앞에 섰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입암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한복 도포 자락을 여미고, 갓을 쓴 채로. 삿갓바위 앞에 선 갓 쓴 사람, 묘하게 어울린다 싶었다.
다리를 건너 간이 천막 아래에 차려진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다. 소박하지만 충분하다. 퇴계 선생도 귀향길에 이런 점심을 드시지 않으셨을까. 밥 한 술 뜨며 생각한다.
오늘 오전, 상복 한 장으로 나라가 흔들렸고, 삿갓바위 하나로 마음이 환해졌다. 이 길은 역사를 걷는 길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2026.4.4 신륵사 조포나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