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한 폭의 비단처럼 푸르렀고, 구름 한 점 없이 높았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한 날, 우리는 겸재 정선의 발자취를 따라나섰다. 황산과 태산처럼 아름답고 푸른 산이 많아 중국의 시성 소동파는 '길 닿는 곳마다 살 만한 청산(靑山)이 있다' 하여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이라 노래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깨달음인가!
그러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를 더욱 빛나는 진주알로 다듬어냈다. 마치 옥돌을 갈아 보석을 만들어내듯, '인생도처유청산'을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로 승화시킨 것이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는 숨어있는 고수들이 많고,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담아낸 절묘한 변주였다.
미래학당만 들여다보아도 진정한 고수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AI ChatGPT의 새 지평을 열어가며 2025년에는 을사오적 혁파를 주창하시는 김광호 회장님은 마치 등대처럼 우리의 미래를 밝히고, 지난 20년간 1000회에 가까운 '출사표의 성장인문학 CEO 토요편지'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박영희 교수님은 샘물처럼 맑은 지혜를 전한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미래를 위해 불꽃같은 열정을 바치는 양향자 전 국회의원님까지 이분들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최고 상수'들이며,
최근 우리 미래학당에 입당하신 덕연인문경영연구원의 한영섭 원장님을 역시 반열로 꼽고 싶다. 진정 한 원장님은 현대판 선비와도 같다. 전경련에서의 30년과 인간개발연구원에서의 10년이라는 시간은 그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마치 오랜 세월 품어온 술이 더욱 깊은 향을 내듯 한 원장님은 자신만의 문화향연을 펼쳐내고 있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이면 서울 근교의 미술관, 고궁, 사찰, 왕릉을 걸으며 인문학의 꽃길을 열어주고, 때로는 청산도 제승당으로, 때로는 일본과 인도네시아로 문화의 날개를 펼친다. 일 벌레처럼 살아온 우리들에게 오페라, 뮤지컬, 국악, 발레의 꿈같은 시간을 선물하고,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해설로 그 감동을 배가시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눔인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조차 후배들을 위해 바치는 한 원장님만의 심지(心志)와 실행력은 그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인생도처유상수임을 증명한다.
지난 12월 7일 겨울바람조차 숨죽인 듯한 날씨 속에 20여 명의 문화 순례자들이 양천향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양천항교역 커피점에서 따뜻한 정을 나누고, 우리는 겸재 정선의 숨결이 깃든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만난 겸재는 1676년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나 83세의 긴 생을 살다 간 조선의 거장이었다.
기사환국으로 집안이 몰락하는 풍파 속에서도 겸재의 붓끝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마치 매화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더욱 그윽한 향을 피워내듯 그는 역경 속에서 더욱 빛나는 작품들을 남겼다. 김창집과의 관계 속에서 양천현령을 지내면서도, 그의 발걸음은 쉼 없이 전국의 명승을 누볐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장대한 풍경과 박연폭포의 웅장한 물줄기는, 오늘도 그의 그림 속에서 살아 숨 쉰다.
특히 궁산 소악루에 올라 바라본 풍경을 담은 '양천과 한강 진경'은 그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임진강 입구에서 행주산성, 북한산, 마포 애오개를 거쳐 남산과 용산, 팔당 검단산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경관은, 마치 한 폭의 비단에 수놓아진 듯했다. 해인사도, 도산서원도, 삼도담도 등 124점의 영인본들은 각각이 보물과도 같았지만, 필자의 고향 백마강을 배경으로 한 '임천고암(林川鼓岩)'(좌충우돌 인생이막 10호. 24.9.12 字) 없음은 작은 아쉬움으로 남아 소장되어 있는 간송 미술관에 여건 되는 대로 방문해보고자 한다.
겸재의 한양진경산수화를 확인하고자 우리는 미술관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궁산(宮山)의 소악루(小岳樓)로 발걸음을 옮겼다. 70m 높이의 궁산에 자리 잡은 이 누각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1737년 영조 13년, 동북현감 이유(李楡)가 벼슬을 내려놓고 풍류를 즐기고자 이곳에 누각을 지었다는데,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에 버금가는 경치라 하여 소악루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마치 은자의 정원처럼 고요한 이곳에서 겸재는 양천현령 시절 매일같이 붓을 들었다. 누각의 현판을 마주하고 계단을 오르니, 겸재가 왜 이토록 이곳을 사랑했는지 온몸으로 이해가 되었다. 행주산성과 북한산, 남산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산세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마치 천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둔 듯했다.
문득 220년 된 고향집 백마강 삼의당 언덕에서 바라보던 계룡산세가 떠올랐다. 소악루의 지형과 묘하게 닮아있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향집 반호정사(盤湖精舍)의 기둥에 새겨진 주련의 글씨였다. '浮光躍金 靜影沉璧(부광약금 정영침벽)' 즉 밝은 달은 천리를 비추는 바, '물에 비추는 일렁이는 달빛은 금가루를 뿌린듯하고 고요히 물에 잠긴 잘 그림자는 구슬이로다'이라는 글귀는 마치 천년을 건너온 메아리처럼 범중한의 악양루기와 맞닿아 있었다.
북송의 범중엄이 남긴 악양루기의 한 구절이 눈앞의 풍경과 겹쳐지니, 마치 옛 선현들이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위아래 하늘빛과 물결은 하나같이 푸른 옥빛이며, 모래밭에 갈매기들은 모여들고 비단 물고기 노닐며..."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동정호의 풍경과 한강의 정취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이었다.
송나라 범중한이 바라본 동정호와 이유와 겸재가 사랑한 가양동 궁산 소악루의 풍경, 그리고 백마강 언덕의 반호정사에 새겨진 '부광약금 정영침벽'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생도처유상수'의 증거가 아닐까. 소악루를 내려오며 이곳을 관리하는 문화담당 관리에게 제안하여 악양루기의 한 구절을 주련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식물원에서 나는 그동안의 바쁜 일상이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게 했는지 깨달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 지하철역 바로 곁에 이토록 풍요로운 문화의 보고가 있었다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스쳐 지나간 모든 순간이 아쉬워졌다. 주옥같은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인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한영섭 원장님을 따라 더 많은 배움의 길을 걸으리라. 새끼손가락을 가슴에 대고 스스로와 약속하는 순간 겨울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