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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아주 작은 용기

세상의 유진이에게 2

by 하린

“들리지 않는다고 마음이 닫힌 건 아니야.”

유진은 매주 금요일이면 동네 도서관에 갔다. 언제부턴가 혼자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가끔은 가만히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좋아졌다. 책장이 넘겨지는 소리, 의자 끌리는 소리, 아이가 뾰로통하게 엄마를 쳐다보며 소리 없는 투정을 부리는 모습까지. 그 고요한 소음들이, 유진에게는 오히려 안도감을 줬다.

그날도 유진은 늘 앉던 창가 자리에 앉아, 좋아하던 시집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 유진의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시… 이 자리, 괜찮을까요?” 입모양이 또렷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낯선 여자였다.

잠시 후, 그녀가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이 시, 저도 좋아해요. 가끔 이런 구절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는데, 오늘 그게 되네요.>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것도 이렇게, 자신의 세계를 무시하지 않고 다가오는 방식으로. 유진은 펜을 꺼내 답을 썼다.

<저도요. 이 시, 마음을 다독여주는 말이 참 많아요. 오늘 같은 날엔 더 그렇네요.>

그녀는 유진의 쪽지를 보며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이 유진의 어깨를 살짝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작은 쪽지 하나, 말 한마디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유진은 이상하게도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진심은, 방법을 찾아온다.

그날 밤, 유진은 오랜만에 잠이 들기 전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은 여전했다.
“오늘, 세상이 나를 두드려줬다. 아주 작고 조용했지만, 확실하게. 나도 다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부족한 연재글이었음에도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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