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매일 일곱 명의 다른 얼굴을 만난다. 상담실 문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오고, 그들의 감정은 내 마음 깊은 어딘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내담자들은 말한다. 불안하다고, 외롭다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켜온 마음이 너무 무겁다고. 나는 조용히 듣고, 그 무게를 함께 들어 올린다.
그리고 상담이 끝나면,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정리되지 않은 상담 기록, 마감이 코앞인 보고서, 발표 자료, 그리고 아직 비워진 논문 결과의 빈칸. 무언가를 끝낼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일상. 하루라는 시간은 턱없이 짧고, 해야 할 일들은 버거울 만큼 길다.
주말이 되면 잠깐쯤은 쉬고 싶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은 더 시끄러워진다.
‘혹시 내가 놓친 개념은 없을까? 이론 정리가 부족한 건 아닐까?’ 책장에 꽂혀 있던 학습심리와 발달심리 개론서를 꺼내 읽으며, 나는 나를 채우기 위해 또 공부한다. 그래야 조금은 덜 불안해질 것 같아서.
그런 나의 곁에 고양이, 용순이가 있다. 요즘 따라 유난히도 칭얼댄다. 책을 펴면 그 위에 앉고, 랩탑을 켜면 키보드 위에 벌러덩 눕는다. 심지어 내가 겨우 침대에 누우면, 내 머리맡에 작은 앞발로 땅을 파듯 긁기 시작한다. 솔직히, 꽤 아프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아이는 내가 피곤하다는 걸, 지쳤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 애만은 내가 괜찮은 척하는 걸 믿지 않는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아무리 꼿꼿하게 앉아 있어도, 그 애는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알아본다. 책 위에 앉는 건 ‘그만해도 된다’는 신호이고, 키보드 위에 눕는 건 ‘지금은 멈춰도 된다’는 다정한 간섭이다. 나는 그 위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그 옆에서 조금씩 나를 회복한다.
나는 여전히 매일 바쁘고, 벅차고, 어떤 날은 조용히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비록 늘 시간에 쫓기고 있더라도, 나는 지금, 꽤 잘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 이 시간들이 지나간 뒤에도 책 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그 작은 고양이의 눈빛만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 눈빛 하나가, 내 하루를 버티게 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