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츄 마을

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by Rian

시츄 마을이 있다. 푸른 잔디가 드넓게 깔리고, 개껌 모양의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그 아래에선 한낮의 꿈을 꾼다.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꽃 모양 간식들이 춤추는 곳. 햇살 가득 향기를 머금은 그곳은 언제나 푸름이다. 시츄 마을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츄가 있다. 짖지 않는 시츄도 있고, 갈색 얼룩무늬 시츄, 착한 시츄도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츄의 눈은 하얗게 눈이 내렸다. 매일매일 친구들이 핥아줘 눈곱은 끼지 않았지만, 눈이 쌓이듯 허옇게 변해가는 것은 햇살로도 녹일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처음엔 밥그릇, 나뭇가지, 바위에 부딪혔지만 이젠 익숙하다. 냄새만으로 소리만으로 세상 보는 법을 배웠다. 시츄들도 그를 돕는다. 자그마한 것들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간다.


짖지 않는 시츄는 절대 짖지 않는다. 밥그릇을 뺏겨도, 발을 밟혀도 ‘낑’ 한 번 하지 않는다. 짖는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조용히 참기만 한다. 화가 날 때도 다른 마을의 강아지들처럼 “월월!” 소리치지 않는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만 껌뻑이며 쳐다볼 뿐이다.


갈색 얼룩무늬 시츄는 멋진 털을 가졌다. 가끔씩 흰색과 검정의 털 무늬를 갖고 있는 시츄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츄들은 옅은 갈색과 흰색의 털을 갖고 있다. 얼굴에 딱 붙은 검정코와 눈은 털 속에 파묻혀 한참을 찾게 된다. 하지만 밥시간이 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먼저 마중 나온 분홍색 혀가 벚꽃처럼 활짝 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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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츄들은 착한 시츄다. 잘 보이지 않아도, 짖지 않고, 멋진 털을 가졌지만 알레르기를 잘 일으키지 않는다. 밤 하늘의 별 같은 눈망울을 지긋이 굴리며,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철푸덕 앉아 잠을 청한다. 순하다. 그래서 괴롭힘도 당한다. 하지만 시츄들은 원망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신이 다 감내하겠다는 듯 인내하고 인내할 뿐이다. 그래서 슬프지만 시츄 마을에선 걱정하지 않는다. 모두 착한 시츄들이니까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다. 서로 사랑만 한다.


조용한 시츄 마을에도 날 리 법석일 때가 있다. 밥시간이 되면 얌전하던 시츄들도 엉덩이를 흔들고, 꼬릿내 나는 발바닥을 연신 굴러댄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츄는 킁킁거리며 밥 앞으로 내달린다. 짖지 않는 시츄도 소리 없이 입만 크게 벌리며 폴짝댄다. 갈색 얼룩무늬도, 검정 얼룩무늬도 튀어 나간다. 시츄 마을의 모든 시츄들이 밥 앞으로 달려간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호동이는 시츄 마을에 갔다. 그곳엔 목줄도 없고, “안돼!” 도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은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친구들도 많다. 눈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고, 몸에 핀 검은 버섯이 간지럽지도 않다. 결석도 생기지 않을 거고, 노환으로 빙빙 돌지도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친구들과 정신없이 뛰어놀다. 문득 해 질 무렵, 고개 돌려 우릴 기다릴까. 우릴 찾을까. 문 앞에 엎드려, 우리 생각할까. 걱정이다.


조금만 더 놀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


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보고 싶어. 만지고 싶어. 사랑해…

내가 제일 사랑하는 두 생명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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