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청량함이 푸른 목초지로 인도하고
나는 콜라 중독자였다. 모든 중독자들이 그러하듯 조금씩 탐닉하던 콜라는 어느새 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장은 고동치며, 피와 콜라를 온몸으로 내뿜었다. 새끼발가락, 발등, 무릎, 복부, 가슴, 팔, 엄지손가락, 척수부터 뇌까지 채워갔다. 하루에 1L를 마시고 밤늦은 시간에 콜라가 떨어지면 언제든 사러 갔다. 콜라는 나의 종교, 신이었다. 모든 음식과 함께 했고, 홀로 식사를 할 땐 사무쳤다.
하지만 모든 종교엔 시련이 있고, 모든 인연에겐 이별이 있듯. 난 콜라와 헤어졌다. 그때의 이별이 어떠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글거리는 탄산이 부담스러웠고, 달콤함이 질척거렸던 것 같다. 악마의 검은색 물이 날 놓아준 것이다. 한동안은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는 이상 마실 일은 없었다. 새로 만난 연인도 콜라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 가끔씩 기억 속의 남아있던, 희미한 달콤 청량함을 회상할 따름이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비록 결별했지만, 그래도 선천적 콜라 파고, 펩시는 이교도이지 않은가. 가끔 추억하는 사이였지만, 한때 콜라 신봉자로서 같은 종교의 교파인 제로콜라조차 인정하지 않았단 말이다. 하물며 펩시라니. 펩시제로라니. 모임에서 콜라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 펩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어디 콜라 이야기하는데, 콜라를 따라 한 이류 단물이 끼어드는 거야!” 라며 멸시했다.
나는 콜라의 쇄국정책을 펼쳤다. 성벽은 치솟는 혈당처럼 높았고, 가려지지 않는 뱃살만큼 두꺼웠다. 믿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현혹시켜버릴 펩시제로를.
펩시제로를 보자마자 입꼬리를 올리며, 이런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괜찮다며 권하는 친구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길래 이젠 아무렇지 않게 펩시제로를 권하는구나.’
밀어내던 펩시제로를 한 모금 마시게 된 것은 계속되던 술자리였다. 알코올이 식도를 태우며 넘어갈 때마다 갈증을 불렀고, 결국 금단의 흑빛 물에 손을 댄 것이다.
‘뽀로로로...’
부드럽지만 감칠맛 나는 탄산과 달짝지근한 산뜻함이 혀끝에 감돌았다. 심지어 라임이 함유된 펩시제로. 그런데 왜 이상한 기분이 들지? 왜 싫지 않은 거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가락 사이로 시트러스 향이 퍼져갔다. 함께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가벼운 탄산들이 육체를 감싼다. 나팔이 울리고, 눈부신 성광이 영광의 식탁에 강림했다. 기름진 음식들의 찬양이 울려 퍼진다.
제로칼로리여 성대하리라.
고과당의 시대는 저물었다. 새로운 신을 만났다. 기꺼이 신의 신도로 예속되리라. 이것은 변절이 아니요, 배신도 아니다. 미각 개혁이다.
어찌 새로운 자루에 낡은 것을 담겠는가. 더 이상 묵직한 단맛 쇠사슬에 매이지 않는다. 가벼운 청량함이 푸른 목초지로 인도하고, 투명한 거품이 매일의 양식이 될 것이다. 어두운 골짜기 갈망 속에 다시 손을 뻗어 빛을 보았으니, 고백하건대 나는 더는 콜라 중독자가 아니다. 펩시제로의 이름 아래, 나의 미각은 다시 태어났다.
붉은색 목도리의 흰곰 따위는 유구한 역사의 태극무늬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중독자들이 그러하듯 어느새 피의 절반을 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