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이르는 병

부제: 단독자로 서기

by 이슬

2025. 10. 26. 일. 가는 비 내리는 날

참된 만남은 깨달음을 준다는 어떤 철학자의 말은

내 방황의 근원이었다.

마음에 병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또 다른 철학자의 말은 내 고통의 뿌리였다.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을 안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누군가를 찾아 헤매던 삶이었다.

하지만 만나야 할 누군가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자신을 만날 때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아침부터 부산하게 외출 준비를 했다.

어둠이 창밖에 아직은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는 시간이다.

가을로 접어드니 예전 같았으면 벌써 해가 창문을 두드렸을 만도 한데

아직 해는 깨어나지 않고 있다.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읍내 장에 갔다 돌아오기를 기다리듯이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이런 기분을 느끼리라곤 한 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솟대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지인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자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교회와 나의 인연은 아주 멀고 먼 옛날이다.


교회와 성경에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를 다니면서였다.

학교 설립자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성경이라는 신약성서를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는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길거리를 다니면 "예수 믿으세요"하는 이들이 참 싫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교회 다니던 아이들이 교회에 가자며 꼬드겨서

몇 번 교회라는 곳을 가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가 어쩌다 절에 가는 것이 전부였던 내 기억에

교회를 뭔가 배척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신의 특별한 은총이었을까?

난 미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성경시간이 따로 있었고, 성경에 대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신약성경을 읽고 설교를 해주셨던 교목이 계셨었다.

하지만 그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나는 것은 없다.

단지수업시간에 가져오신 책 첫 장에

마틴 부버의 "참된 만남은 깨달음을 준다."는 말과

키에르 케고르의 "마음의 병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두 마디가 심장에 박혔다.



내 이성은 언제나 파르르 날이 서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

가슴엔 뜨거운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참된 만남에 대한 기대로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나 자신을 알 못한 채 세상으로 열린 문이 두렵기만 했다.


열여섯~ 열여덟, 십 대의 푸르른 청춘이

뜨거워서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날려가 버릴 것 만 같았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푸르러서 맘이 시린 날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우린

" 나! 어떻게! 나! 어떻게! 나! 어떻게!"라는 노래를 절규처럼 쏟아냈다.


살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날엔,

그렇게 소리쳐 외쳤던 그날이 때때로 폭풍처럼 쏟아져 올 때가 있다.

언제나 타는 목마름으로 나를 찾아 헤맸고,

마음의 병을 안고 누군가 내 삶에 참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이를 찾아 방황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CCC(Campus Crusade for Christ, 한국명: 한국대학생선교회)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주변지역 모든 대학에서 가입한 회원들과 매주 모여서 성경공부를 했다.

찬양도 했고, 엠티도 다녔다.

CCC는 단순한 대학 동아리를 넘어,

캠퍼스에서 시작해 민족과 세계를 향한 복음운동을 펼치는 국제적 선교단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했던 대규모 종교행사에 참여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하지만 믿음이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교회도 다니다 말다 하며 시간을 보내 버렸고

CCC 활동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거리마다 큰소리로"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멸망이 곧 다가옵니다. 회계하고 영생을 얻으세요."

외치는 이들에게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작용했고, 조금씩 기독교라는 세계에서 멀어졌다.

달과 별의 동행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 후 CCC 선교회 담임 간사님과도 연락을 끊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해 날 선 토론을 하며

기독교의 문제점과 잘못된 신도들의 행태는 물론

일부 성직자들의 반 사회적 행동들이 날 점점 믿음에서 멀어지게 했다.


피아노 교습소에서 피아노 랫슨을 해주셨던 분들도 신앙이 깊은 분들이었다

그들의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 시절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렛슨비도 제대로 못 냈지만 그분들은 무척 호의적으로 날 대해 주셨다.

참 선하고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믿음과 종교에 대한 나의 방황은 계속됐다.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이 더 내 성향에 맞는 것 같아서 성당에를 갔고,

난 거기서 영세를 받았다. "리따" 이것이 내 세례명이다.


세례를 받았지만 소극적이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나는 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은 나를 잊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디 가서든지 나를 찾으셨고

나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내셨다.

유난히 지역이동이 많았던 나는 광양에서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한 동안은 성당을 다녔지만 여러 가지 역학적인 관계의 틀 속에서

처신이 어려워지자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신은 결코 나를 놓지 않고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다.

내 삶을 전환시켜 줄 참된 만남을 애타게 찾아 헤맸지만 만날 수 없었다.

자신을 알지 못하고 홀로 살아내려는 나를 슬픔과 고통 속에

내동댕이 치시면서 나를 찾으셨던 것 같다.

나를 부르셨던 것 같다.

"내가 여기 있다. 왜 홀로 어디를 헤매고 있느냐"

외치시면서 ….



" 마음의 병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철학자의 말은 내내 내 가슴에 메아리쳤다.

난 그 병에 걸린 채 한 세상을 살았다.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무지한 채로.

삶은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며

항상 빈 허공 같은 빈 가슴을 안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살았다.


키에르 케고르가 말했던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진정한 나로 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을 산다는 것 자체도 깨닫지 못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소진하는 삶을 살았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맏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온갖 억압과 통제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받은 자기 비난 속에서 한 생을 살아냈다.


가을 들녘 키 작은 코스모스


시간이 흐르고 난 그 세계 속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사회가 쳐 놓은 그물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삶을 찾으려고 버둥거릴수록

더 큰 수렁 속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난 신을 찾지 않았고, 혼자 힘으로 벗어나고자 애썼다.

하지만 더 큰 고통과 좌절만이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다다랐다.

난 절망했다.

세상 속에 혼자였고, 부모, 형제, 남편, 자식 모든 관계가

그루밍되어 나를 옥죄어 왔다.

이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절대적 절망이 나를 엄습해 왔다.

비가 내렸다.

10월의 비는 창 밖에 내리지 않는다.

비는 빈 영혼 속에서 화살처럼 내리 꽂힌다.

내 마음은 폭우에 두들겨 맞는 유리창이다.


교회에 들어섰다.

찬양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 천상에서 들리는 듯 황홀했다.

돌아온 탕자를 기꺼이 맞이하시는 신의 따뜻한 영접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평안함을 느꼈다.

그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안전함, 평화로움이

내 긴 방황과 고통스러웠던 삶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하는 평화를 처음 내 맘에 담았다.


" 참된 만남은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말은 내 방황의 근원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찾아 헤매었던 참된 만남에 대한 갈망은 채울 수 없는 허구였다.

결코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무엇보다 값진 소득이다.


내 삶의 한걸음 한걸음을 선무당이 작두 타듯 살아냈다.

찢기고 베인 상처들은 자신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치러야 했던 혹독한 대가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모두 내려놓는다.

내 마음의 아픔은 조금씩 치유될 것이고

이제 혼자가 아닌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인 그분과 함께 있음을 안다.

내가 그분 앞에 나로 당당하게 서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독자로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주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다.

그 누구도 그 존재를 폄훼하거나 핍박할 수 없다.

그 분과의 참된 만남으로 깨달음을 얻었고 깊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있다.

신 앞에, 세상 앞에, 내 자신 앞에 단독자로 당당하게 서서 난 진정한 나 자신의 삶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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