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
부제: 내 안의 아이
어린 시절 ‘넌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어른들의 놀림을 받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마을 앞, 체계 산 밑을
흐르는 섬진강 다리를 바라보며,
‘왜 엄마·아빠는 날 다리 밑에 버렸을까?’
어린 맘에 남몰래 서러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글썽여졌고
그런 날 보며 어른들은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때부터 가족들이 서먹서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나를 낳은 엄마·아빠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밤마다 다리 밑 차가운 돌바닥을 떠올리며 뒤척였다.
나를 내려놓고 돌아섰을 누군가의 뒷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불속은 섬진강 물결처럼 시리고 축축했다.
난 내가 속한 가족이 항상 낯설었다.
태어나니 언니와 오빠가 있었고, 두 돌이 좀 지나자
남자 동생이 태어났다.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부모님이 내게 관심을
기울였던 기간은 극히 짧고 애정의 밀도도
충분치 않았다고 여겨진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의 놀림의 말을
진실이라 믿고
어딘가에 있을 친엄마·아빠를 찾아 떠나고 싶었다.
어느 날 문득 숨죽이고 웅크린 작은 아이 하나가
내 맘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어른들의 놀림은 유년의 내겐 풀지 못한 숙제였다.
어딘가에 진짜 부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우물 깊숙한 곳에 떨어뜨린 무늬 없는 돌덩어리였다.
아무리 들어내려고 해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았다.
실체가 없는 그것은 암묵적이었기 때문에
더 나를 옥죄여 왔다.
초등학교 4학년, 태를 묻고
기저귀를 차고 옹알이하던 순창을 뒤로하고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호롱불을 켜며 흰 치마·저고리를 입던 깡 촌에서
환하게 빛을 내는 백열등이 참 신기했다.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전학한 첫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의 소개로 까딱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깡촌 냄새가 풀풀 나는 나를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수로 반겨 맞아 주었다.
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자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물으며
이야기를 걸어왔지만 내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들의 말씨와 세련된 옷차림, 예쁜 모습에 기가 죽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자신들의 용돈을 모아
서울우유와 샌드위치 빵을 사다 주었다.
동그랗고 길쭉한 병에 서울우유라는
빨간딱지가 붙어있던 쌀뜨물 같은 액체를 처음 맛보았다.
입안을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비위가 상했지만,
나를 지켜보는 천사 같은 반 친구들의
표정을 보며 넘겼다.
엄마가 만들어준 동그란 찐빵만 먹다
정사각형 모양의 샌드위치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2mm 정도 되는 노릇하고 딱딱한 테두리를 떼어내고
한 입 베어 먹었다.
입안의 수분을 모두 앗아가는 듯한
그 메마른 빵 조각은
세련된 도시의 첫인상과 닮아 있었다.
정제된 밀가루의 하얀 무미건조함이
갓 상경한 소녀의 투박한 미각을 밀어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몇몇이
데려다주겠다며 따라나섰다.
엄마 손을 잡고 같이 왔던 길인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골목을 헤매자
아이들은 한 명씩 내게 작별을 고했다.
혼자 남겨진 나는 눈물을 글썽한 채 두리번거리다
마침 보이는 경찰서로 들어갔다.
“길을 잃어버렸어요.” 울먹이며 말하는
나를 안심시킨 경찰이 손을 잡고
함께 집을 찾으러 나왔다. 안심이 되어서 인지 잊었던 길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전학 간 첫날의 사건은 두고두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각인되었다.
학교 생활하는 내내 친구들에게 부끄러웠다.
상황마다 낯섦은 ‘무지하다’는 자책감이 되었고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사실은 무척 명랑쾌활하며 다소 도발적이기도
한 나의 본성이 입을 닫고 숨을 죽이고 웅크렸다.
집에서는 잘도 재잘거리면서 학교에만 가면
절대 입이 열리지 않았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선택적 함묵증’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심리적 어려움이다.
교실 뒤 작품판 밑, 열 살 소녀 가슴 높이의
고동색 장식장 위에 누렇게 빛바랜 낡고 헤어진 학급문고라는 책이 몇 권 꽂혀 있었다.
그중 ‘백조의 왕자’라는 동화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주에 걸린 오빠를 구하기 위해 말을 하지 못하는
엘리사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마녀라는 오해를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엘리사!
마지막 순간 날아오르는
백조들에게 옷을 던져 백조가 오빠로 변했을 때
엘리사는 비로소
“오빠”
라고 외쳤다.
엘리사가 피 묻은 손으로 쐐기풀 옷을 다 짰을 때
오빠들이 왕자로 돌아왔던 것처럼,
나의 침묵도 헛된 것은 아니었다.
함묵증을 앓던 소녀는 성장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삶이 나를 던져놓는 곳마다
이방인의 고독을 덤으로 받으며 살았다.
그 여정은 내가 나 자신에게 입혀줄
날개옷을 짜는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가 아니다.
양말 속 모래알 같은 여김을 받으며 살았던 시간은
엘리사가 쐐기풀로 옷을 짜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나라에서 숨 쉬는 법을 익혔다.
이방인의 언어를 나만의 신호로 바꾸었으며,
나의 산호가 살 수 있는 밝고 청정한 바다를 안고 돌아왔다.
이제 육십 고개를 넘은 나는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됐다.
깊고 어두웠던 우물 속에 떨어뜨렸던
돌덩어리를 찾아 건져 올렸다.
보이지 않던 그 돌덩어리는
오랜 침묵의 시간을 지나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동자처럼 반짝이는 보석이 되었다.
내 안의 숨죽였던 아이는
날개를 달고 넓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 별이 되었다.
다리 밑에서 시작된 나의 특별한 여정은,
타인의 나라를 지나
온전한 나의 나라를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영역에 서성이는
이방인 뫼르소가 아니다.
내가 만든 삶의 영역에서 나만의 삶의 지표들을 세우며
스스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백조의 왕자이자,
그 옷을 완성한 엘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