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땅이 갈라지는 소리로
잠을 설친다.
나무마다 살갗이 찢기는 소리에 귀가 아프다.
꽃 피는 4월의
눈부신 봄을 열기 위해 치르는 산고다.
더 이상 고통이 없다는 것은 이미 생을 다한 것들 뿐임을
우리는 안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가 대세다.
단종의 비극적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비참하게 스러져 간 어린 왕,
권력 싸움의 희생양인 단종의 이야기는
언제나 대하는 이를 깊은 연민에 빠지게 한다.
죽어가는 왕의 곁을 끝까지 지킨
한 남자의 모습이 아마도 관객의 마음을 붙잡은 듯하다.
세습제인 왕정 시대의 권력 싸움은
피를 나눈 혈연 간에 벌어지는 극한투쟁이기에
더 비극적이고 처절하다.
내게도 왕이 있다.
얼마 전부터 나도 왕과 사는 여자가 되었다.
내가 왕과 사는 여자가 된 것은
현대사의 비극이 계기다.
죽어가는 왕을 끝까지 보필했던
한 무지렁이 촌부처럼
나에게도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왕이 있다.
그래서 기꺼이 왕의 숨의 여자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공화정이 들어서면서부터
권력의 암투는 패거리 싸움의 성질을 띤다.
무슨 당 무슨 당 하는 것들이 모두
내 편, 네 편으로 편을 짜서 숫자로 밀어붙이는
물리적 힘 겨루기이다.
네 편도 내편도 아닌 이들을 중도라고 하며
그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굳이 어떤 편이 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다.
대한 제국 말에 태어난 부모님에게
생명을 받은 나는 박정희 정부 내에서 성장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웠고
아침마다 새마을 운동 노래를 들으며 학교에 갔다.
1968년 12월 0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식.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모두가 가난했던 시대였지만
희망으로 가득 찼던 나의 유년기는
빈 배로 세상을 저어도 행복했다.
어른들이 하 수상한 시국에 대해
무엇이라 두런거리는 소리를 등 너머로 들으면서
청소년기를 지났다.
오직 공부밖에 몰랐던 시대,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의식이 강했던 우리들은
우골탑의 신화를 쓰며 절박한 심정으로
모두 공부에 매달렸다.
여수남파랑캠비치 해넘이딸보다 아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당시
다행히 나는 살림 밑천은 아니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권력이 무엇인지 정치가 무엇인지 관심 없다.
역사를 통해 각 시대를 어렴풋이 인식했을 뿐이다.
36년 간의 독립운동 기간을 거쳐
강대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굴욕적인 독립을 어쩔 수 있는 시대의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내 힘이 아닌 타인의 힘으로 나라를
건국할 수밖에 없던 역사의 아픔을
남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반쪽짜리로 시작한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은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안고 태동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을 인정한다.
주권재민이라 말하지만
사실 나는 내 권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정치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하찮은 일들을 하면서 산다.
하찮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하찮은 개인의 일상에도
역사의 흐름은 깊숙이 숨어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일 아침은
너무나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그날은 언니의 결혼식 날이다.
술렁거리는 흉흉함 속에 결혼식을 진행했다.
국가적 비극의 날 치른 언니의 결혼식은
그래서 더 또렷하다.
그리고 맞이한 80년 서울의 봄은 회색빛 안개였다.
5.18의 뜨거운 이슈로
세상은 마치 들끓는 가마솥이었다.
새내기였던 나는 학생운동을 하다
누가 잡혀갔다는 둥 떠도는 소문에 두렵기도 했다.
학교가 폐쇄되고 나의 대학 생활의 부풀던 꿈은
집안에 갇혀 갓 태어난 조카 우유병을 들고 보냈다.
1987년 6월의 거리는 또 한 편의 단막극 같다.
그해 6월 어느 날 서울역 대우빌딩 앞을 지나가는데
수많은 사람이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대한 사람의 강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다.
최루탄 가스는 대한민국 상공에 흩어져서
눈, 코, 입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서울대학생의 최루탄 피폭 사건은
6.10 항쟁을 불 붙이는 촉매제가 되었다.
나는 가야 할 길도, 국가공무원이라는 신분도 잊고 그
대열에 합류하여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나 같은 어리바리 가 동조할 만큼
시대의 사명은 절대적이었다.
그 후로도 많고 많은 역사적 사건이 있었지만
내게는 무관한 일이었다.
주권은 투표권이라는데 그 주권에 난 관심이 없다.
선거에 참여한 횟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니
국민의 의무도 권리도 방기한 채
무임 승차하며 산다.
광화문 거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권리와 정의의 상징이다.
6·29 사태 이후 지방으로 자리를 옮긴
나의 삶은 아이 셋에 직장 생활로 숨 가쁜 나날이었다.
2017년 맞이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며 권력이란 것이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카오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맹목적으로 뉴스를 소문을 책의 기록을 추종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거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아닐 수 있다는 성찰은 더 이상 방관자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내면의 소리로 나를 뒤흔들었다.
탄핵으로 탄생한 정부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광화문으로 몰려들었다.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라가 흘러가고 있다는 최초의 각성이 일어났다.
다시 역사를 공부하며 나도 모르게
광화문으로 발길이 움직였다.
당시 광화문 일대는 시위하는 군중들로 매일 북적였다.
토요일마다 서울로 상경하여
위기에 쳐한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렸다.
시위대가 아무리 목이 터져라 외쳐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
언론도 숨을 죽였고, 젊은이들은 외면했다.
세대 간의 간극이 첨예하게 드러났다.
계층 간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으며,
코로나까지 나라를 덮친 상황이었다.
당시 거리는 텅 빈 채 찬 바람만 혼자
미친년처럼 온 서울 거리를 싸돌아 다녔다.
그 외침은 헛되지 않았다.
국민의 간절한 외침은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국민의 염원은
또다시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다.
계엄과 탄핵이 반복되었고
역사의 비극은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누군가가 말하길 잔인한 4월이라 했다.
생살을 찢고 어두운 땅을 밀어내고
온 천지가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 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외침과 몸부림 끝에
찬란한 봄의 환희가 펼쳐지는 세상은 경이롭다.
왕과 사는 남자! 권력 싸움에서 처절하게
능욕당한 왕 곁을 지킨 남자!
그가 수백 년 역사의 긴 터널을 지나
오늘 우리 앞에 빛처럼 나타난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1945년부터 지금까지 80여년 간 국민적 힘으로
세계사에 신화를 썼다.
국가 부채의 급격한 상승과 사법 파괴 등
엄청난 파고에 직면한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국민적 사명은 무엇일까?
4월이어서 아프기도 하지만
국가의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잠 못 들 게 하는
깨어있는 자의 이유 있는 고통이다.
나의 나라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라는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그가 나의 왕이다.
죽어도 버릴 수 없는 조국, 대한민국이 나의 왕이다.
나는 왕과 함께 사는 여자다.
왕의 숨은 여자로 그를 위한 기도를 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산다.
희망도 있다.
K-Culture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저력으로,
이제는 더 이상 왕의 숨은 여자로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리하여 다시 하찮은
나의 삶을 오롯이 챙기며 살고 싶다.
4월의 산고 끝에 눈부신 꽃이 피어나듯,
나의 왕 대한민국도 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찬란하게 피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제 곧 벚꽃의 함성에 놀란
오월의 장미가 활짝 피어나,
온 세상에 축복의 메시지를 쓰게 될 것이다.
일어서라!
융성하고 번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