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건반 위로 내 손을 올린다. 낡은 검은색 전자 피아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쳐야 할 곡은 다섯 곡. 짧다면 짧은 30분의 시간이다.
한 곡이 지나고 또 한 곡을 쳤다.
평일 미사 봉헌곡이다. 보통 일요일에는 그 시간에 헌금하러 사람들이 일어난다. 평일에는 따로 헌금이 없기에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노래만 부른다.
사제 한 명에 초점을 맞춘다. 사제가 하는 동작을 보며 시간을 맞춘다. 중간에 손을 닦는다. 조용히 사람들이 사제를 쳐다본다. 나도 조율하며 건반을 누른다.
사제 혼자라 주위가 고요하다. 끝내는 노래도 그래서 음을 점점 줄여야 한다. 마지막 음을 눌렀을 때, 양손 중 한 손을 건반에서 뗀다. 왼손을 떼거나 오른손을 사용한다. 한 손은 건반 위에, 나머지 손은 음소거 음량 버튼을 0으로 내린다.
다음 곡까지 10분 이상 남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노래 부르는 사람 옆에 섰다. 두 세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 생각에 잠겼다. 집중하지 못하
고 다른 상황을 떠 올리다 보면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이제, 앉으라는 해설자의 말을 들으며 의자에 앉았다.
눈을 떴다.
순간 피아노가 보인다. 해설자가 노래 번호를 부른다. 두 세발 걸음 거리지만 토끼눈이 되어 자리에 앉는다.
새로 칠 곡을 안 펼쳐놨다. 아까 곡 그대로였다. 손이 떨리며 페이지를 찾았다. 접어 둔 곳이지만 손이 미끄러졌다. 숨도 못 쉬고 페이지를 펼쳤다. 전주를 위해 건반을 눌렀다. 음량버튼을 봤다. 음소거 상태였다. 다시 소리를 올렸다. 시작됐다.
이미 5초는 지나버렸다.
웃음도 안 나왔다.
그래서 어쩐다고 뻔뻔해지기로 했다.
뭐 그럴 수 있지.
정신을 차린 덕에 끝까지 실수가 없었다.
잘했다.
다음엔 꼭 책을 펴 두고 앉아야겠다. 음소거 확인하고 시작해야겠다 다짐한다.
이 정도로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
내 꿈은 반주자 할머니니까.
포인트를 한 개씩 쌓아 올리는 이 느낌을 사랑한다.
나는 다음 주에도 이 자리를 지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