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이 내게 알려준 한 가지

by 시니브로

쇼팽 녹턴 9-2번 최애곡이다.

조성진이 유퀴즈 나와서 쳤다.


2023년 병원 간병이 한참일 때 울면서 들었다.

혼자 밥을 먹을 땐 무한도전을 계속 보며 낄낄 웃었다.

마음이 답답해 나간 아들을 따라나섰을 땐 가곡 '마중'을 들었다.


자폐 3급 아들이 여자친구와 헤어져 우울증이 생겼고 약 부작용처럼 3층에서 뛰어내렸다.

우울증 약을 제대로 된 걸 찾지 못해 이리저리 약을 바꾸던 시기였다.

아이는 침을 줄줄 흘렀고 살이 말도 못 하게 빠졌다.


밀착해서 3월부터 같이 다니던 중 잠깐 외출한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

오전, 대학교에 픽업을 마치고 집에 내려준 후 나온 낮이었다.


꽃이 아름답던 5월이었다.


아들이 전화를 하였다. 나온 지 몇 분 됐다고 병원 간 나에게 또 전화를 하나 짜증이 났다.

받았더니 40대 남자였다.

아이의 이름을 대며 엄마냐고 묻는다.

또 휴대폰을 잃어버린 걸까? 잠시 생각하는 0.1초 사이에 나에게 말을 건넨다.


"어머니 놀라지 마세요."


119 구급대원이었다.

아이가 직접 신고를 했다고 했다.

응급실로 조심해서 오라고 하였다.

응급실에 들어서 맨발의 아들 발을 보자마자 나는 뒤로 넘어갔다.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 그대로였다.


조치를 마친 후 응급실에서 1박을 하며 다른 병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생명의 지장은 없었다.

발꿈치만 바스러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 생활.

살아줘서 고마웠다.

어느 날은 미웠다.

계속 난동을 피웠다.

깁스한 채 걸어서 나가겠다고.

여자친구에게 가겠다고 돈만 달라고 했다.

폭력성이 자주 올라왔다.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정신과와 정형외과가 함께 있는 병원이었다.

보호자 24시간 상주 조건으로 우릴 받아줬다.


중학교 1학년 아이 혼자 집에 있었다.

남편도 딸도 아이를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


아들이 미웠다.

가엾다가 또 미웠다.

죄책감이 들어 괴로웠다.


이런 모순된 마음 중 쇼팽이 생각났다.

조성진 쇼팽 녹턴을 이어폰으로 듣고 또 들었다.

성인 남자 병실애 나 홀로 여자 보호자인 상황에서 나는 눈물이 자꾸 났다.

창문 없는 병실 생활은 힘들었다.


시간이 차고 넘치는 병원생활이었다.

아이의 짜증을 받아내고

담배 피우면 따라 나가고

먹을 거 사 오라면 사다 주었다.


집에서 녹턴 악보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창문은 없지만 바라보는 벽이라도 있어 좋았다.

한 마디씩 보호자 침상에 앉아 침대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상상 속으로 녹턴을 연습했다.

하나하나 계이름도 읽어봤다.


병원만 나가면 피아노를 다시 쳐 봐야지

마음먹었다.

가슴이 답답해 나가면 달리기도 하고 싶었다.

시원하게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병원 생활은 6월 30일로 끝났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지옥이었다.


그 시간들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 나를 기억하며

첫 곡으로 그렇게 11월에 쇼팽 녹턴을 배웠다.

수준이고 뭐고 일단 녹턴을 배운다고 했다.

다행히 손가락 연습으로도 통했다.


이제 녹턴을 친지 2년이 됐다.

2년 사이 다섯 곡이나 배웠다.

가장 먼저 친 게 쇼팽 녹턴이니 가장 잘 쳐야 할 텐데.


23년이 내 인생에 바닥이었을지.

또 다른 바닥이 더 있을지 나는 모른다.

바닥에서 나는 나를 일으키는 방법으로 쇼팽을 찾았다.

다음 바닥에도 나는 뭔가를 찾을 거라는 걸 안다.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어쩌면 잠시, 유통기한이 있을 수도 있다.

죽음처럼 말이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걸 해 보고 멈추지 말 것.


36살에 영국 해외 공연으로 몸이 망가져 삶을 마감한 쇼팽.

언제고 끝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쇼팽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