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앞 피아노 학원이라 칸마다 문이 있고 선풍기와 피아노가 있다.
방이 9개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4개, 오른쪽으로 5개의 방이 있다.
문을 닫지 않으면 앞 피아노 소리가 크게 들려 내 소리가 묻힌다.
암묵적인 룰처럼 문을 닫고 서로 피아노를 친다.
오른쪽에 사람이 있으면 왼쪽으로 들어간다.
오른쪽 왼쪽에 모두 한 명씩 있으면 건너뛰어 자리를 잡는다.
나는 주로 창문 쪽인 왼쪽에 자리를 잡는다.
오른쪽은 상가 쪽이라 소음이 될까 신경이 쓰인다.
선생님이 처음 배정해 준 방은 왼쪽 첫 피아노였다.
파란 피아노에 자개 장식이 사선으로 무늬 된 피아노다.
손을 풀기 위한 용도로 아는 곡이었던 모차르트로 시작했다.
고요하게 치고 싶은데 1번 피아노는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걸 줄여보려고 살금살금 손을 내려놨는데 이번엔 웅얼웅얼 소리가 가득이다.
2년이 지나고 보니 1번 방 소리가 가장 선명했다.
초보에게는 날카로운 소리가 더 나았던 거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피아노는 왼쪽 4번 방이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다.
검은색 영창 피아노.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 가장 많았던 피아노다.
소리도 날카롭지 않고 적당해서 좋다.
그러나 진도를 다 나간 다음 치게 되는 페달이 문제다.
고장이 난 건지 페달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소리가 안 들린다.
눌렀다 뗐다하면 피아노 전체가 울림을 주는데 이게 없다.
고장이라기보다 약해진 거다.
쇼팽 녹턴을 칠 때 가장 많이 연습한 방은 왼쪽 3번 방이다.
갈색 피아노는 음각 모양이 되어 있어 에지가 있다.
고전적이라 치고 있으면 느낌이 좋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는 부분을 너무 깎은 걸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샥 넘기고 바로 쳐야 하는데 안된다.
바닥에 종이가 걸려 있다.
책을 들어 올려서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부분 연습할 때만 들어가야 한다.
소리가 뭉툭해 느린 곡을 연주할 때 울림이 있어 좋다.
누군가 왼쪽 방에 있으면 가게 되는 오른쪽 방 3번 검정 피아노도 좋다.
성인 수강생이 그 방에 항상 있다.
역시 검은색 영창 피아노다.
안정적인 피아노 소리라 밖에서 들으면 잘 치게 들리더라.
창문이 없어서인지 몇 번 안 들어갔다.
오른쪽 4번 방도 인기가 많다.
3번 4번 방 검정 피아노에 사람들이 자주 앉는다.
가장 인기 없는 건 오른쪽 1번, 5번 피아노다.
1번은 소리가 처음부터 울리고 있다.
울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하다.
피아노를 친다는 건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자기 말을 또박또박 읽어야 한다.
얘는 읽기 시작부터 울기 직전이다.
우엉 우엉 긍데요...
피아노 소리를 위해 혼자 연습하던 어느 토요일.
모든 피아노에 앉아 같은 곡을 치며 녹음을 해 봤다.
느낌이 달랐다.
같은 악보 다른 소리가 담겼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이상한 피아노를 만나면 ' 나 이 정도는 아닌데......'
하며 속상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좋은 악기는 역시 존재한다.
학원 거실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는 소리가 확실히 좋았다.
선생님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하셨다.
연주회 피아노는 그럼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상상해 봤다.
그럼에도 9대의 피아노는 제각각 소리를 내며 음을 연주한다.
우리도 이 피아노처럼 내게 맞는 곡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모든 피아노에 맞는 곡이 따로 있는데 우리가 그걸 매칭하는 눈이 없을 수 있다.
내가 치는 게 오로지 베토벤 곡이라면 이번에 내게 맞는 피아노는 2번.
쇼팽은 3번.
모차르트는 4번.
적재적소에 넣다 뺐다 하는 실력이면 좋겠지만 말이다.
자꾸 치다 보면 내게 맞는 피아노를 만난다.
자꾸 쓰다 보면 내게 맞는 글 스타일을 만난다.
자꾸 읽다 보면 내게 맞는 책을 찾는다.
자꾸 해 보자.
미끄러져도 다시 해 보자.
그러려고 피아노 치는 거다.
그러려고 글을 쓰는 거다.
같은 거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