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역사적 트라우마로 보는 FED의 속마음은?
"약 9조 원 달러의 채권(미국채의 4분의 1) FED가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을 빨리 팔고 금리도 인상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금리인상과 양적 긴축을 조속히 동시에 이루어질 것을 예상되어 다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브레이너드의 이러한 연설로 최근 10년 장기채권의 금리는 상승했고 장단기 금리 차이는 다시 벌어져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으로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분위기는 사그라졌다
이처럼 심리가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입력(Input)되는 값에 결과물(Output)이 도출되는 매크로(Macro)적인 것이 아닌 심리에 의해 예외성이 도출되어 변화무쌍하게 살아 움직이기에 변수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이다
첫 번째, 1929년 10월 대공황 초기로 주가가 대폭락 했다 하지만 1년 후 경기는 다시 활력을 찾았고 증시는 반등하기 시작할 무렵 연준은 경기가 회복을 이유로 성급한 금리인상(긴축)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1931년 3월 은행들이 줄도산하기 시작하였다
2007~08년의 "리먼브라더스"사태 때의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대공황 때와 닮은 부분이 많았던 리먼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디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대규모 양적완화(유동성 공급)를 세 차례(3조 달러) 실시하면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결국 독일,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와 프랑스 부총재는 비밀리에 당시 미국 연준의 실세인 "벤자민 스트롱"(뉴욕 연방은행 총재)을 찾아가 유럽의 회복을 위하여 "금리 인하"를 요청하였다 당시 유럽을 회복시켜야겠다고 생각한 벤자민 스트롱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하였다
당시 유럽의 상황은 대립과 혼돈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을뿐더러 구소련의 공산주의 이념의 영향을 받은 서유럽의 이데올로기의 갈등 또한 극 심화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의 1,2차 세계전쟁 등의 혼란의 시기에 미국의 경제는 호황과 버블로 이어졌다
유럽의 흑기사 미국은 이번에도 에너지 산업 육성을 통해 유럽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주고 산업 육성에 따른 경제 호황이라는 전리품을 취할 것이라 생각할듯싶다
대공황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이상 금리 인하 등으로 유럽을 기다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 미 연준 이사들의 기본적 생각일 듯싶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 우주항공 산업과 군사무기 산업에 치열한 기술력 싸움을 하던 시기로 재정적 지출(빚내어 산업 육성)이 굉장히 늘어나는 시기였다 소련과의 경쟁으로 재정지출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일자리가 늘어나고 기업의 소득이 늘어 결국 국가의 세금 수입이 늘어났다 오히려 빚을 냈음에도 부채가 줄어들었다 "위대한 사회"가 멀지 않은 듯했다 이에 미 연준은 경기를 꺽지 않기 위해 금리를 낮은 상태로 유지했다
이때 미 연준은 깨달았다 국가의 재정적 지출은 오히려 국가의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힘이 크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저금리의 유지는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부가 특성산업 육성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재정적 지출) 경기를 끌어올리는 힘이 굉장히 강하다 반면 중앙은행의 돈을 끌어들이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힘이 강하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은 억제되는 반면 정부의 확장적 재정의 지출은 해당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부흥시키는 힘이 되기에 이 둘은 "짝꿍"처럼 같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