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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넴의 글 Sep 13. 2021

알지 못했던 '내면'을 '발견'하기 [영화]

영화마다 철학담아

*본 게시글의 원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artinsigh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1468)


“심혼은 육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간에게 의식될 때에 한해서만 존재하는 세계의 반쪽이다. 따라서 심혼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 의사는 전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가끔씩 꿈과 기억,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의 차원으로 나타나는 ‘무의식’(無意識, unconsciousness)에 대해 항상 궁금해한다. 그렇다면 무의식 속에는 우리의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무의식을 ‘의식’할 수 있을까?


 이번 글은 ‘무의식’을 중심으로 인간 내면의 구조와 층위를 정립하고 이를 ‘통합’시키고자 했던 융의 ‘자기실현’을 통해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1999)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인간 내면의 ‘명암’(明暗)과 함께 그동안 숨겨져 왔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무의식’에 숨겨진 ‘가능성’에 대한 철학


 심리학의 3대 거장 중 한 명이자 ‘분석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년 스위스 캐스빌의 한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까다로운 성격의 아버지와 정신장애를 가졌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다소 내향적인 성격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신경 발작과 더불어 지금의 조현병과 비슷한 증세를 보였던 어머니의 모습을 접했던 융은 자연스레 죽음, 종교, 꿈 등을 비롯한 인간의 내면(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의사였던 할아버지를 따라 바젤 대학교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게 된다.


 졸업 이후, 당시 유명했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장애 연구자였던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의 병원에서 정신병 치료법에 대해 연구하던 중 정신분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낀 융은 1904년 ‘단어 연상법’(單語聯想法, word association method)을 직접 고안하게 된다. 이때, 그는 ‘콤플렉스’(complex)라는 자신만의 개념을 통해 의식 또는 의지의 작용에 초점을 맞추었던 기존 방법에서 벗어나 무의식을 강조하는 한편 이전부터 관심을 보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억압’(Verdrangung)을 입증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융은 프로이트와 학문적 교류를 시작하게 되고 함께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게 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드 아들러와 함께 3대 심리학 거장으로 꼽혔던 카를 구스타프 융.


 하지만, 자신이 직접 겪었던 꿈과 환상을 분석함으로써 인간 무의식이 보이는 다양한 층위 즉, 무의식의 ‘다면성’을 통찰했던 융은 억압의 원인 및 꿈의 해석에 있어 ‘리비도’(livido) 중심의 ‘성욕’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프로이트의 이론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1914년 학회에서 탈퇴하게 된다. 이후 전 세계 신화 및 종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 존재에 있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이 곧 사회적·역사적 의식과도 연관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 그는 무한성과 지속성을 바탕으로 하는 ‘가능성’으로서의 기제로서 무의식을 바라보고자 하는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 Analytical Psycholog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수립하게 된다.


 융의 분석심리학은 인간 내면을 ‘집단 무의식’, ‘개인 무의식’, ‘의식’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먼저, ‘집단 무의식’은 인류에게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내면 구조로 전 세계에 걸쳐 ‘원형’이라는 형태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다음으로, ‘개인 무의식’은 기억을 비롯한 개인의 ‘후천적’ 경험을 통해 축적된 내면 구조로 각자의 정신 체계에 맞춰 ‘특수적’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의식’은 집단 무의식의 핵심 요소인 ‘자기’(Self)에서 떨어져 나온 ‘자아’(Ich, Ego)를 중심으로 하는 내면 구조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지각’을 통해 나타난다.


 융에 따르면, 인간은 개인 무의식에서 발생하는 ‘콤플렉스’를 통해 그동안 ‘원형’의 형태로 억압된 채 존재했던 집단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인식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자기 자신으로서의 ‘동일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융은 인간 내면 구조의 ‘전일성’을 발전시키는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을 ‘개성화’ 또는 ‘자기실현’(Self-Realization)으로 명명하는 한편 이를 4단계로 세분화함으로써 인간 존재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했다.  

분석 심리학은 기존 심리학 분야보다 한층 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기실현의 첫 번째 단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역할과 기능의 행동 규범으로 작용하는 ‘페르소나’(Persona)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개인은 자아와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페르소나와 의무적인 차원에서 ‘동일시’되는 과정을 피하고 이를 더욱 ‘분화’시킴으로써 다양한 관계성을 만드는 노력이 요구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자 ‘열등감’으로 작용하는 ‘그림자’(Shadow)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개인은 그림자의 ‘파괴적’인 면모를 ‘창조적’ 성격으로 전환함으로써 내면 구조를 ‘통일’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 번째 단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남성의 무의식 속 여성성인 ‘아니마’(Anima)와 여성의 무의식 속 남성성인 ‘아니무스’(Animus)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개인은 자아와 내면을 이어주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적응’하고 이를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 간 통합을 주도하고 ‘전일성’의 중심이 되는 ‘자기’(Self)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개인은 평생 자신의 원형에 맞춰 내면 구조를 통합시키고 자기실현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그의 이론은 자연 속 에너지 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고를 방법론적으로 차용해 인간 내면의 ‘창조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내면 구조 자체가 갖는 ‘대상성’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내면 구조와 외부 세계 간 ‘관계성’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한편 상징의 형태로 인간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종교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신을 비롯한 제도 종교의 표상 전반을 거부한 채 인간 내면을 지나치게 신뢰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융의 이론은 인간의 꿈에 나타난 심리적 성격의 상징들을 과학적·종교적으로 탐구함으로써 그동안 경시되었던 무의식의 구조 및 층위 그리고 역할에 주목하는 한편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일반적인 인간 정신의 ‘전일성’ 다시 말해, 의식과 무의식 간 ‘상호 연관성’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자기실현’을 강조함으로써 단순히 ‘개별적’ 차원에 머물렀던 심리학을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간 그리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아’의 ‘가면’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인형극’ 같은 영화 



 융의 자기실현과 함께 살펴볼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비장한 음악 속에서 누군가를 닮은 듯한 한 인형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진짜 말코비치가 누구인지'보다 '누가 말코비치처럼 되고 싶어 하는지' 그 욕망을 낱낱이 파헤친다.


 주인공 크레이그는 인형 조종사로서 유명해지길 원하지만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간다. 결국, 애완동물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 라티의 권유에 못 이겨 그는 ‘손놀림이 빠른’ 사람을 모집한다는 레스터 사를 찾아가지만 7과 2분의 1층이라는 위치부터 사장 레스터 박사와 그의 비서 플로리스가 보여주는 이상한 모습에 당황한다. 하지만, 이내 인형극으로 단련된 손재주를 보여주며 합격한 그의 앞에 맥신이 나타나게 되고 이내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크레이그는 우연히 비밀 통로를 발견하게 되고 그 안에서 15분간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맥신이 통로를 이용하는 티켓을 판매하자는 제안을 하자 머뭇거리던 크레이그는 이내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크레이그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 들어간 통로에서 처음으로 남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된 라티는 크레이그를 찾아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던 중 함께 있는 맥신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한편, 말코비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듯한 맥신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는 약속을 제안한다. 때마침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던 라티가 말코비치를 약속에 나가게끔 부추기면서 맥신과 말코비치, 그리고 말코비치의 몸을 빌린 라티 간의 관계가 시작된다. 이후 맥신에게 관심이 있었던 크레이그와 라티는 그녀에게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며 경쟁하게 되지만 오직 말코비치의 몸을 빌린 라티를 좋아한다는 맥신의 말에 두 사람의 대립은 더욱 심해진다. 결국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 크레이그는 라티를 협박해 맥신과 약속을 잡은 다음 라티를 동물 우리에 가둔 채 말코비치의 몸을 빌려 맥신을 만나고자 한다.  


맥신이라는 '이상'에 닿길 간절히 원했던 크레이그와 라티는 결국 자신의 현실을 '망각'한 채 조금씩 망가져간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음을 느낀 말코비치는 자신을 줄곧 라티라고 부르던 맥신을 의심하며 미행한다. 결국 통로를 발견하게 된 그는 직접 들어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자아들이 뒤섞이는 모습을 보게 되고 괴로워한다.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말코비치와 라티의 모습에 크레이그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이내 라티를 다시 동물 우리에 가두고 맥신을 만나러 간다. 


 맥신이 말코비치를 조종할 수 있는 크레이그에게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티는 말코비치가 되고 싶은 마음에 레스터 박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박사로부터 그녀는 말코비치의 44번째 생일에 맞춰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려는 계획과 함께 생일 이후에는 말코비치가 아닌 말코비치의 아이 안에 갇히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8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말코비치의 몸을 빌린 크레이그는 유명 배우였던 말코비치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인형 조종사로서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그를 이용하고자 했던 맥신은 어느덧 출산을 앞두게 되었다. 그러나, 말코비치의 생일이 되기 전에 크레이그를 쫓아내려는 레스터 박사에 의해 맥신이 납치되자 크레이그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말코비치의 몸을 포기하고자 한다. 


 한편, 납치된 맥신이 크레이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생각한 라티는 통로로 들어간 그녀를 찾아 죽이고자 하지만 이내 그 아이가 라티 자신의 아이였음을 깨닫게 되면서 두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약속한다. 그로부터 7년 후, 말코비치의 머릿속에서 지내던 레스터 박사와 그의 친구들은 라티와 맥신의 딸인 에밀리의 몸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에밀리에게서 라티와 맥신 두 사람에 대한 크레이그의 그릇된 시선이 느껴진다.

  

기괴하고도 참신한 방식으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그 비좁은 틈 사이를 영화는 헤집고 들어간다.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어느 날 발견된 존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신기한 통로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무의식’, 그중에서도 숨겨진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먼저 통로를 발견한 크레이그는 마치 인형극을 통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벗어나 욕망을 표출했던 것처럼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이용해 인형 조종사라는 ‘직업’으로서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한편 맥신에게도 사랑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인형 조종사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말코비치를 조종하는 한편 맥신을 쟁취하기 위해 라티를 가두는 등 욕망을 위해 그저 타인을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성공적으로 말코비치를 조종함으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맥신과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자기실현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국 그는 ‘명예’라는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말코비치의 44번째 생일 이후 그의 머릿속에 다시 들어가게 되면서 라티와 맥신의 딸 에밀리 안에 영원히 갇히고 만다.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영화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반면, 우연히 통로 속에서 처음으로 남자가 된 기분을 느낀 라티는 통로를 이용해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성 정체성’으로서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한편 크레이그와 동시에 맥신에게 사랑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녀 역시 크레이그로부터 맥신의 사랑을 되돌려 받고자 완전한 말코비치가 되고 싶다고 레스터 박사를 찾아가는 한편 심지어는 크레이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생각한 맥신을 죽이려고 하는 등 욕망을 위해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이용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말코비치의 머릿속에도 일종의 여성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두었던 그녀는 말코비치도, 말코비치의 몸을 빌린 자신의 모습도 아닌 자기 자신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 맥신에게 다가감으로써 결국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됨과 동시에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때, 영화는 크레이그와 라티뿐만 아니라 끝까지 어떠한 죄책감이나 반성도 없이 자신의 무의식 속 욕망에 따라 통로를 그저 ‘수단’으로만 삼고자 했던 레스터 박사와 그의 무리를 보여주는 한편 비록 초반에는 통로를 통해 자신의 욕망에 따라 단순하게 움직였지만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아껴주는 사람을 따라 자기실현에 다가서게 된 맥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영화는 ‘날 것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기실현의 어려움과 함께 여전히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보편적’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목적어’가 아닌 ‘주어’로서의 자신을 ‘찾아내기’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15분간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라는 특이한 설정을 통해 인생이라는 인형극에서 진정한 자신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영화이다.  

인형극을 하며 누군가를 좇기만 했던 크레이그는 끝내 누군가에 의해,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버린다.   


 영화는 단순한 호기심에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가고 싶었던 사람들부터 자신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용당한 본인에 이르기까지 결국 원초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우리들의 무의식을 발견하는 과정이 자기실현으로 향하는 첫 번째 계단이라는 사실을 재치 있게 한편으로는 날카롭게 풀어내고 있다.


                                                             
                                                               “명심해요.
                                                        I가 U보다 먼저예요.”

                                                   - 스파이크 존즈 作, <존 말코비치 되기> 中 ‘플로리스’의 대사


 영화 초반부, 크레이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 플로리스의 한 마디. 질문은 던져졌고 우리는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지금 당신 그리고 우리의 모습은 U인가? 아니면 I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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