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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넴의 글 Sep 14. 2021

자신을 둘러싼 '혐오'를 '벗겨내기' [영화]

영화마다철학담아

*본 게시글의 원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artinsigh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1604)


                                           “증오에는 증오하는 자에게 부족한 것, 
                     그러니까 정확한 관찰과 엄밀한 구별과 자기 회의로써 대응해야 한다.”

                                        - 카롤린 엠케 (Carolin Emcke), <혐오 사회> (Gegen Den Hass) 中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혐오’(嫌惡, detestation)는 단순히 어떤 대상에 대한 ‘거부’ 혹은 ‘부정’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믿음’ 자체를 저버리고 임의적으로 ‘바꾸거나 없애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병리적’(病理的, pathological)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은 ‘혐오’를 중심으로 ‘사회적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자 하는 엠케의 관점을 통해 영화 <히든 피겨스>(2016) 속 등장인물이 받았던 ‘차별’과 ‘배제’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그 속에 하나의 기제이자 결과로서 작동하는 ‘혐오’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혐오’의 ‘지금’ 그리고 ‘내일’에 대한 철학 



 ‘사회적 폭력’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며 현재 독일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지식인 중 한 명인 카롤린 엠케(Carolin Emcke). 그녀는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저널리스트로서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다녔던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 혐오와 차별 등 사회적 폭력에 대해 냉철한 시각에서 분석하는 한편 사회적 약자들에게 따듯한 지지를 보내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그녀의 대표작 <혐오 사회>(Gegen Den Hass)은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폭력의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혐오의 문제를 구조적 차원에서 진단하는 한편 오늘날 혐오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지식인이기 이전에 차별과 혐오의 '희생자'로서 사회적 폭력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 카롤린 엠케.


 먼저 엠케는 ‘사회적 불가시성’을 통해 혐오의 ‘발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사회적 불가시성’은 타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태도 즉, 자신과 다른 혹은 자신이 생각하는 ‘표준’에서 벗어난 존재를 실존적인 차원에서 멸시함과 동시에 사회적인 차원에서 유리시키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녀에 따르면, ‘사랑’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압한 채 어떤 대상에게 ‘호의적’인 선입견을 투사하게 만드는 태도인 한편 ‘희망’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확신한 채 어떤 대상을 ‘회피’하게 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맞춰 ‘재해석’하게 만드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엠케는 ‘걱정’과 함께 혐오의 ‘진행’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그녀에 따르면, ‘걱정’은 ‘사랑’이나 ‘희망’과 달리 사람들을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배타성’을 느끼게 한다. 즉, 걱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게 함으로써 자신의 표현(분노)이 정당하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한편 자신이 생각하는 표준에서 벗어난 존재를 협소화시킨다, 나아가, 그 과정을 통해 단순히 개인적인 욕구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으로 격상됨으로써 네 번째 불가시성의 요인인 ‘혐오’를 공급한다.


 이때, 그녀는 지난 2016년 독일 작센주(州) 클라우스니츠 지역에서 반(反)난민 시위대가 난민수용소로 입소하는 버스를 막아섰던 일명 ‘클라우스니츠 사건’를 인용함으로써 어떤 대상으로부터 단순히 ‘도피’하려는 두려움이나 공포심과 달리 자신과 다른 집단에 대한 ‘배타성’을 바탕으로 그 대상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방관과 도피, 책임 전가 등을 통해 ‘지속’되고 ‘확장’된다는 점에서 결국 혐오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차별의 ‘결과’임을 주장한다. 


 또한, 그녀는 오늘날의 혐오 문제가 시각적, 종교적, 성적, 문화적 부분에서의 ‘우연적’ 혹은 ‘태생적’ 차이에서 비롯된 사회적, 법률적 불평등처럼 현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포용’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만들고 내부의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우리 곳곳에서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증오'에 대해 조금씩, 그러나 깊이 읊조린다.


 이에 엠케는 인간 존재를 부정하는 ‘반자유주의적’ 차원의 사회적 폭력 사례를 살펴보는 한편 혐오의 메커니즘의 원리를 ‘동질성’, ‘본연성’(본원성), ‘순수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유럽 내 이방인 집단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사례는 우리에게 민족과 국가라는 사회의 ‘동질성’을 보여준다. 


 그녀에 따르면, ‘사회’는 본디 보편적 성격의 ‘인민’(Volk)과 같이 개인의 민주적 의지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공동체를 의미했으나 점차 ‘단일한’ 전체로서의 의지를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사고에 의해 협소화되고 공동체를 하나의 ‘신체성’으로 여기는 시각과 결부되면서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일종의 ‘병리적’ 현상으로 여기는 움직임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엠케는 동질성에 기반해 이방인들에게 민족과 국가라는 ‘완전성’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을 멈추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 평등을 보장하는 ‘숙의민주주의’ 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트랜스인에 대한 각종 범죄 사례와 트랜스인 집단에 대한 사회적, 법적 지원책이 미흡한 현대 사회의 실태는 우리에게 성별의 ‘본연성’(본원성)을 보여준다. 그녀에 따르면. ‘트랜스’는 특정 성별로의 ‘전환’뿐만 아니라 특정 성별의 ‘중간’이나 ‘외부’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나아가, 성별 구분에 대한 사회적 규정이 ‘부적합’함을 의미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둘러싼 외부와 내부 간 ‘동일시’를 위한 움직임이자 사회적 차원의 ‘인정’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엠케는 본연성에 기반해 트랜스인들에게 성별에 대한 ‘정상성’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을 멈추고 그들의 사회적 실존을 인정함과 동시에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주는 ‘상호의존적’ 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극단적 원론 주의 집단에 의한 폭력과 테러리즘의 사례는 우리에게 종교와 인종의 ‘순수성’을 보여준다. 그녀에 따르면, ‘극단적 원론 주의’는 한편으로는 외부에 대한 ‘개방성’을 보여주며 ‘평등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부의 ‘자의적’ 위계에 따른 ‘차별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자신을 포용적 배제로 정의하는 움직임이자 광신주의에 휩싸인 채 세속적 타인과의 공존을 비롯해 그에 대한 일말의 책임 및 윤리의식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한 폭력 차원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엠케는 순수성에 기반해 사회에 종교와 인종에 대한 ‘폐쇄성’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을 멈추고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엠케는 성, 종교, 인종, 문화 등의 이데올로기들을 사회적 폭력 속 혐오와 함께 분석하는 한편 사회적 폭력이 발생했던 순간순간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가까운 위치에서 포착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녀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서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과 구조 그리고 우리에게 ‘내면화’되어가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자칫 감정적이고 추상적 논의에 머물 수도 있었던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합리적이고도 논리적으로 풀어간다. 

 

 또한, 그녀 자신 또한 여성이자 성 소수자였던 만큼 그저 ‘다르다는’ 이유로, 그저 ‘드물다는’ 이유로 실존적-사회적으로 ‘부정’ 당한 존재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보냄과 동시에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지만 결코 고정되지는 않은’ 존재들)를 위한 ‘공감’의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한편 비판적 차원에서의 ‘자기반성’과 ‘자기 회의’를 통해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나가는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늘’에 가려졌던 ‘숫자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영화



 엠케의 혐오에 대한 분석과 함께 살펴볼 영화 <히든 피겨스>는 단지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이유 모를’ 차별과 배제에 두려워하던 세 흑인 여성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제목 속 '피겨스'(figures)는 어쩌면 그녀들뿐만 아니라 그녀들과 함께했던 불특정다수를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는 1961년, 버지니아주(州) 미 항공우주국(이하 NASA)에서 임시직 전산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주인공 도로시, 메리, 캐서린은 여전히 일상 속에서 숨 쉬듯 이뤄지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냉전 이후 우주산업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가장 치열해지면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이어 인류 최초로 생명체를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한 소련에 맞서기 위해 NASA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장치 IBM을 개발하는 한편 우주 업무 본부를 비롯한 개발 부서에 새로운 인력을 들여와 가속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결국 우주 업무 본부장 해리슨의 요청에 따라 전산원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캐서린이 유색인종 최초로 우주 업무 본부에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복장에 대한 엄격한 지적과 함께 커피 머신조차 나누려고 하지 않는 백인 남성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 심지어 유색인종을 위한 화장실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수석 연구진 스태포드의 불신을 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묵묵히 자신을 믿어주었던 해리슨의 기대에 부응하듯 중요한 계산에 성공하게 되고 곧이어 무인 탐사선 궤적 작업에도 투입된다.


 한편, 흑인 전산원 집단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보였음에도 도로시는 단순히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정규직 관리자로 승진하는 데 실패하게 되지만 오히려 새롭게 도입된 IBM 컴퓨터를 몰래 독학해 승진 담당 관리자 미첼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한다. 최초의 흑인 여성 NASA 엔지니어를 꿈꾸었던 메리 역시 백인만이 다닐 수 있는 학교에서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엔지니어 자격에 갑작스레 추가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재판에 나서서 자신이 받았던 차별을 용기 있게 전하고자 한다.


 그때, 러시아가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를 배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NASA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게 되고 마침 화장실을 가기 위해 종종 자리를 비워야 했던 캐서린에게 해리슨은 날카로운 면모를 보이게 된다. 이에 캐서린은 그동안 자신이 받았던 많은 차별과 함께 자신의 고충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해리슨은 직접 유색인종 화장실 표지판을 바꿔나가는 등 차별을 없애고자 한다. 결국 캐서린의 뛰어난 계산 실력으로 NASA 역시 유인 우주 비행사를 배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어지는 지구 궤도 비행을 앞두고 이뤄진 시도들에서 연거푸 실패하면서 우주 임무 본부에 대한 불신이 쏟아진다. 그때, 해리슨의 믿음에 다시 한번 부응하듯 캐서린은 정확한 계산 과정을 보여주며 상부의 신임을 회복하게 된다.  


남들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그들의 모습.


 한편, 보다 가속화되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IBM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면서 NASA 내부에서는 독학으로 그동안 아무도 사용할 줄 몰랐던 IBM을 구동시키는 데 성공한 도로시에게 임시 관리자직을 맡기고자 한다. 그때, IBM이 기존의 전산원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도로시는 다른 전산원들과 함께 IBM을 통해 정확한 계산을 처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되었고 결국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규직 관리자직과 함께 그동안 함부로 대했었던 미첼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게 된다. 


 메리 역시 백인으로 구성된 재판부 앞에서 백인 남성만이 등록 가능한 고등 교육기관을 이수해야 엔지니어에 지원할 수 있게 한 NASA의 조치가 곧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임을 진술한다. 끝내 메리는 인종과 성별의 경계를 넘어서 최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통해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며 자신을 둘러싼 백인 남성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뿌리치며 엔지니어링 공부를 무사히 마치게 된다.  


 하지만, IBM의 본격적인 도입으로 인해 더 이상 우주 업무 본부에서 계산 작업을 할 필요성이 사라지자 해리슨은 어쩔 수 없이 캐서린을 다시 전산원으로 배치하게 되고 이후 NASA는 존 글렌을 앞세워 지구 궤도 비행에 나설 준비를 하게 된다. 그때, IBM을 통해 처리한 계산 값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고 이륙 직전 기동 가부를 위해 캐서린의 계산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은 해리슨은 급하게 그녀를 찾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녀의 계산을 통해 NASA는 우주 궤도 비행에 성공하게 되고 캐서린은 다시 우주 임무 본부로 복귀하게 된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성별과 인종으로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 존재까지도 ‘부정당해야’ 했던 ‘미완’의 시대 속에서도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세 명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마다 비장해보이고 결연해보이는 표정들 뒤로 영화는 그들이 느꼈을 상처들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먼저, 어렸을 때부터 수학 분야서 천재성을 보였던 캐서린은 도로시의 추천을 받아 우연한 계기로 우주 업무 본부에서 전산 업무를 맡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단순히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동료들의 모습에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고자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권리 나아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거부당하는 현실에 분노하게 된다. 이에 일찍이 그녀의 능력을 알아보고 하나의 팀원으로서 인정하고 있었던 상관 해리슨이 몸소 지워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녀 역시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한다. 결국 보고서에 이름 하나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도 캐서린은 우주 개발 비행에 필요한 여러 계산 과정을 해내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다음으로, 오랫동안 흑인 전산원들을 관리해왔던 도로시 또한 특유의 리더십을 보이며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정규직 관리자로 승진하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면서도 캐서린과 메리,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들만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게끔 신뢰를 보내주고자 한다. 결국 어쩌면 새로운 시스템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도로시는 꿋꿋하게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다른 전산원들과 함께 컴퓨터를 통한 전산 과정들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뭇 엔지니어들보다 뛰어난 엔지니어링을 보여주었던 메리 역시 최초의 흑인 여성 NASA 엔지니어에 지원하고자 하지만 갑작스럽게 추가된 지원 자격과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엔지니어가 될 수 없다는 남편의 만류로 지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며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재판에 직접 나서서 부당한 차별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결국 다시 한번 차별의 벽 앞에서 좌절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메리는 역사 속에서 최초가 갖는 중요성과 함께 그동안의 벽을 허무는 자신뿐만 아니라 최초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줄 판결의 중요성을 어필해내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이때, 영화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함께 수석 매니저 스태포드를 비롯해 당시 기득권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백인 남성 계층부터 19세기 초반부터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했었던 백인 여성 계층, 심지어 인종의 동일성을 공유하고 있는 일부 흑인 남성 계층에 이르기까지 세 명의 주인공을 그저 겉모습으로 판단하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거나 어느새 혐오의 기제에 ‘내면화’된 채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한편 주인공들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그들의 가치를 ‘존중’하며 끝없는 ‘격려’를 보내주는 사람들 또한 보여줌으로써 ‘국가 기관에서 근무하는 흑인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는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되어갔던 시기이자 인권 운동이 절정을 맞았던 당시 1960년대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실감 나게 전달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흑인과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혐오의 문제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여전히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혐오 등의 사회적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차별’의 폭력에서 ‘차이’의 인정으로 향하는 ‘위대한 움직임’ 



 영화 <히든 피겨스>는 인간 존재의 객관적인 ‘차이’를 자의적인 ‘차별’의 잣대로 바라본 혐오 사회 속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인정’과 ‘공존’을 전하는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부족하’고 ‘열등’하며 ‘불결’하고 ‘무능’한 존재로 ‘구별’함으로써 ‘배제’하고자 하는 사회의 논리에 맞서기 위해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직시하고 주어진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은 그들은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존재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되찾게 된다.


 실제로, 영화 <히든 피겨스>는 과거 NASA에서 활동하면서 각각 미국 ‘최초’ 우주 궤도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수학자,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책임자이자 ‘최초’의 IBM 컴퓨터 프로그래머, 흑인 ‘최초’의 백인 전문학교 입학생이자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었던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 도로시 본(Dorothy Vaughan), 메리 잭슨(Mary Jackson)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어떤 숫자보다도 ‘확실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 그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금기처럼 여겨졌던 차별과 배제,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뿌리 깊게 박혀있었던 혐오의 벽을 넘어서는 ‘위대한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마침내 '가능성'을 증명해 낸 그들이야말로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차별과 평등은 다른 거야. 
                                         모든 걸 당연하게 보면 바로잡을 수 없어. 
                                       옳은 행동이면 옳은 거야. 그게 확실한 거지.”

                                       - 데오도르 멜피,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中 ‘도로시’의 대사


 같은 것은 무엇인가? 원래의 것이라는 사실이 존재하는가? 무엇이 순수를 만드는가? 인간 존재의 표준에 대한 어떤 개념보다도 '인정'에 대한 문제의식, ‘인간성’이 요구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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