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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넴의 글 Sep 17. 2021

잠재된 '윤리성'을 통해 '행복'해지기 [영화]

영화마다 철학담아

*본 게시글의 원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artinsigh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1803)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우리는 보다 작은 현재의 선보다는 보다 큰 미래의 선을,
                    또한 보다 큰 미래의 악보다는 보다 작은 현재의 악을 욕구할 것이다.”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de Spinoza), <에티카> (Ethica) 中


 

 ‘윤리’(倫理, ethics)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는’ 인식 위에서 우리가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행위를 규정하는 ‘근본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선’(善)의 개념이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의 문제는 곧 ‘선’(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윤리적 사고를 통해 선(善)을 ‘획득’할 수 있을까?


 이번 글은 ‘윤리성’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분석하고 인간의 ‘선’(善)이자 ‘행복’을 추구했던 스피노자의 이론을 통해 영화 <원더>(2017) 속 인물들이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향한 ‘이해’와 ‘관용’을 실천하고 나아가, 진정한 ‘행복’을 좇아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행복’을 향한 ‘방법’과 ‘질서’에 대한 윤리학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을 바탕으로 ‘선’(善)의 철학을 제시하고자 했던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포르투갈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던 그는 전통적인 유대식 교육을 받으며 율법학자로서 촉망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교의 사후 세계를 의심하는 논문을 발표했던 한 유대교 청년이 가혹한 비판과 함께 파문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자 스피노자는 유대교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1656년 이단 신학자 반 덴 엔덴(Van den Enden)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며 새로운 사상에 눈뜨게 된다.


 유대 신앙에 대해 의심했던 스피노자에게 신(神)의 섭리 대신 인간의 ‘이성’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근대 철학은 신선한 충격과도 같았다.교회의 위협에도 근대 철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끝내 유대교에서 파문당하며 유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게 된다. 이후 그는 렌즈 가공업을 통해 홀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야 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유대식 이름인 ‘바뤼흐’를 ‘베네딕트’로 바꾸며 유대교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한편 오로지 인간의 ‘선’(善)이자 ‘행복’을 향한 자신만의 철학적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다.


자신에게 '강제'되었던 신의 섭리 대신 자기 자신에 '잠재'된 이성을 강조했던 바뤼흐 스피노자.


 신(神)을 과학적 사고에 비추어 하나의 ‘실체’로서 파악하고자 했던 스피노자는 숱한 근대 철학 중에서도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이론에 주목했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기계론적’ 자연관과 ‘합리주의적’ 세계관에 맞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자존성’과 ‘독립성’을 갖춘 실체 개념을 제시하는 한편 신(神)과 인간 세계를 각각 ‘무한성’, ‘유한성’의 실체로 구분함으로써 종교와 과학의 ‘병존’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적 탐구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사상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자연이라는 인간의 ‘현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신(神) 이외의 또 다른 실체의 개념을 빌려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이 제시한 실체의 ‘자존성’ 및 ‘독립성’ 개념의 모순을 보여주었고 정신과 물체(육체)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인간을 실체의 개념을 통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스피노자는 신(神)을 ‘유일한’ 실체로 설정하고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정신을 다시 자연으로 귀속시킨다. 이를 통해, 그는 신(神)을 인간처럼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격신’으로 바라보았던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유일성’과 ‘자기 근원성’을 갖는 실체이자 하나의 ‘이성’, 하나의 ‘정신’, 그리고 하나의 ‘자연’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일원론적 범신론’을 주장했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지성 개선론>(Tractatus de Intellectus Emendatione)과 <에티카>(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를 저술함으로써 신(神)을 비롯한 자연과 인간 세계 간 ‘관계’를 규명하는 한편 인간의 본성 속 ‘윤리성’을 탐구함으로써 모든 학문의 ‘궁극적’ 목표인 인간의 ‘행복’ 또는 ‘진정한 선(善)’을 좇는 방법과 논리를 제시하고자 했다.


 특히, <에티카>는 ‘진’(眞)보다 ‘선’(善)을 추구하고자 했던 스피노자의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그에 따르면, ‘정념’이라는 감정에 예속된 인간은 자신의 ‘코나투스’(Conatus) 다시 말해, 자기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본질을 지속시키는 ‘자기보존’의 노력을 통해 감정의 ‘평형성’을 복구하고 스스로 이성적으로 자유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그는 ‘관용’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실천하고 타인 또한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욕구함으로써 신(神)을 비롯한 공동체와의 교감을 유지하는 한편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책은 말 그대로 인간의 '착함' 그리고 방법론적인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우리가 자유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인식론의 도움을 받아 감정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기심’ 위에서 ‘맹목적’으로 이뤄지며 자기 자신을 구속하는 ‘수동적’ 감정과 달리 자기 자신에 대한 ‘적합한’ 인식 위에서 형성되는 ‘능동적’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결정적’인 차원에서 외부의 어떤 ‘부적합성’ 혹은 ‘결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성적 노력을 통해 감정으로부터 ‘해방’된 우리의 두 번째 단계는 자기 자신의 ‘사회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보존’하려는 ‘용기’와 함께 우리는 타인을 돕고 그들과 ‘결합’하려는 관용을 실현함으로써 보다 이성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이성의 인도를 받는 삶에 도달한 우리의 마지막 단계는 현실에 ‘깃들어있는’ 신(神)을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신(神)에 대한 지적 ‘사랑’이 가능해짐과 동시에 자기 자신과 공동체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선’(善)이자 ‘행복’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인으로 성장한다.


 물론, 스피노자의 이론은 인간과 신(자연)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고를 ‘기하학적’이고 ‘연역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개념의 혼동과 해석상의 이견을 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치우쳤다는 점에서 여전히 '간학문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한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이론은 자연 속 ‘개별적’ 사물에 대한 ‘직관’을 통해 신(神)의 본질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18세기 ‘계몽주의’ 학파와 근대 성서 비판의 토대가 된 데 이어 독일 관념론과 사회주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인간의 ‘도덕’을 통해 인간과 자연 간 관계를 표현함과 동시에 ‘코나투스’라는 인간 존재의 ‘잠재적’ 본성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심신론 등 철학뿐만 아니라 윤리학과 교육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상이 ‘궁금해했었던’ 한 소년의 ‘기적’에 대한 영화



 스피노자의 윤리학과 함께 살펴볼 영화 <원더>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적 안면 기형으로 인해 스무 번이 넘는 수술을 받으며 세상과 단절되었던 한 소년의 자기소개와 함께 시작된다.  


영화는 세상을 '궁금해했던' 그러나, 이내 세상을 '놀라게 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어느덧 10살이 된 주인공 어기는 첫 학교생활을 앞두고 있지만 남들처럼 ‘평범한’ 얼굴을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에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방학 기간에 찾아간 학교에서 투쉬만 교장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어기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게 되지만 항상 응원해 주었던 가족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낯설어한다. 결국 어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들과 첫 만남 때부터 시작된 줄리안과 그의 친구들의 짖궂은 장난에 상처를 입게 된다. 


 온 가족의 관심이 어기에게 쏟아지는 동안 누나 비아 역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학업과 고민을 혼자 해결해야 했던 비아는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어기를 챙기고자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주었던 할머니에 이어 절친 미란다마저 이유 없이 자신을 떠나가자 비아는 자신의 꿈마저 포기하고 어기에게 모든 것을 쏟아내는 엄마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원망하기도 한다. 그때,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저스틴이 나타나고 비아는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어기의 존재를 숨기는 한편 저스틴이 속해있는 연극부에 들어가기로 한다.


 한편, 어기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잭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둘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줄리안과 자신에 대한 험담을 이야기하던 잭의 모습에 어기는 실망하게 되고 결국 의도적으로 그를 피하고자 한다. 그 모습에 비아는 자신 또한 고민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두 사람은 힘들었던 서로를 위로해 준다. 또한, 비아는 저스틴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가족을 밝히며 예전의 화목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는다.  


영화는 가족의 시선과 외부의 시선을 오가며 '적응'과 '성장'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재발견'을 그려낸다. 


 어기와 비아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다시 가까워지는 동안, 미란다 역시 사연이 있었다. 화목한 어기 가족과의 기억을 통해 이혼 후 알코올중독에 걸린 엄마와 지내야 하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미란다는 비아와 잠시 떨어져 있는 캠프 생활 동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어기의 친누나인 척 행동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캠프에서 돌아온 이후 미란다는 어기를 ‘이용’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비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서 사과를 구하고자 한다.


 잭 역시 처음에는 투쉬만 선생님의 요청으로 할 수 없이 어기와 가까이 지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기와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 갑자기 자신을 피하는 어기의 모습에 잭은 썸머를 찾아가고 그녀로부터 그저 학교에서 잘나가는 줄리안과 가까워지기 위해 했던 자신의 말이 어기의 마음을 상하게 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미안함을 느낀 잭은 여전히 어기를 놀리며 건방진 모습을 보이는 줄리안과 주먹다짐을 하는 한편 어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그에게 화해를 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비아와 미란다의 공연 당일, 미란다는 비아에게 화해의 의미로 자신의 주인공 역할을 내어주게 되고 비아는 그동안 자신이 보여주지 못했던 진실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결국, 연극을 통해 서로에게 서로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게 된 어기의 가족들은 화해를 하게 되고 비아와 미란다 역시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이후 학교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게 된 어기는 잭과 썸머를 비롯해 자신을 놀렸던 친구들과도 화해를 하며 학교에서 유명해진다. 1년 후, 어느덧 졸업을 앞둔 어기는 자신이 두려워했던 세상의 앞에서 하나의 ‘기적’처럼 당당하게 선행상을 수상하게 된다.  


자기 자신조차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우리는 가장 가까운 그리고 가장 소중한 존재로부터 깨닫곤 한다.


 영화 <원더>는 오직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있었던 등장인물들이 ‘이해’와 ‘관용’을 통해 각자의 ‘결핍’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행복’에 이르는 왕도(王道)를 보여준다.


 선천적 안면 기형의 어기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외형적’ 모습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우주인 헬멧을 쓰며 생활했던 그는 가족들의 따듯한 응원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우주인이 되었다는 상상을 하며 학교라는 새로운 외부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이기심’과 ‘압박감’이라는 자신만의 헬멧을 쉽게 벗지 못한 채 이내 실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기는 자신의 감정을 하나의 ‘권력’처럼 여기는 한편 자신에게 쏟아지는 위로와 호의들을 거부하는 등 외부 세계를 ‘부적합’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가치 또한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기는 다른 사람들도 각자만의 결핍이 있다는 진실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는 한편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성장한다.


 이때, 영화는 중간중간 화자를 바꿔가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어기와 마찬가지로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주변 인물들의 사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먼저, 어기에게 가족의 관심이 쏠리는 동안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어기의 누나 비아는 ‘외로움’이라는 결핍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주었던 할머니와 절친 미란다마저 떠나갔던 과정 속에서 비아는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저스틴에게 어기의 존재를 숨기는 한편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어기에게 짜증을 내는 등 자신이 겪는 감정만을 앞세워 외부 세계와의 ‘부적합한’ 모습들을 지우고자 했다. 그러나, 비아는 어린 시절 자신이 빌었던 소원처럼 찾아온 동생 어기가 어쩌면 자신이 겪었을지도 모르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이어나가게 된다.


 또한, 마찬가지로 각각 가족과 학교라는 공동체 속에서 ‘외로움’이라는 결핍을 가지고 있었던 비아의 친구 미란다와 어기의 친구 잭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이기심'에 어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미란다는 어기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비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한편 잭 또한 어기의 진심과 함께 ‘미안함’을 느끼게 되면서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이기심과 행동을 사과함으로써 ‘사랑’과 ‘행복’을 이어나간다.  


그렇지만, 영화는 '성장'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혹은 그 결과로 느껴지는 '행복'을 영화는 담아낸다. 


 이처럼, 영화는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자기중심적’인 ‘자기 이해’를 보이며 타인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들이 점차 이기적이었던 자신의 감정이 틀렸음을 깨닫고 자신의 내면과 외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자유인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 시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용기’와 함께 타인과 공동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영화는 ‘학교’와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등장인물들 스스로 ‘코나투스’를 강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최선’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함께 공동의 규범적 질서를 배우고 자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친절함’에 대한 격언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수업 장면에서는 어기의 외모가 아닌 어기라는 사람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썸머와 줄리안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반면 물체의 ‘관성’에 대한 법칙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수업 장면에서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자신의 가치마저 알지 못하는 어기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하지만, 빛의 ‘굴절’에 대한 법칙으로 시작하는 세 번째 수업 장면부터 어기는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았던 편협한 시각을 놓아두는 대신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한편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행동’에 대한 격언으로 시작하는 마지막 수업 장면을 통해 어기는 마침내 타인에 대한 ‘사랑’과 함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아이로 거듭난다.   



‘있는 그대로’의 ‘인정’(人情),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인정’(認定)



 영화 <원더>는 인간 존재의 ‘윤리성’이라는 ‘발화점’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올바른 ‘이해’와 ‘관용’의 자세를 배우고 나아가, 최상의 ‘행복’이자 ‘선’(善)을 좇는 ‘방법’을 말해주는 영화이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세상과 사람들 앞에, 그리고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가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자신의 ‘이기심’만을 앞세우며 세상을 ‘오해’했었던 등장인물들이 점차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면서 마침내, 진정한 ‘행복’의 삶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생각을 안다면 깨닫게 될 거다.
                                                평범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린 평생에 한 번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스티븐 크포스키, <원더> (Wonder) 中 ‘어기’의 대사


 우리는 때로 ‘감정’이라는 ‘색안경’ 대신 ‘이성’이라는 ‘맨눈’으로 행복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라는 주문을 우리 마음속에서 꺼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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