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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넴의 글 Sep 28. 2021

'경험'을 통해 아름답게 '성장'하기 [영화]

영화마다 철학담아

*본 게시글의 원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artinsigh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218)


                   
                  “교육은 경험 안에서, 경험에 의해서, 경험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발전이다.”

                                    -존 듀이(John Dewey), <경험과 교육> (Experience and Education) 


 인류는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복잡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부딪치는 과정을 반복하며 오늘날의 눈부신 ‘성장’을 보여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들의 몸과 마음을 ‘영원히’ 관통하는 ‘교육’(敎育, Education)은 인류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이번 글은 ‘경험’을 중심으로 외부의 변화에 맞춰 ‘성장’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고자 했던 듀이의 교육이론을 통해 영화 <미성년>(2019) 속 동일 ‘경험’에 대한 어른들과 아이들의 ‘대조적’인 대응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미성숙’과 ‘성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삶의 ‘경험’을 통해 ‘성장’을 바라보는 교육철학



 현대 교육학을 대표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존 듀이(John Dewey)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지 않을까? 듀이의 등장 이전 교육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잠재력’ 즉, 선험적 가능성의 ‘발현’을 중시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식 교육관 아래 성인 교육자에 의해 이미 ‘고정된’ 지식과 정보를 익히는 전통주의적 교육관이 공고히 되고 있었다. 듀이 역시 교육의 목표에 있어 인간의 잠재성의 발현이라는 ‘내부적’ 동인(動因)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의 ‘외부적’ 동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시각에서 논의를 펼치고자 했다.


 듀이는 먼저 ‘경험론’(經驗論, Empiricism)적 전통 아래 함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적 관점과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변증법적 사상을 빌려와 외부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얻게 되는 ‘경험의 연속성’에 주목했다. 듀이에 의하면, 일생에 걸쳐 이어지는 인간의 경험은 자연과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연합’(Associaition) 즉, 사회적 환경에서의 상호작용 역시 활발해짐에 따라 자체적인 방향성과 상관없이 지속적인 ‘재구성’ 혹은 ‘재조직’을 이뤄가며 ‘연속성’의 특징을 보인다. 이를 통해, 그는 교육자가 아닌 학습자의 시각에 맞춰 그들의 경험을 비롯해 그 속에 깃든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고자 하는 ‘진보주의적’ 교육관을 제시하는 한편 상호작용의 활발한 정도에 따라 경험을 ‘교육적 경험’과 ‘비교육적 경험’으로 구분해 교육적 경험에 주목하고자 했다.  


평생에 걸친 '교육' 그리고 그를 통한 끝없는 '성장'을 노래했던 존 듀이


 이후 경험의 연속성에 대한 논의는 듀이의 교육이론 전반에 스며들며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개념들의 ‘산파’ 역할로 자리 잡게 된다. 일례로, 과거 행위의 단순한 ‘반복’으로 여겨졌던 ‘습관’(Habit)의 경우 연속성의 논의 아래 시간적 연속의 과정에서 인간 행위의 ‘효율성’ 및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향성’으로 해석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수단적’ 차원에서 지식의 ‘유용성’을 강조했던 ‘도구주의’(Instrumentalism)는 연속성의 논의 아래 상호작용을 통한 인간의 경험이 곧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시간적으로 선행한 경험이 뒤따르는 후행 경험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훗날 그의 핵심 사상인 ‘실용주의’(Pragmatism)의 기초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성장’의 개념은 연속되는 경험을 ‘재구성’ 혹은 ‘재조직’하는 과정이자 결과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듀이가 강조하고자 했던 교육의 궁극적 목적과 맞닿아있었다. 듀이에 따르면, 성장의 기본적 조건은 ‘미성숙’으로 이때, ‘미-’(未-, Anti-)라는 접두사는 어떤 결핍이나 부족이 아닌 아동들에게 잠재된 ‘가능성’이자 ‘추진력’을 의미했다. 이어서 듀이는 미성숙의 특징으로 의존성(dependence)과 가소성(plasticity)을 제시했는데 의존성의 경우 단순히 타인에게 일방적인 종속되는 ‘소극적’ 특징이 아니라 타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적극적’ 특징을 의미했다. 한편, 가소성은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경험의 행위를 유연하게 수정해 외부 변화에 맞춰 적응하는 특징뿐만 아니라 나아가 ‘성향’이라는 독자적이고 일반적인 경향성을 창안할 수 있는 특징을 의미했다.  


책은 전인교육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성장이 곧 '도덕적', '인격적' 주체로서의 '생존'과도 연관이 있음을 밝힌다.


 물론, 듀이 역시 삶의 단계적 구분에 따라 아동기에서 미성숙함이 더 나타난다는 점을 무시할 순 없었지만 그에게 있어 성장에 대한 논의는 성장이 경험하는 주체의 생멸과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성년기에도 얼마든지 미성숙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성장 역시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그의 논의는 아동기로 대표되는 초년기의 경험일수록 평생에 걸쳐 ‘축적-변형’의 재구성(재조직)을 오랫동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 교육과 함께 아동들이 흥미를 이어갈 수 있는 실생활 속 체험 교육의 중요성 또한 보여주면서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 삶의 ‘평생 교육’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처럼 인간의 교육과 성장을 다방면으로 결부시켜 바라보고자 했던 듀이의 논의는 오늘날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자기교육(Self Education)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특별한 학습자료 없이 학습자가 곧 자신의 인지적, 인성적 성장을 위한 교육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교육을 의미하는 자기교육으로 이어진 그의 논의는 경험하는 주체의 ‘자아 성찰’과 함께 ‘위기관리’ 능력의 향상을 유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정립된 교육의 의미와 역할 나아가, 미래에 필요한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듀이의 이론은 ‘만남’, ‘위기’, ‘모험’, ‘좌절’ 등 우연적인 경험들이 보여주는 ‘단속적’(斷續的)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성장에 대한 논의에 있어 성장의 기준과 같이 ‘구체적’ 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 그리고 어디까지나 교육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경험에 지나치게 주목했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동안 성인 교육자 중심, 단일 기관(학교) 중심, 교과 수업 중심으로 ‘수동적’이고 ‘고정된’ 차원에 머물렀던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해 아동들이 진정한 ‘자아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로써 교육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많은 교육학 이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까지’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 ‘아름답게’ 성숙해가는 아이들에 대한 영화 


 듀이의 교육이론과 함께 살펴볼 영화 <미성년>은 고등학생 주희가 자신의 아빠 대원이 외도 상대인 미희와 함께 있는 모습을 훔쳐보던 중 미희의 딸 윤아에게 들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단순한 육체적, 생물학적 '성장'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성숙'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다음날, 주리는 윤아로부터 대원과 미희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서 각자 자신의 부모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다투기 시작한다. 때마침 주리의 엄마 영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윤아가 외도 사실을 모두 폭로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날카로운 신경전을 이어가게 된다. 윤아와의 만남 이후 주리는 이미 각방을 쓰며 냉랭한 관계에 있던 대원과 영주의 눈치를 보게 되고 윤아 역시 대책조차 없는 미희에게 성을 내며 홧김에 그녀의 휴대폰을 통해 대원에게 외도 사실을 전부 알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다음날, 외도를 들켰다는 생각에 대원은 가족들을 일부러 피하고 학교에서 다시 만난 주리와 윤아는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한편, 영주는 대원의 흔적을 좇아 미희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간다. 이내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영주는 홧김에 미희를 밀치게 되고 결국 미희는 조산을 하게 된다. 이에 학교에 있던 주리와 윤아는 병원을 찾아가지만 어른들의 일이라며 그들을 보내려는 영주와 미희에 떠밀려 돌아가려던 찰나, 치료받던 남동생을 처음 만나게 된 두 소녀는 무책임한 어른들을 대신해 그를 지켜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영화 내내 충돌하는 두 미성년의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스러운' 성장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때, 비겁하게 피하려는 대원의 모습을 보게 된 윤아는 자신의 생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조차 모르는 그가 보이는 뻔뻔함에 윤아는 절연을 다짐하며 병원으로 돌아오던 중 때마침 영주가 대신 병원비를 수납했다는 소식에 그녀를 찾아간다. 윤아와 만난 영주는 어른들의 잘못을 사과하게 되고 윤아 역시 그녀를 위로해 주는 한편 아이를 지키겠다는 생각을 밝힌다. 한편, 가족을 피해 다니는 대원을 찾고자 했던 주리 역시 미희를 만나지만 때마침 나타난 윤아가 내민 출생신고서조차 마다하는 미희의 모습에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이 아이의 진정한 보호자가 되어주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시간이 지나 미희의 퇴원일이 되기까지 다섯 명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고해성사를 통해 윤아와 주리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영주는 퇴원을 앞둔 미희를 찾아가 서로 자신의 이기적이었던 과거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게 된다. 동생의 회복만을 기다리던 윤아와 주리는 각각 독립과 입양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그들을 피하기 위해 대원은 홀로 친구가 운영하는 지방 펜션에 내려가지만 그곳에서조차 환영을 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시간을 보낸다.  


한편, 영화는 여전히 무책임하고 그런 모습에 무뎌지는 '성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아이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던 윤아와 주리는 그가 입양을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 관계자들에게 물어물어 필사적으로 그를 되찾고자 한다. 그렇게 화장터로 향하는 차량에서 남동생을 맞이한 두 소녀. 그럼에도 그를 포기할 수 없었던 윤아는 중간에 내려 홀로 길을 떠나게 되고 주리는 남동생과 함께 집으로 향한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온 주리와 윤아는 도망만 다녔던 대원에게 책임을 묻는 한편 각각 남편의 외도와 아이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받았던 영주와 미희를 위로한다. 그리고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들을 대신해 어리다고 생각했던 두 소녀는 직접 화장터에 들러 남동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대원과 미희의 추억이 담긴 놀이공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미성년>은 예상치 못한 일상의 ‘균열’로 ‘연약하게’ 무너지는 ‘미성년’(未成年)과 ‘강인하게’ 일어서려는 ‘미성년’(美成年)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정한 ‘성숙’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영화는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이이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의 두 가족이 가장의 외도라는 경험 이후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때, 영화는 고등학생이지만 주체적으로 갈등을 해소하려는 ‘미성년’(美成年)다운 인물들과 성인이어도 갈등을 오히려 부풀리거나 갈등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미성년’(未成年)다운 인물들이 보여주는 대조적인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성숙의 의미와 함께 ‘자아 성장’을 중심으로 성장의 과정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법적으로’ 미성년자에 해당하는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미성숙’하다고 판단되는 주리와 윤아는 어른들이 저지른 ‘도덕적’ 잘못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영주에게 대원의 외도와 미희의 임신 소식을 숨기고자 했던 주리는 이를 밝히고자 했던 윤아와 대척점에 섰지만 동생을 만난 이후 잘못을 되돌아보지 않는 어른들을 대신해 그의 보호자가 되어주고자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갈등도 해소하지 않은 채 동생을 방치하는 어른들의 미숙함에 두 사람은 때로는 ‘감정적’으로 그들을 향한 솔직하고 따끔한 표현들을 전하는 한편 때로는 ‘이성적’으로 각자 입양(주리)과 독립(윤아)이라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고자 한다.  


성장의 과정에는 "잘하고 못하고"라는 말도, "잘못했다"는 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때, 영화는 그저 생물학적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두 사람에게 미성숙을 강제했던 각종 ‘법적’ 제약들과 함께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도덕적’ 성장의 지표를 보여준다. 고등학생인 윤아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손님으로부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꾸중을 들어야 했으며 동생의 보호자가 되고 싶었던 두 사람은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한 채 주변 인물들의 편견과 핀잔을 견뎌야만 했다. 그리고 찾아온 동생의 부재를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윤아에게 처음과 달리 주리는 주리는 ‘같은 편에서’ 함께 그의 마지막을 기억해준다. 이처럼, 두 사람은 어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어쩌면, 더 성실하게 동생을 보호하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을 깨우는 역할을 수행하는 ‘의존성’과 함께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외부 변화에 적응하려는 ‘가소성’을 보여주며 결국 ‘아름다운 성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그들과 달리 ‘법적으로’ 성인에 해당하는 사회인 즉, 사회적으로 ‘성숙’하다고 판단되는 어른들은 해결책 없이 잘못으로부터 ‘도피’하거나 어른으로서의 ‘체면’만을 지키려고 하며 오히려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갈등의 원인이 된 대원은 가족들에게 책임 대신 변명만을 남긴 채 피해 다니기에 바빴고 대원의 외도 상대였던 미희 역시 자신을 추궁하는 아이들에게 떼를 쓰거나 다른 어른들과 반말로 다투는 등 철없는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냉정함을 유지하는 듯했던 영주 또한 아이들 앞에서 어른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을 다그치거나 충고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눈물과 함께 진심으로 아이들에 대한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인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성년'들의 모습을 영화는 지극히 사실적이고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 앞에서 우등생이자 반장인 주리를 옹호하는 학교 선생님에 이어 윤아의 이름과 나이조차 알지 못하는 윤아 친부, 그리고 윤아와 주리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며 트집을 잡는 주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성년’답지 못한 어른들은 마치 ‘성년이 아닌 듯’한 행동들을 이어서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외도라는 이름으로 저지를 수 있는, 어쩌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른들의 ‘일탈’이자 도덕적 ‘잘못’을 경험하게 된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행동과 표현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들의 모습과 함께 비치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게 됨으로써 영화를 향유하는 동안 어느새 자신 또한 성장의 길 위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갱신’이 아닌 ‘경신’을 위한 삶



 영화 <미성년>은 아직 마음의 미성숙을 앓는 어른들과 벌써 마음의 성숙을 겪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능성’으로서의 미성숙과 ‘통과의례’로서의 성장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영화 후반부, 안타깝게도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떠나간 동생과 함께 주리와 윤아는 놀이공원을 찾는다. 비록 대원과 미희의 만남을 통해 ‘우연히’ 만났던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진정한 ‘어른’으로서 서로를 보호하고, 진정한 ‘가족’으로서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나름대로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멈춰있던 어린 시절의 놀이공원에 되돌아온 것처럼.  


성장이라는 이야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다만, 저마다 나름대로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부모가 자식의 거울인 것일까? 아니면 자식이야말로 부모의 거울일까? 영화는 서로를 거울삼아 멈추지 않고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가르치며 어떤 깨달음 혹은 나아감을 ‘선사’하는 태도로 답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삶 속의 수많은 ‘거울’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본모습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새롭게 성장하는 ‘갱신’(更新)이 아닌 ‘경신’(更新)의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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