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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l 03. 2023

운전면허

나무인간 28

2022년 7월 19일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19살 때 대학 붙자마자 따 놓고도 전혀 쓸 일이 없었다. 26살 때쯤 신체검사를 다시 받고 갱신하라고 우편물이 자취집으로 날아왔는데 당시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술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졸업하고 유학 다녀오고 질풍노도 같은 30대를 보냈다. 올해 초, 어머니는 무슨 까닭인지 나에게 운전면허 재취득을 강권하셨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머리 아플 때 운전이라도 해서 어디 좀 다녀오고 그러면 좋지 않느냐면서. 내가 보기엔 속내가 따로 있는데 어머니는 죽어도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어머닌 죽어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 까짓 거 그냥 다시 따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관리 유지할 돈이 없는 나에게 어머니가 왜 그토록 면허를 따라고 종용하셨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지만, 여행... 여행은 언제나 썩 괜찮은 것이니까. 심지어 전기차를 뽑아 주실 의향까지 있다고 말씀했다. 나로선 이 나이 먹고 경제력만을 핑계 삼아 더 이상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시고 우리 집에 오셔서 나의 부족한 청소를 대신해주신다. 내가 운전해서 법원이든 병원이든 모시고 다니는 게 최소한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지금 요번 주 기능주행까지 통과할 목적으로 열심히 시험을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문제가 생각보다 헛갈린다. 동영상 문제는 화면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관찰을 요구했다. 피곤했다. 유튜브엔 다양한 팁과 기출문제 유형, 자주 틀리는 문제 등 많은 자료들이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그냥 작게 2종 보통이나 딸 생각이라 만만히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틀리다 보니 은근 약이 오른다랄까. 뭔가 뜻 모를 도전 정신 같은 게 생겼다.  그래서 며칠째 눈이 빠지게 유튜브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기능주행은 코스를 외워서 실제 운전 한 번 안 하고 바로 필기 이후 시험 볼 요량이다. 이번 주 금요일이 결전의 날인데 한방에 잘 되면 좋겠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운전하면 위험하다는 둥, 술을 좋아해서 대리비가 더 들 것이라는 둥 하는 변명은 더 통하지 않을 나이다. 새삼 오늘 나이와 운전에 대해서 생각했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나저나 내연기관차가 아닌 전기차를 타게 되면, 막걸리 마시며 플라스틱 환경오염을 걱정한 창피를 감추려 천상병 시인의 글을 판 내 모자람도 조금 감춰질까. 이런 게 배부른 걱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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